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24] 2010.03.26 영광의 신비

2010년 03월 26일 - [(자)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영광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하늘에 불러올리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마리아께 천상 모후의 관을 씌우심을 묵상합시다.

오늘의 말씀 (요한 10, 22-39)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다

22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23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는데,

24 유다인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31 그러자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33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35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36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39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나눔거리

어제 밤샘 작업이후에 제대로 쉬지도 않고 무리한 하루 일정을 보내고 나서 미처 하루 나눔을 보낸다는 것이 그냥 바로 잠들고 말았습니다.

어제 날짜 것을 이제서야 보내게 되었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

어제의 복음에서는 예수님과 유다인들이 마치 백분 토론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하느님이야 변하지 않는 진리를 따르는 분이셨기 때문에 유다인들의 말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만 유다인들은 정말로 이 사람이 메시아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조바심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러한 유다인들은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아직도 지금 현재에도 믿고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에게는 아직도 그래서 구약의 성경이 그들의 율법을 만드는 지침이고 삶에서 모순되고 비 이성적이라고 판단이 되어도 율법을 마치 신처럼 모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어떤 신학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 믿음의 시작과 계기는 모든 사람이 다르고 그 믿음의 형상도 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믿음의 방법과 구체적인 믿음에 대한 증거또한 모두 다 다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믿음의 끝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구원이다." 우리가 이 현실에서 무엇때문에 믿는 것은 다를 수 있어도 그 믿음의 대상은 결국 하나일 수 있는 일치된 믿음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기도문

그 다음 알미트라는 다시 말하기를, 스승님 결혼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대답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나기를 같이 했으니 있기도 영원히 같이 해야 한다.

너희는 저 죽음의 흰 날개가 너희 날들을 흩어 버린 때에도 같이 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잠잠 하신 기억 속에서까지도 너희는 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너희의 같이 함에는 떨어진 사이가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늘 바람으로 너희 사이에 춤추게 하여야 한다.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얽어 매지는 말아라.

그보다도 그것으로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뛰노는 바다 같게 하라.

서로 서로의 잔을 채워 주라, 그러나 한 잔에서 같이 마시진 말라,

서로 서로 제 빵을 주라, 그러나 한 조각에서 같이 먹진 말라.

노래하고 같이 춤추고 즐기라, 그러나 서로 서로 혼자 있게 해주라.

마치 거문고의 줄들이 한 가락에 떨기는 하여도 줄은 서로 따로 따로이듯이.

너희 마음을 서로 주라, 그러나 서로 아주 내맡기지는 말라.

오직 한삶(대생명)의 손만이 너희 맘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이 서되 너무 가까이는 말라.

성전의 기둥은 서로 떨어져 서는 것이요,

참나무, 사이프러스는 서로 서로의 그늘 밑에서는 자라지 않는 법이다.

칼릴 지브랄 - 예언자 中 「결혼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