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26] 2010.03.01 빛의 신비

2010년 03월 01일 - [(자)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빛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가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심을 묵상합시다.

오늘의 말씀 (루카 6,36-42)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마태 7,1-5)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39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나눔거리

단죄하지 말라는 것은 죄를 밝히라는 말과는 다릅니다. 단죄란 오히려 죄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고 사람의 인격을 가져다 평가하는 작업을 얘기합니다.

죄를 밝히고 죄를 알게 하는 것은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작업가운데에서 사람 인격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를 하게 됩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야..." , "저 사람은 어쩔 수 없어..." 와 같은 단죄를 하게 되어 결국 그 사람도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단죄를 하는 사람은 잘못된 시선을 가지고 자신이 옳다고 얘기하며 자만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미워하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이처럼 단죄의 잘못된 부분을 부각시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평가하고 그 평가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성향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은 결국 자신에게 많은 편견과 오해의 눈을 만들 뿐입니다. 밝은 눈으로 하느님의 영으로 내가 분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시선을 가질 때 죄에 대한 분별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죄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죄의 단죄보다 사실 더 무서운 것은 그 죄에 갇치게 하여 그 사람이 그 죄로 인해 파멸에 이르는 동안 무관심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이 만든 그 창조의 순간처럼 온전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운 사람, 죄지은 사람을 위해 우리가 기도해야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문

우리는 죄의 경감을 옹호할 만한 증언을 통상적으로 무시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판단이 공정하다고 확신한 후에

그에 위배되는 증거들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진리라고 불릴 만한 것 중에서 이런 식으로 도출된 진리는 없다.

- 마릴린 로빈슨, 「아담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