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13] 2010.02.16 환희의 신비

2010년 02월 16일 - [(녹) 연중 제6주간 화요일]

환희의 신비

1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2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합시다.

3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낳으심을 묵상합시다.

4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심을 묵상합시다.

5단 마리아께서 잃으셨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을 묵상합시다.

오늘의 말씀 (야고 1,12-18)

시련과 유혹

12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13 유혹을 받을 때에 “나는 하느님께 유혹을 받고 있다.” 하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시고, 또 아무도 유혹하지 않으십니다.

14 사람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15 그리고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16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17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변동에 따른 그림자도 없습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나눔거리

"다 하느님의 뜻이겠지" , "뭐 하느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시련에 대처하는 신앙인의 모습 중 경계해야 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의 말씀에 나온 유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욕심이나 교만에서 시작되고 그로 인해 닥친 시련인데도 하느님의 탓으로 돌리거나 하늘의 뜻이라고 돌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생각하기 싫어서 복잡하게 꼬인 나의 시련의 실타래를 풀기 싫어서 그냥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시련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유혹으로 넘어가는 가장 쉬운 길입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하느님의 뜻으로 돌리고 뭔가 이유가 있으니 안되는 것일거야 하는 심정으로 신앙을 돌리면 신앙은 결국 핑계거리이자 허울좋은 변명거리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자신의 시련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회피하며 포기하기 좋아하는 것이 결코 신앙인이 아닐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 7장 20-2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먼저 얘기한 것처럼 하느님의 창조엔 선한 것만이 나타났지만 결국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사람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립힌 것입니다. 창세기는 이를 원죄라고 표현하며 선악과를 먹은 아담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선하게 창조된 그 창조물인데 그 창조물이 세상을 어지럽히지만 그 안에서의 희망은 그들은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온 선물과 은사를 통해 다시 하느님의 선한 세상으로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노력하는 자녀가 바로 빛의 자녀이자 하느님의 자식 그리고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 (순수한 상태)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목표는 바로 하느님이 창조한 맑은 세상으로 다시 회귀하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오늘의 기도문

신유박해 순교자 황일광(黃日光, 시몬, 1756-1802년)은 백정 출신이었지만 교우들이 그를 애덕으로 감싸 주고 모든 교우들과 똑같이 대하니,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 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

또 유군명이란 분은 이존창에게서 세례명 시메온으로 영세한 뒤에, 자기 종들을 모두 해방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이 땅에 살았던 신앙 선조들은 신분의 차별 없이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하고 서로 교우(敎友)라고 불렀습니다. 남녀의 차별 없이 서로 동일한 인격체로 대하였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교우들의 형제자매 공동체는 보이지 않는 천국을 믿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공동체가 없었다면, 순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교우 여러분, 서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 ‘보이지 않는 천국’을 보여 줍시다! 주님의 날을 미리 보고 기뻐한 아브라함처럼, 하느님을 만날 그날, 천국의 나날을 내다보고 바라보며 신앙의 여정을 함께 갑시다!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