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date: Nov 26, 2016 6:17:16 AM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정빛나 기자 =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기치로 내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자 정부 관련 부처는 농축수산물의 수출과 수입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가능성을 점검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는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온 지난 9일 저녁 정부 세종청사에서 긴급회의를 열었다.
농식품부와 해수부는 일단 트럼프 당선자의 공약 중에서 농축수산 관련 공약이 거의 없어서 향후 출범할 트럼프 행정부가 해당 분야에서 어떤 입장과 요구를 내놓을지 분명치 않은 만큼 상황 전개를 보아가며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과 보조를 맞춰가며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대선 결과가 당장 미국과의 농·축·수산물 교역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트럼프 당선자가 보호무역주의를 일관되게 표방해온 만큼 새 행정부의 정책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통상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쌀 관세율·쇠고기 수입 불똥 튈 수도
농식품부는 지난 9일 오후 이준원 차관 주재로 긴급 실국장회의를 열어 미국 대선 결과가 쌀 관세율, 쇠고기 수입, 과실류 검역, 농식품 수출 등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고, 관계 부처 및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 유관기관과 긴밀히 협조해 선제 대응 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회의에서는 트럼프 후보의 당선으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사료 곡물 수입 등 농산물 수입가격에 변동이 있을 수 있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 대한 우리 농식품 수출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또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쌀 관세율, 쇠고기 수입 등 농업 통상 현안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정부가 우선 주목하는 것은 지난 2014년 9월 세계무역기구(WTO)에 쌀 관세화 방침을 통보하면서 제시한 관세율 상당치 513%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다.
우리 정부의 쌀 관세화 방안에 대해서는 미국, 중국, 태국, 베트남, 호주 등 5개 국가가 이의를 제기한 상태인데, 미국은 최근까지 관망하는 자세를 유지해왔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가 나올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또한, 외국에서 의무적으로 들여오는 저율 관세할당(TRQ) 물량에 대한 미국의 입장 변화도 포화상태에 이른 우리 쌀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난해 국내 쌀 생산량은 432만7천t으로 6년 만에 가장 많았고, 올해도 대풍이 이어져 예상 생산량이 420만2천t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 저율 관세할당 물량은 1995년 5만1천t에서 2014년 40만9천t으로 20년 만에 8배가량 늘었다.
농촌경제연구원 이상현 부연구위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우리가 제시한 관세율 상당치 513%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5개 국가 가운데 미국의 입장이 중요한데 미국은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며 "저율 관세할당 물량에서 미국산 쌀이 차지하는 비율 등을 지켜보고 입장을 결정하려는 것일 텐데 만약 마음에 안 들면 관세율을 더 낮추라고 할 수도 있고. 저율 관세할당 물량을 아예 늘리라고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한·미 양국은 지난 2008년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합의하면서 한국이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만 수입을 허용하되 소비자들의 신뢰가 회복되면 전면 수입개방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한·미 두 나라의 수출입 업자들이 '30개월 미만' 합의를 자율적으로 원만하게 이행하면서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호주산을 추월하며 신뢰를 회복해가는 추세다.
하지만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2013년 '30개월 미만' 합의가 잠정적인 합의라며 전면적인 수입개방을 요구할 수 있다는 입장을 시사한 바 있고, 트럼프 당선자의 보호무역주의 바람을 타고 이러한 요구가 표면에 떠오를 수 있다.
이상현 부연구위원은 "한국 상황 때문에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미국에 잘 설명해서 현재 원만하게 수입이 이뤄지고 있는데 미국 정부가 만약 자국의 쇠고기 산업을 보호하려면 수출 확대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보호무역주의 기조 강화로 우리 농식품을 미국에 수출할 때 자료 제출이나 검역 등의 절차가 더 까다로워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 해양수산 분야 "당장 영향 없지만, 개방압력 커질 수도"
해양수산부는 9일 저녁 김영석 장관 주재로 열린 긴급회의에서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해양수산 분야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고 수산물의 대미수출에도 큰 영향이 없겠지만, 금융 분야의 혼란이 실물경제로 전이될 경우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대미 수산물 수출은 올해 10월까지 2억100만 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5.8% 증가했는데, 미국 내 우리 수산물의 시장 점유율이 1~1.5%로 낮은 수준이고, 다수 품목이 무관세로 교역이 이뤄지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수산물 수출에는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이 해수부의 판단이다.
다만, 해수부는 양자·다자간 무역 협정의 변화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 예상 시나리오별로 대응 방안을 면밀히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
해운·항만 분야의 경우 단기적으로 해상 물동량 등에는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물동량 감소, 유가 하락, 금리 인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금융 당국과 협조해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기로 했다.
이 밖에 이민자·난민 등에 대한 출입국 통제 강화로 미국 항만에서 선박보안규정(ISPS Code) 등이 확대 적용될 경우, 우리 선박의 미국 항만 입출항에 애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기로 했다.
수산물의 경우 한미 FTA에서 즉시 개방부터 최장 15년 후 개방까지 기간을 나눠 사실상 거의 모든 품목을 개방하도록 협상이 이뤄졌는데 개방 시기를 앞당기라는 요구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개방 시기를 12~15년 후로 미뤄둔 냉동 명태, 냉동 민어와 넙치 등의 품목이 대표적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일부 품목은 여전히 개방까지 최대 10년이 남았지만, 트럼프 당선으로 그 기간을 줄이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실무적인 고민이 있다"며 "그런 상황이 되면 협상을 하면서 최대한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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