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date: Mar 02, 2016 1:25:30 AM
미국과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베트남 등 세계 12개국의 관세철폐를 핵심으로 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5일 타결됐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경제협력체라는 점에서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도 추진력을 받을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장관)가 ‘어떤 형태로든 TPP 가입 협상에 착수할 것을 천명’함으로써 가입협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TPP 12개국 중 일본·멕시코 외 10개국과 이미 FTA 체결
농업 연간 440억원 무역수지 악화·생산액 1000억 감소
일본 쌀·육류 대폭 개방…쌀 협상제외 보장 못 받을 듯
하지만 우리나라는 추가로 가입하는 측면에서 적잖은 입장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란 관측이 높다. 우리나라는 TPP 12개국 가운데 일본, 멕시코를 제외한 10개국과 이미 FTA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TPP 양자협상 과정에서 농업분야는 기존 FTA의 협상 예외인 쌀을 비롯해 관세감축 기간을 설정한 억제장치가 일시에 허물어져 피해가 집중될 것이 자명하다. 특히 쌀과 쇠고기·낙농품 등 축산분야의 추가 개방에 따른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타결 현황=TPP 가입 국가는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페루, 칠레,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 12개국. 이들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37%, 교역규모의 약 25%를 점유하는 거대 시장이다. 이번 협정문은 30개 챕터로 포괄적 시장접근, 신통상이슈 체결, 다양한 경제수준에 있는 국가 간 무역활성화 등의 합의가 이뤄졌다.
이들은 상품협정문에서 농업수출보조금 폐지와 과잉 어획된 어족자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보조금 및 불법어업(IUU) 선박의 보조금도 금지시킨 것으로 알려진다. 정확한 내용은 협정문이 공개돼야 파악되겠지만 각국 이해관계에 따른 세부협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본격 협상은 지금부터라는 것이다.
△국내 농업에 미치는 영향=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TPP 참여에 따른 농업분야 피해는 연간 4000만 달러(440억 원)의 무역수지 악화와 1000억 원을 웃도는 생산액이 감소된다. 육류와 쌀, 과일, 과채류 및 쇠고기·낙농품 등 축산분야의 생산액 감소가 클 것이란 전망이다.
가장 우려되는 품목은 쌀이다. 쌀은 그동안 각국 FTA에서 ‘양허제외’로 협상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하지만 일본의 TPP 가입으로 쌀의 협상 제외를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더욱이 지난해 쌀 관세화를 천명하면서 513% 관세율과 국별 쿼터 및 사용목적을 금지하는 ‘양허표 수정안’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출했다. 지난 1995년부터 관세화 유예 조건으로 매년 MMA 물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데 지난해 40만9000톤이다. 이는 쌀 관세화 이후에도 매년 수입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호주, 베트남, 필리핀 등 5개국이 수정안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양자 협상이 진행 중이다. 각국은 관세화 조건으로 기존 국별 쿼터와 밥쌀용 등 사용처 적용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변수는 일본이다. 일본은 TPP 협상에서 무관세 쌀 수입량을 미국산 5만 톤, 호주산 6000톤을 보장했다. 이후 13년차부터 각각 7만 톤과 8400톤을 늘렸다. 밥쌀용 쌀이 포함된 점에서 우리나라에도 현행 쿼터 이상의 물량을 요구할 것이 뻔하다.
축산분야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현행 38.5%인 쇠고기 관세를 16년에 거쳐 9%로 인하하고, 돼지고기 고가품 관세도 10년 뒤 완전철폐를 선언했다. 당초 ‘성역’을 주장하던 쌀·밀·보리·사탕수수(설탕)·육류(쇠고기, 돼지고기)·유제품 등의 개방 폭을 늘린 것이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축산시장 추가개방 요구가 거세질 전망이다.
칠레는 2003년 발효 이후 이미 재협상을 위한 ‘FTA 이행위원회’가 진행 중이다. 농축산물은 1020개로 이중 저율관세할당(TRQ) 적용품목 18개와 DDA 이후 논의 품목 373개 등 총 391개가 재협상 대상이다. 감귤, 오렌지, 파인애플 등 신선과일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우려가 크다.
지난 8일 열린 ‘TPP 전략포럼’ 자료에 따르면 수산보조금 지원이 금지되고, 농업 수출보조금도 폐지된다. 동·식물 위생검역(SPS)도 과학적 근거와 투명성에 기반해 채택의무와 지역화 이행, 동등성인정 절차 관련 수출국과의 정보교환 의무 등이 규정됐다. 이에 따라 축산물과 과수 분야의 수입금지 품목 개방우려가 제기된다.
△농업계 반응과 향후 전망=TPP는 협상 타결에 따라 미국과 일본 등이 자국의 의회 비준 동의를 거친다. 하지만 각국의 내부 사정과 세부협상 등을 감안할 때 2017년에야 발효될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 관심표명 이후 지금까지 TPP참여국들과 예비양자회담, 경제적 영향분석,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농업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국농경인중앙연합회는 대해 성명을 내고 “우리 농업·농촌의 궤멸적 타격이 우려되는 TPP의 정부 참여를 강력 반대한다”며 “참여를 강행할 경우 350만 농업인은 사활을 걸고 대정부 투쟁에 나설 것”을 천명했다.
이상현 농경연 부연구위원은 “협정문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세밀하게 분석해 우리나라에 영향이 가장 낮다고 판단될 때 가입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며 “과일의 경우 그동안 SPS로 수입을 억제해왔는데 TPP에 가입하면 개방 우려를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어명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연구위원도 “TPP는 ‘한·일 FTA 성격’이란 점에서 가입을 신중해야 하는데 일본의 쌀 추가물량 양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이 쌀과 쇠고기, 동식물위생검역(SPS)에서 자국의 입장을 강요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