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08] 2010.03.10 영광의 신비

2010년 03월 10일 - [(자)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영광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하늘에 불러올리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마리아께 천상 모후의 관을 씌우심을 묵상합시다.

오늘의 말씀 (마태 5,17-20)

예수님과 율법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나눔거리

율법을 완성시키러 오신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수많은 율법으로 사람들을 보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나요?

"사람이 왜 저래?"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어?" 라는 말에는 정말 하느님의 율법 이전에 의로움을 행하지 못한데 대한 우리의 판단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자신의 편견이나 욕심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느끼지 않나요?

수많은 율법으로 사람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했던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을 나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율법으로 사람들을 보아왔는지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단죄하며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나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은 결국 하나입니다. 사랑하라는 것... 자신을 사랑하듯 남들도 사랑하라는 것... 그 사랑의 마음이 아니라면 결국 우리의 율법도 율법학자의 것들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문

당신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 미쉘 꽈스트 사제 (1954- )

주님,

당신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합니다.

육신의 눈을 감고

마음의 눈마저 감으면,

당신은 고요히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저는 당신께 저를 드러내고

당신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주님,

무엇을 느끼지 못해도

무엇을 보지 못해도

무엇을 듣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모든 생각이 사라져 텅 비어도

모든 이미지가 사라져도

저는 단지 어둠 가운데 서 있습니다.

보십시오. 주님.

고요 속의 당신을 만나고자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하오나 주님,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저는 이미 홀로 있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과 함께 있습니다.

제 안에 많은 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제 안에 둥지를 틀고

힘들게도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맡겨 둡니다.

주님,

당신 앞에 나아갈 때 그들과 함께 나아가고,

당신 앞에 자신을 드려낼 때도

그들과 함께 드러내겠습니다.

저는 여기에,

아니 그들도 여기에

당신 앞에 이렇게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