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단 3초짜리 장면 하나가 전세계 마트의 냉동고를 털었다. 주인공이 냉동김밥 한줄을 통째로 입에 넣는 순간 미국 내 관련 제품 판매량은 700% 폭증했고, 식품 기업의 주가는 단숨에 30% 넘게 치솟았다. 케이(K)-콘텐츠가 케이(K)-푸드에 또 한번 거대한 기회를 선사한 것이다.
과거 필자는 이러한 열풍의 이면에 국산 식재료가 소외되는 ‘빛 좋은 개살구’의 현실을 지적한 바 있다. K-푸드의 세계화가 한국 농업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식재료의 프리미엄화, 통합 유통시스템, 민관 협력을 제안했다. 반갑게도 그사이 의미 있는 변화의 싹이 텄다.
올해초 정부는 2028년까지 농식품 수출액 150억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는 ‘K-푸드 플러스(+) 수출 혁신 전략’을 발표했다. 주목할 점은 스마트팜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수출 전용 생산기반’을 확충하고, 해외 수요와 연계한 생산-유통 체계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민간 영역에서도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신세계푸드는 최근 전남 해남의 고구마농가와 협력해 개발한 디저트용 고구마 페이스트를 북미지역 스타벅스에 납품하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는 대기업의 자본·마케팅 능력과 농가의 생산력이 결합한 이상적인 상생 모델의 초기 성공 사례다.
하지만 이러한 개별적인 약진들을 K-푸드 생태계 전체의 도약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한단계 더 나아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바로 제품(product)을 넘어 플랫폼(platform)을 수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와쇼쿠’라는 문화와 엄격한 품질 관리시스템을, 태국이 ‘타이 셀렉트’라는 인증시스템을 통해 자국 식재료 생태계를 구축했듯이 우리는 여기에 정보기술(IT) 강국의 이점을 결합한 21세기형 디지털 플랫폼을 조성해야 한다.
이 플랫폼은 두가지 핵심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첫째는 ‘신뢰’의 디지털화다. 최근 두바이로 수출된 샤인머스캣 포장 상자의 큐알(QR)코드를 소비자가 스캔하면 경북 상주의 생산농가 정보와 작물 생육 과정, 당도 측정값, 저온유통 전 과정의 온도 기록이 블록체인에 기록돼 나타난다. 이러한 생산-유통 이력의 완전한 투명성이야말로 수많은 ‘코리안 프리미엄’ 농산물의 가치를 증명하고 값싼 중국산과의 차별점을 만드는 핵심 무기다.
둘째는 ‘수요’의 데이터화다. 플랫폼은 전세계 한식당·식료품점의 판매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해 국내 농가에 전달해야 한다. “다음 분기 프랑스 파리에서는 찌개용 고추장 수요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타코용 쌈장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예측 데이터를 기반으로 농가는 ‘수요 예측형 농업’을 실현할 수 있다. 이는 K-푸드 열풍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개별 농가가 함께 탈 수 있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정부와 기업의 최근 행보는 분명 올바른 방향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러한 점들을 선으로 잇고, 선을 면으로 확장하는 플랫폼 구축이다. K-푸드 열풍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맞아 단순히 쌀과 고춧가루를 파는 것을 넘어 전세계 식당과 소비자를 잇는 K-농업의 ‘아마존’을 만들어낼 때다. 지구 반대편의 셰프가 한국산 들깻잎의 QR코드를 찍었을 때 전남 담양 농부의 얼굴과 철학을 마주하게 되는 날, K-푸드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한류’로 완성될 것이다.
이상현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