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27] 2010.03.29 고통,영광의 신비

2010년 03월 29일 - [(자) 성주간 월요일]

고통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매맞으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시관 쓰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영광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하늘에 불러올리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마리아께 천상 모후의 관을 씌우심을 묵상합시다.

오늘의 말씀 (요한 21,20-23)

예수님과 베드로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나눔거리

길게 보이던 9일기도의 끝날입니다. 오늘은 고통의 신비와 영광의 신비 총 10단을 하면 됩니다.

성주간을 맞이하여 고통의 신비와 영광의 신비를 마지막으로 9일 기도를 같이 마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행복합니다.

마지막 복음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예수님과 베드로의 마지막 대화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예수님은 세번 물어보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말에는 의심의 예수님이라기 보다는 너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더이상 죄의 굴레에서 살지 말라는 자비의 예수님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 (Good) 을 줍니다. 다만 그 좋은 것을 좋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바로 그 좋은 것을 좋게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위해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문

현대의 작은 순교

길을 가다 보면 담배꽁초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고,

차를 몰고 가다가도 꽁초 따위를 창밖으로 휙 던져버리는 것을 볼 때가 종종 있다.

그렇게 버려놓으면 뒤에 누군가가 치워야 한다.

기초 질서가 잡혀있지 않은 까닭이고,

이는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때문이리라.

자라 나는 세대 중에 욕설을 함부로 퍼붓는 사례를 자주 본다,

얼굴을 봐서는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닌데도

입에서는 고약한 욕설이 튀어나오고 만다.

참으로 큰일이다.쉽게 낙태하고 이혼하는 부부도 적지 않고,

특히 텔레비전 방송이 그런 문화를 앞장서서 끌고가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믿고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어떠해야 하는가?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고 욕지거리를 일삼거나

낙태와 이혼을 밥먹듯이 해도 되는 것일까?

지난해 세상을 떠난 끼아라 루빅은[모든 이를 하나로]라는

책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크리스천에게는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을 알면서도

모든 사람이 하기 때문에 한다는 핑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비웃음을 당하고 다른 사람이 우리를 나쁘게 이야기할지라도

시 대사조를 거슬러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즐겨하시는 현대의 작은 순교입니다.

남 들이 한다고 해서 그런 시류에따라가지 않고 바르게 사는 것이

현대의 순교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순교라면 죽는 것이다. 이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나의 목숨이고 보면,

못숨까지도 내어놓을 각오로 나선다면 그야말로 무서울 것이 무에 있겠는가!

다시 끼아라의 말을 들어보자.

“많 은 사람들이 빛줄기 밖에서.

즉 어둠속에서 걸어간다면 우리는 빛줄기 안에 더욱 더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고,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하면서

다른 많은 이가 하느님의 뜻을 다시 살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고

또 그들 위에 하느님의 계획이 완성 되도록 도와 줄 수 있습니다.

어떻 게 하느님의 뜻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모든 것, 모든 것을 잃으면서 온 마음, 온 영혼,온 힘 다해 현 순간을 잘 살고,

나에게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단지 살아있는 하느님의 뜻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행동이든 행동하기 전에 ‘예수님,당신을 위해서

이 일을 합니다’라고 말씀드리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완전하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 일을 마치 선물을 보내듯이,아름답게 포장을 해서 하느님께

가져가도록 천사들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매번 이렇게 하면 순간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이 하늘에 남아 있께 됩니다.”

교 항 베네딕토 16세는 이 달 19일부터 1년간을 ‘사제의 해’로 선포하고

모든 사제들이 성덕으로 나가기를 당부하고 있다.

제2차 바틴칸공의회는 직무 사제직뿐만 아니라,

모든 평신도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왕직,

예언직을 통해 사도직을 수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6월호 월간 그물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