■ 규제에 숨겨져 있는 "Unrules"


Coglianese, C., Scheffler, G., & Walters, D. E. (2021). Unrules. Stanford Law Review, 73, 885–967.


언룰 개념은 기존의 규제 과잉 대 규제 포획 논쟁에도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동안 규제정책을 둘러싼 정치경제 담론에서는 “규제를 너무 많이 해서 문제”라는 입장과 “규제를 제대로 안 해서 문제”라는 입장이 평행선을 그려왔다. 전자는 주로 기업과 보수 진영에서 주장하는 규제비용 과다론이고, 후자는 소비자·환경단체나 진보 진영에서 제기하는 규제 부실 혹은 포획론에 가깝다. 그런데 언룰의 관점에서 보면, 규제는 너무 많으면서도 너무 적을 수 있다. 우선, 규제 남용론이 과장되었을 수 있다. 규제의 양적 규모만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실제 현실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 


언룰은 바로 그런 은밀한 규제 회피 경로를 제공함으로써, 겉으로는 엄정한 규율이 지배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유령 같은 예외들이 활개치는 행정국가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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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말, 워싱턴 D.C.의 한 행사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작은 서류 더미와 자기 키보다 큰 거대한 서류 더미를 붉은 리본으로 연결해 놓고는 가위로 그 리본을 잘라버렸다. 1960년대부터 급증한 미국의 행정 규제量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겠다며 연출한 이 퍼포먼스는, 규제 완화를 부르짖는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오랜 불만을 극적으로 표현한 장면이었다. 실제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혁신과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미국 사회의 정치 담론에서 빠지지 않고 반복되어 왔다. 규제집의 페이지 수를 세어 그 두께를 재는가 하면, 법령 텍스트에 등장하는 ‘해야 한다(must)’ ‘하여야 한다(shall)’ 같은 의무 부과 단어의 개수를 계량화하여 규제 부담을 산출하려는 시도까지 등장했다(McLaughlin & Sherouse, 2019). 그러나 법령집 분량만으로 규제의 실상을 가늠하는 것은 자칫 착시를 불러올 수 있다. 행정 규제의 겉모습 뒤편에는 일반 사람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또 다른 그림자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규제의 글자 수와 엄격함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규제 면제와 예외의 세계를 놓치게 된다. 다시 말해 현대 행정 권력은 우리가 흔히 보는 법령과 규칙 이상의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규제의 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미국의 행정법 학자 Cary Coglianese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2021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러한 숨은 규제 완화 장치를 가리켜 **“언룰(unrule)”**이라는 용어를 붙였다. 언룰은 정부 규제가 부담을 지우는 **룰(rule)**의 정반대에 위치한 개념으로, **웨이버(waiver)**나 익젬션(exemption), 카브아웃(carveout) 등 규정된 의무의 적용을 해제하거나 범위를 제한하는 모든 결정행위를 포괄한다. 새로운 규제를 만들 때마다 동시에 그 규제를 피할 길도 함께 만들어내는 셈이다. 법령 상의 의무 조항들 사이에 삽입된 각종 **구멍(loophole)**과 특례 조항들이 바로 언룰이며, 이를 통해 법이 기대하는 바와 현실 집행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유명한 법격언처럼 “책 속의 법과 현실의 법은 다를 수 있다”는 통찰은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법조문상 엄격해 보이는 규제도 그 이면에 존재하는 언룰에 의해 무력화되곤 한다. Coglianese 등의 연구진은 “법에는 늘 룰과 함께 언룰이 따라붙으며, 후자가 전자를 잠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규제의무가 과도하다”고 불평하는 기업 로비스트들은 오히려 법의 이런 빈틈을 파고들어 예외 혜택을 얻는 데 열중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겉으로는 규제 부담을 한탄하면서도 막상 뒤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면제 조치를 끌어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법조문을 글자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고, 실제 집행의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는 법사회학의 고전적 경구(예: Roscoe Pound, 1910)도 이 맥락에서 새삼 살아나는 듯하다.


세법을 예로 들어 보자. 최고 부유층에게 37%의 고율 세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한 조세 규정이 아무리 두껍게 존재해도, 그 조문 곳곳에 마련된 감세와 공제 예외조항 덕분에 현실에서 억만장자들이 내는 세금은 거의 **제로(0)**에 수렴한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법률이 정한 기대치와 실제 이행 결과 사이에 큰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규제도 마찬가지다. 법령 텍스트상의 엄격함과 현실 집행의 느슨함 사이에는 항상 간극이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간극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언룰’이라는 이름의 각종 예외 장치들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언룰의 위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원칙적으로 미국에서 새로 개발된 의료기기는 FDA의 엄격한 시판 전 안전성·효과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매년 대부분의 신규 의료기기가 이러한 정식 심사를 받지 않고도 시장에 풀려나고 있다. 1976년 의료기기법 제정 당시 도입된 일종의 “승인 면제” 경로인 이른바 “510(k)” 제도(명목상 ‘실질적 동등성’ 심사)는, 새 제품이 기존 승인 기기와 충분히 유사하다고 간주되면 별도의 임상시험 없이 간이 절차만으로도 판매를 허가받을 수 있게 한다. 문제는 이렇게 정식 심사를 건너뛰고 시판된 제품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의료 현장에 잠재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기기들이 대량으로 유통되었다는 점이다. 국제 탐사보도 컨소시엄(ICIJ)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의료기기와 관련되어 보고된 부작용 사고가 100만 건을 넘었고, 이 가운데 수천 건은 사망 사고였다. 리콜된 고위험 의료기기의 70% 이상이 바로 이 FDA의 허점 경로를 통해 시중에 풀린 제품들이었다는 충격적인 통계도 있다. 법적으로는 안전성을 검증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언룰 덕분에 수많은 제품이 시험대를 건너뛰면서 현실에선 법의 취지가 크게 훼손된 것이다.


항공 안전 분야에서도 비슷한 이중성이 드러난다. 예컨대 세계적 항공기 제조사 보잉은 자사의 신형 여객기 **737 맥스(MAX)**를 개발하면서, 원래라면 수년이 걸리는 **연방항공청(FAA)**의 신규 기종 형식인증 절차를 단축시키기 위해 기존 기종의 개량형에 적용되는 “부분 증명” 경로를 활용했다. 그 결과 보잉은 경쟁사보다 몇 년 앞서 신형기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지만, 정작 그 비행기에 치명적인 결함이 남아 두 차례의 대형 추락 사고로 이어지고 말았다. 겉으로는 FAA의 안전 기준을 충족한 기종이었지만, 실제로는 엄격한 검사를 피해갔던 것이다. 이 사건은 규제 예외를 허용한 행정 결정이 어떤 비극적 대가를 치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Coglianese et al., 2021).


환경 규제의 역사에도 언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사례가 있다. 1970년대 초,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외항선 선박이 탱크에 적재해 운반하는 **평형수(밸러스트)**를 수질오염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 주었다. 선박 운영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로 인해 해외 선박의 평형수에 섞여 있던 외래 침입종들이 미국의 오대호로 유입되어 토착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심각한 결과가 초래되었다(Keller et al., 2015). 나중에서야 법원이 EPA의 이런 면제 결정을 위법이라고 판시하여 뒤늦게 규제가 시행되었지만, 이미 손쓸 수 없는 피해가 난 뒤였다. 이 사례는 규제의 빈틈이 환경과 공중보건에 끼칠 수 있는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언룰은 특정 기관이나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행정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코글리아니즈 등 연구진은 미국 연방법전과 연방규정집의 텍스트를 계량 분석하여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했는데, 의무를 부과하는 단어 다섯~여섯 개마다 한 개꼴로 의무를 면제하거나 완화하는 단어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법령의 문장 다섯 줄을 읽을 때마다 어딘가에는 그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작은 출구가 하나씩 숨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한 번 만들어진 예외 조항은 필요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활용되면서 개별 기업은 물론 산업 전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언룰이 그만큼 보편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규제 면제 권한에는 새로운 규제를 만들 때와 같은 통제와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미국 행정절차법(APA)은 행정기관이 규칙(규제)을 제정할 때 일반 국민에게 미리 공지하고 의견 수렴을 거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주요 규제는 백악관 산하 정보규제관리실(OIRA)의 사전 심사까지 받는다.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부담을 지울 때는 이처럼 엄격한 절차적 정당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규제를 풀어주는 결정에는 이러한 잣대가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규제 웨이버나 예외 인가 조치는 연방 관보에 제대로 공표되지 않고 막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흔하며, 일반 대중이나 이해관계자가 그 결정이 내려진 사실조차 알기 어려울 수 있다. 당연히 사후적인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낮다. 기업의 입장에선 이런 비공식적 완화 조치를 조용히 얻어내는 편이 공개적인 규제완화 청원을 하는 것보다 수월할 수 있고, 행정기관 입장에서도 눈에 띄는 규칙 개정을 하지 않고도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으니 선호되는 측면이 있다. 요컨대, 행정권력이 그림자 규제 완화의 형태로 행사될 때는 투명성과 책임성이 떨어지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 규칙을 만들 때 존재하던 여러 견제 기제들이 규칙을 풀어줄 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행정 권력의 한 축이 사실상 법의 레이더 밖에서 휘둘러질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행정기관의 이러한 재량 남용은 곧 이해관계자 포획(regulatory capture) 문제와 맞닿아 있다.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가 1970년대에 주창한 규제 포획 이론(Stigler, 1971)은 규제산업의 기업들이 규제 기관을 장악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게 한다는 주장이었다. 쉽게 말해, 원래는 업계를 규제해야 할 정부 기관이 오히려 그 업계의 이익 대변자 노릇을 하게 된다는 비판이다. 그런데 언룰의 시각에서 보면, 현대의 규제 포획은 꼭 규칙 자체를 뒤바꾸지 않고도 일어날 수 있다. 법률이나 규칙의 겉모습은 그대로 두면서, 그 실제 운용을 음성적으로 무력화하는 방식으로도 기업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FDA 의료기기 사례나 FAA의 보잉 사례에서 보듯, 기업들은 공식 규정의 장부상 틀은 유지한 채 그 실효성을 약화시키는 예외를 확보함으로써 규제를 유리하게 비틀 수 있다. 규제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비(非)규제적 포획(unregulatory capture)”이라고 부르며, 전통적인 규제 포획만큼이나 우려해야 할 문제로 지목하고 있다. 코글리아니즈 등은 기업 로비스트들이 규제의 언룰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광범위한 면제 특권을 얻고 있고, 이런 은밀한 영향력이 궁극적으로 법체계의 공정성을 좀먹는다고 경고한다.


한편으로 일부 연구는 오늘날의 행정규제 과정이 옛날만큼 일방적으로 기업에 포획당한 것은 아니라고 반론하기도 한다(Scheffler, 2020; Walters, 2020). 규제 제정 과정에서 소비자단체 등 공익 옹호 세력의 영향력이 커지는 등 이해 균형이 나아졌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이미 만들어진 규제가 집행 단계에서 슬며시 힘을 잃는 경로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기업들은 때로 공개 석상에서는 규제비용을 한탄하지만, 정작 뒤로는 자신들만을 위한 특별 면제를 확보해 이익을 챙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언룰의 세계야말로 현대의 규제 포획 논의에서 새롭게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일부 연구자들은 이러한 숨은 규제 완화 장치들이 결과적으로 부유층과 기득권층에 상대적 이익을 안겨주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비판하기도 한다(Lindsey & Teles, 2017). 법의 빈틈을 이용하는 자와 정면으로 법을 지키는 자 사이의 불공정이 커질수록, 규제의 본래 목적이 흔들리고 사회적 신뢰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언룰 개념은 기존의 규제 과잉 대 규제 포획 논쟁에도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동안 규제정책을 둘러싼 정치경제 담론에서는 “규제를 너무 많이 해서 문제”라는 입장과 “규제를 제대로 안 해서 문제”라는 입장이 평행선을 그려왔다. 전자는 주로 기업과 보수 진영에서 주장하는 규제비용 과다론이고, 후자는 소비자·환경단체나 진보 진영에서 제기하는 규제 부실 혹은 포획론에 가깝다. 그런데 언룰의 관점에서 보면, 규제는 너무 많으면서도 너무 적을 수 있다. 우선, 규제 남용론이 과장되었을 수 있다. 규제의 양적 규모만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실제 현실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정부 규제의 분량이 몇만 페이지 늘었다는 식의 통계는 그것만으로는 유의미한 결론을 주지 못한다. 그 수많은 페이지 사이사이에 얼마나 많은 예외 조항과 면제 규정이 숨어 있는지에 따라 실질적인 규제 강도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코글리아니즈 등의 연구가 밝힌 바대로, 법령집에 의무 부과 문구가 X만큼 늘어났다면 동시에 그 20% 정도에 해당하는 면제 문구도 늘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겉으로 보이는 규제의 숫자만으로 기업의 실제 부담을 속단할 수 없다는 것이 언룰 연구의 주장이다. 이는 “규제가 과해 경제가 위축된다”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이다.


동시에 언룰 개념은 규제 포획론이 간과해온 측면에도 주의를 환기시킨다. 규제 포획 논쟁은 보통 정부가 규제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완화해주는 것을 문제 삼는다. 그런데 애초에 만들어진 규제가 보이지 않게 무력화되고 있다면, 그것 역시 포획의 일종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규제 포획은 꼭 드러내놓고 법을 바꾸는 형태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조문은 멀쩡히 두고 그 집행을 슬그머니 약화시키는 편이 정치적 저항도 적고 효율적일 수 있다. 언룰은 바로 그런 은밀한 규제 회피 경로를 제공함으로써, 겉으로는 엄정한 규율이 지배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유령 같은 예외들이 활개치는 행정국가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규제 정치경제의 역설이라 할 만하다. 규제는 많은데 규제가 없다시피 한 상태, 또는 규제를 풀어줌으로써 오히려 규제가 있는 척하는 상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겉과 속의 괴리는 규제 체제가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직결된다. 법의 책무를 다하는 줄 알았던 행정기관이 실제로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면, 국민 입장에서는 기대했던 보호 장치를 잃게 되는 셈이다. 결국 언룰 개념은 “규제가 너무 많다”는 주장과 “규제가 유야무야된다”는 주장이 동시에 성립 가능함을 보여준다. 규제의 양적 확대와 질적 이완이 한 체제 내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행정 권력의 실상을 드러내주는 통찰인 것이다.


룰과 언룰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현실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규제에 어느 정도의 탄력성과 재량 여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일률적인 규칙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때 신속히 대응하려면 일정한 예외 허용 수단이 있어야 하고, 사소한 위반까지 엄벌하는 비효율을 피하려면 행정의 선택적 집행 재량도 필요하다. 의도에 맞게만 쓰인다면 언룰은 선의의 유연성을 부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Barron & Rakoff, 2013). 실제로 의회가 **포괄적 면제 권한(big waiver)**을 행정기관에 위임하는 경우조차 있다(Barron & Rakoff, 2013). 이러한 측면에서 언룰 자체를 악으로만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문제의 핵심은 언룰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있다. 규제의 예외를 인정하되, 그 과정이 투명하고 공개적이어야 하며 남용 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룰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나 바람직하게나 불가능하다. 대신 언룰을 다루는 행정 절차를 개선하여 빛 아래로 끌어내는 노력이 요구된다. 예컨대, 중요한 규제 면제 조치를 내릴 때는 아예 처음부터 공고하고 의견 수렴을 거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특정 기업에 예외를 부여한 결정은 사후에라도 사법심사를 통해 정당성을 검증받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코글리아니즈 등 연구자들이 제안하듯, 이제는 행정법 체계에 언룰에 관한 법을 명시적으로 자리매김시킬 때다. 법치주의의 본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전 속 규칙의 세계뿐 아니라 그 주변의 비규칙(언룰)의 세계까지도 관리하는 보다 포괄적인 법치의 원리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 행정국가는 바로 그 숨은 언룰의 그물망 속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가 그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감시할 때 비로소 법의 지배는 온전히 구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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