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02] 2010.03.04 빛의 신비

2010년 03월 04일 - [(자)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빛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가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심을 묵상합시다.

오늘의 말씀 (루카 16,19-31)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나눔거리

우리 신앙의 종착점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영원한 생명이란 하느님이 마련해주는 아무런 걱정과 현실에서의 고난없는 삶을 이야기 합니다. 오늘의 복음에서는 부자와 라자로의 대비되는 현실과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천국의 모습이다 지옥의 모습이다 얘기하는 내용보다는 현실에서는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며 살아오는 그래서 서로의 어려움이나 힘든 상황을 잘 모르고 회개없이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는 것이 더 큰 내용일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루카 복음에만 나와있는 내용입니다. 루카 복음서 자체가 민족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이민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조건없고 배경이 없는 무조건적인 회개와 그를 통한 구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사실 부자가 말하는 '이곳의 고통'이란 잘 알 수 없습니다.

사실 현실에서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며 작은 것에도 나눌 줄 아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이나 죽은 세상에서나 천국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욕심과 두려움에 가득찬 사람은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죽은 세상에서 그 욕심과 두려움을 버리지 못해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한 천국 안에서도 지옥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이란 특별히 불구덩이나 악마들이 옆에서 득실거리는 그리고 반대로 천국은 아름다운 조명과 밝은 빛의 화려한 곳이라기 보다는 우리들의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는 세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천국인지 지옥인지에 따라 떠난 세상에서도 그 마음만은 가져가기에 천국과 지옥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교리적으로는 천국, 지옥 그리고 연옥에 대한 구분과 믿음을 가지고 인간의 죄에 대한 구원과 결정을 이야기하지만 이 세상에서 천국을 맞이하는 우리 마음은 결코 지옥과 어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문

각자에게 맞는 그 자신의 소명 - 닐 기유메트

"모든 인간은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다가가는 방법은 각기 다르다." 마르틴 부버, 「인간의 길」

준이 아버지의 작은 간이식당을 물려받았을 때 그의 나이 겨우 열아홉 살이었다. 그 식당은 마을의 중심가 한복판의 아주 목이 좋은 곳에 있었지만 이제껏 한 번도 호황을 누려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한 번도 식당이 번창하길 바라지 않았다. 그 노인은 신앙심이 매우 깊었으며, 그 자신의 일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것일지라도 하느님께 관심을 덜 갖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자주 침울해하며 "나는 직업을 잘못 택했어. 난 성직자가 되었어야 했는데."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그는 만년에는 눈에 띄게 더 자주 자신 안으로 움츠러들었고 손님들에게 소홀히 하는 때가 많아졌다. 그들은 주인의 의기소침함을 느끼고는 소곤소곤 은밀히 이야기하다가 식사를 끝내기 무섭게 바로 떠나곤 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은 다시는 그 식당에 오지 않았다.

준이 간이식당을 이어받았을 때 상황은 이러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준은 갓 대학을 졸업하고 마음 속에 어떤 특정한 직업을 정해 놓은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잠시 동안 그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가 그 일 자체에 어떤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그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을 결정할 때까지는 그 식당을 계속 운영해 나가는 것이 아버지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열아홉 살의 젊은이라면 누구라도 쓰러져 가는 사업을 일으켜 번창시키는 도전에 스릴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만 준은 보통 젊은이와는 달랐다. 그는 식당과 함께 아버지의 깊은 신앙심도 이어받았던 것이다. 그가 정말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하느님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것은 그의 최우선적인 관심사였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 조심스럽게 감추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식당을 다시 열었을 때 그는 마치 하느님을 배반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과연,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여러 유형의 허기진 손님들에게 식사 시중을 들어야 하면서, 진정 궁극적으로 중요한 유일하신 하느님께 어떻게 온전히 일생을 바칠 수 있겠는가?

이렇게 3년이 흘렀다. 3년 동안 준은 마지못해 식당을 운영하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루에도 여러 번 그랬던 것처럼, 현재 그가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기도하고 영성 서적들을 읽고 성서를 묵상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제 가게 분위기의 어떤 변화를 감지한 손님들은 더 많이 와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그를 정신 없이 바쁘게 만들곤 했다. 그 결과, 준은 더 관상적인 삶을 살기 바라는 그의 이상과 식당의 늘어나는 손님들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3년 후, 준은 그 밖의 다른 일은 어떠한 것이라도 전혀 마음에 두지 않고, 그 자신이 직접 하느님을 찾아 나설 때가 왔다고 결정했다. 준의 이러한 각본을 눈치채고 그의 계획에 대해 충고해 준 한 현명한 노신부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식당을 팔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그 장소를 5년 기한으로, 퇴직한 그의 사촌에게 임대해 주었다. 그러고는 무슨 일이 있든지 꼭 하느님을 발견하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길을 떠났다.

맨 먼저 그가 찾아간 곳은 그의 집 근처에 있는 엄격하기로 유명한 트라피스트 수도원이었다. 그들의 생활은 전부가 힘든 육체 노동과 단식, 기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것은 준에게 완전히 맞는 생활이었다. 하느님을 관상 수도원에서 발견하지 못한다면 다른 어디서 그분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수사가 되려고 결심했을 때의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준은 이 수도원에서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했다. 주위의 다른 수사들은 하느님을 발견한 것같이 보였다. 그들은 눈에 띄게 행복한 것 같았고, 평화로움으로 얼굴이 환히 빛났으며, 서로에 대한 감탄할 만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준은 정말 이 수도회에서 결코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으며, 얼마 후엔 건강마저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를 매우 좋아했던 수사들이 유감스러워하는 가운데, 그는 1년 후 수도원을 떠나야 했고 관상생활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버려야 했다.

그가 그 다음 단계로 한 일은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지원한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내게 필요한 건 본당 신부로서 더 활동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나는 그분의 말씀을 배우고 복음을 신자들에게 설교하며, 성사를 집행하고 증거의 삶을 보임으로써 하느님을 발견할 거야.'

그리하여 그는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꼬빡 2년 동안 신학공부를 했다. 그러나 그는, 매력적인 그의 인간성 때문에 동료 학생들과 교수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높았음에도 또다시 마음이 편안치 않았다. 다른 신학생들이 하느님을 발견하고 의미 있고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 반면, 그는 잠 못 이루고 안절부절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의 기도는 언제나 무미건조하고 공허했으며, 하느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하는 열망에 사로잡혔는데도 공부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하루하루가 그에게 아무런 실재적 의미도 없이 자신이 질질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도원을 떠난 후 좋아졌던 건강은 마침내는 그의 생활에서 오는 긴장으로 인해 다시 나빠졌다. 결론은 뻔한 것이었다. 그는 신학교를 떠나 다른 곳에서 하느님을 찾아야 했다.

세 번째로, 준은 이제까지보다 더 하느님을 발견하기를 갈망하면서 자기에게 맞는 소명을 찾기 시작했다. 이전의 두 체험에서 자신의 소명은 사제나 수도 성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생각했다.

'괜찮아, 나는 평신도로 살아갈 거야. 그렇지만 가난한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에게 봉사하는 데 모든 시간과 힘을 쏟으면서 하느님을 발견할 거야.'

그는 2년 동안을 빈민지역에서 무단 거주자들과 함께 살면서 몇몇 부류의 사람들과 삶과 소망을 온전히 함께 나눔으로써 진지하고도 열심히 사회활동을 했다. 그는 몸을 아끼지 않고 그들을 돌보는 데 헌신했으며, 사회 정의구현에 대한 뜨거운 열의를 갖고 있었고, 전심전력을 다해 가난한 이들 편을 들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는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하느님을 발견하기 위한 이전의 두 번의 시도에서 늘상 나타났던 모든 증세―체중 감소, 불면증, 불안, 기도할 수 없음, 그의 삶에 대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의 뿌리 깊은 불만족 등―가 다시 나타났을 때 분명해졌다. 그래서 유감스럽게도, 또 그의 따뜻한 사랑의 마음과 말없이 온 힘을 다해 행동으로 실천해 좋은 결과를 이루어 내는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던 모든 사람이 아쉬워하는 가운데, 이러한 종류의 삶이 그의 동료들에게는 하느님을 발견하는 방법임이 분명하지만 자신에게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집을 떠난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그의 식당의 임대 기간이 곧 만료될 것이었고, 또한 당분간은 특별한 다른 계획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적어도 일시적으로라도 아버지의 사업을 다시 시작하는 것도 괜찮으리라고 결정했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 되돌아와 전처럼 다시 식당 운영에 전념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의 영혼의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하느님을 발견하기 위해 행했던 여러 가지의 시도는 그의 영적인 열정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 것만 같았다. 단 한 가지 곤란한 점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그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또 하느님을 발견하려는 그의 특이한 강박관념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의 모든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보고 궁극적으로 그에 대한 하느님의 존재의 의미를 찾아 내고 싶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끊임없이 손님들 시중을 들어야 했고, 음식 재료들을 새로 보충해야 했으며, 지켜야 하는 일정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구체적인 세세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당분간 보류하고 더 시급한 이 일들을 정성껏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준은 최선을 다해 다시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5년 동안 집에서 멀리 떨어져서 생활하면서 그가 체득한 한 가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이들의 삶에 동참하고 그들의 관심,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에는 손님들의 일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장사가 잘 안 되고 거의 손님이 없을 때 손님 중 누군가가 자기 말을 친구처럼 다정히 들어 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일 때면, 그는 기꺼이 그 손님 식탁에 앉아서 걱정거리를 함께 나누곤 했다.

이럴 때 준은, 중요한 것은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마음을 활짝 열고 어떤 감정이든지 그 사람을 억누르고 있는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말을 아주 조금만 하곤 했다. 이것은 항상 유익한 결과를 가져와 어쨌든 손님은 좀더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자기 문제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얻어 식당을 떠나는 것이었다. 준은 또한 이와 같이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더 절박한 경우에는 단식을 해서 자선을 베풀곤 했다. 점차 손님들은 자신이 이해받고 도움을 얻으리라는 걸 확신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그에게 들고 오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준 또한 사려 깊게, 그들이 자신들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도와 주거나, 적어도 그리스도인 정신으로 해결책 이상의 것을 수용하는 방법을 찾도록 도와 주곤 했다.

물론 이런 모든 일은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준이 이러한 역할을 위해 성숙해지고 사람들이 그들 삶에서 그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그런 한편 그는 식당을 팔고 하느님을 발견하는 또 다른 시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여러 번 들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는 어떤 장애요인이 항상 있었다. 게다가 실제로 그는 그의 꿈을 실현시킬 그 밖의 다른 어떤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식당을 운영하며, 상담을 원하고 문제를 해결할 힘을 주며 격려를 바라는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면서 그대로 눌러 있었다. 자연히 사람들은 그와 이야기하기 위해 점점 더 자주 들르게 되었다. 따라서 식당은 자주, 주로 그를 만나서 그의 말을 들으러 온 사람들로 꽉 차곤 했다.

이것은 그를 당혹스럽게 했다. 왜 사람들은 다만 그에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식당에 오는 것일까? 그래서 많은 단골 상담자들로 인해 특히 바빴던 어느 날 그는 방문자 중 한 사람에게 그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당신도 아다시피 프레드, 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개인적인 문제를 내게 얘기하는지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나는 신부도 아니고 그저 한 평범한 그리스도인일 뿐인데 말이에요."

그러자 다른 사람이 가식없이 진정 감탄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마도 그들 생각엔 당신이 하느님을 발견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