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유는 권력이다, 대표성의 책임을 묻다.
Utrecht 대학 정치경제철학과(네덜란드)의 Rutger Claassen 교수의 최근 논문 ― A Fiduciary Theory of Property (Claassen, 2025)와 Property as Power: A Theory of Representation (Claassen, 2024) ― 이 흥미롭다.
소유에 "책임"을 묻는다. 새로운 생각의 논문이다. 아래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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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소유권’이라는 말은 단순히 재산을 가리키는 개념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곧 권력의 형태이며, 한 사람이나 집단이 자원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적 힘을 뜻한다. 루트거 클래센(Rutger Claassen)은 최근 두 편의 주요 논문을 통해 이 소유의 권력을 정치권력과 유사하게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Claassen, 2024; 2025).
그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정치권력은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대표자(representatives)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듯, 소유권력도 마찬가지로 대표성의 원칙 아래 통제받아야 한다.” 이 아이디어는 현재 소수 자산가나 대기업이 보유한 재산이 환경, 노동자, 소비자, 미래세대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자유민주주의는 이 문제에 ‘국가를 통한 규제’라는 간접적 대응 방식만을 취해왔다. 클래센은 이를 **"규제 모델(regulation model)"**이라고 부르며, 이 방식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새로운 모델을 제안한다. 그것은 **“편입 모델(incorporation model)”**이다. 이 모델은 자산 소유자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법인화하고, 그 법인 내에서 비소유자(노동자, 주민, 소비자, 환경 이해당사자 등)의 이해가 직접 대표되도록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때 중요한 원칙은 “모든 영향을 받는 자는 대표되어야 한다(All-Affected Principle)”는 것이다(Goodin, 2007). 재산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제3자의 삶에 구조적 영향을 준다면, 그 제3자에게는 대표받을 권리가 생긴다는 의미다.
이와 더불어 클래센은 ‘소유자’라는 존재를 **책임을 지는 역할(office)**로 재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이를 **“신탁적 소유 이론(fudiciary theory of property)”**이라 부르며, 기존의 자유주의·평등주의 양 진영이 공유해온 "절대주의적 소유 개념"(즉,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소유자가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개념)을 비판한다(Claassen, 2025). 대신 소유자는 자신의 권력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며, 일정한 경우에는 법적으로도 **신탁의무(fiduciary duty)**를 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접근은 기존 재산권 이론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다. 예컨대, 자유주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의 이론에서는 소유권은 개인의 자유에 기반한 배타적 권리이며, 정부는 이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Nozick, 1974). 반면, 존 롤즈(John Rawls)의 평등주의는 개인의 재산도 정의의 원칙 아래 조정되어야 한다고 본다(Rawls, 1999). 하지만 클래센은 이 양 진영이 모두 "법의 테두리 안에서의 절대주의"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같은 철학적 구조를 공유한다고 비판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논쟁이 생긴다. 한편에서는 클래센의 이론이 사적 소유의 본질을 훼손하는 위험이 있다고 비판한다. 예컨대 Arthur Ripstein(2017)은 소유를 공익적 목표에 예속시키는 것은 소유 자체의 독립성과 자유를 해친다고 주장한다. 또 일부 비평가들은 클래센의 "소유자의 공적 역할" 개념이 중세 봉건제도의 영주적 권한과 유사하다고 경고한다(Grey, 1980; Penner, 2020).
하지만 클래센은 이에 대해 응수한다. 오히려 오늘날 대부분의 부와 재산은 이미 법인을 통해 소유되고 있으며, 이 구조 자체가 사실상 대표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소유자의 이익만 대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Ciepley, 2020; Pistor, 2019). 즉, 이 구조를 실제로 비소유자의 이익까지 포괄하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의 공동결정제(co-determination)나 미국의 베네핏 코퍼레이션(Benefit Corporation) 같은 사례를 예시로 들며, 민주주의의 사적 영역 확대로 이를 설명한다(Ferreras, 2017; Alexander, 2018).
결국 클래센의 두 논문은 하나의 일관된 프로젝트로 수렴된다. 첫째, 소유는 권력이다. 둘째, 권력은 대표성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셋째, 현재의 간접 규제 모델은 한계가 있다. 넷째, 이를 보완하거나 대체하기 위한 구조로서 법인화된 대표구조(편입 모델)가 필요하다. 다섯째, 그 대표 구조는 신탁 의무를 기반으로 해야 하며, 법적 강제도 가능해야 한다. 여섯째, 궁극적으로는 비소유자의 권한을 법인 내부에서 직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논의는 단지 철학적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 클래센은 현실에서도 많은 부자들이 이미 ‘재단’을 통해 재산을 법인화하고 있으며, 이는 사실상 대표 구조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소유자의 의지를 강화하는 수단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제는 그 구조 안에 진정한 대표성을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처럼 ‘소유’를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을 넘어서, 그것을 민주주의적 책임의 구조로 통합하려는 시도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시사한다. 고도로 조직화된 기업 권력과 심화된 불평등이 문제로 대두되는 오늘날, 이러한 이론은 단지 철학적 주장이 아니라, 현실 정치경제의 재구성 논의의 출발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
Alexander, F. (2018). Benefit Corporation Law and Governance: Pursuing Profit with Purpose. Berrett-Koeh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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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assen, R. (2024). Property as power: A theory of representation. Journal of Social Philosophy, 1–19. https://doi.org/10.1111/josp.12587
Claassen, R. (2025). A fiduciary theory of property. Journal of Ethics and Social Philosophy, 30(2), 205–240. https://doi.org/10.26556/jesp.v30i2.4064
Ciepley, D. (2020). The Anglo-American misconception of stockholders as “owners” and “members”. Journal of Institutional Economics, 16(5), 623–642.
Ferreras, I. (2017). Firms as Political Entities: Saving Democracy through Economic Bicameralism. Cambridge University Press.
Goodin, R. (2007). Enfranchising all affected interests, and its alternatives. Philosophy & Public Affairs, 35(1), 40–68.
Grey, T. C. (1980). The disintegration of property. In J. R. Pennock & J. W. Chapman (Eds.), Nomos XXII: Property (pp. 69–85). NYU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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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ls, J. (1999). A Theory of Justice (Revised ed.). Harva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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