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11] 2010.03.13 고통의 신비

2010년 03월 13일 - [(자) 사순 제3주간 토요일]

고통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매맞으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시관 쓰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오늘의 말씀 (루카 18,9-14)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

9 예수님께서는 또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나눔거리

오늘의 말씀은 너무도 유명한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입니다. 그냥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일화입니다. 누가 정말 하느님 앞에서 진정한 기도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결코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 아니라 떳떳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런 떳떳한 사람에게는 정말 죄가 없는 것일까요? 이 일화안에서도 바리사이는 세리에게 단죄하는 죄를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기세당당합니다.

그러나 세리의 기도는 진심으로 가슴을 울리게 만듭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자신을 항상 성찰하는 삶안에서는 결코 자신이 죄인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항상 후회와 미안함 그리고 여러가지 부족한 것들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죄인의 삶이고 성찰입니다. 그렇게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자신에 대한 비하나 자기 혐오에서 나타나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 보시기에 항상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무엇이 부족한지 항상 인지하고 있는 사람의 참된 태도입니다.

신앙은 믿음이고 그 믿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부족함 그리고 자신이 죄인같다는데서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 죄인임을 고백하는 그 참된 마음은 결국 하느님의 자비를 가져오게 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문

“하느님의 대사들”

곤궁에 빠져있으면서

구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곤궁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단순히 좋은 일을 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

현대 사회는 거지를

게으름뱅이나 비렁뱅이라고 부르며

발가락의 때처럼 여긴다.

그러나

예전에 그리스의 사람들은

곤궁한 사람을

하느님의 대사라고 불렀다.

당신들이 게으름뱅이나 비렁뱅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사실은 하느님의 대사들이다.

하느님의 대사로서

당신들은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음식과 옷과 안식처를 받아야 한다.

회교의 선생들은 하느님께서 환대할 것을 명령하신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환대는 회교 국가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국가에서는

환대의 의무를 가르치지도 않고 실행하고 있지도 않다.

─ 피터 모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