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06] 2010.03.08 빛의 신비

2010년 03월 08일 - [(자) 사순 제3주간 월요일]

빛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가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심을 묵상합시다.

오늘의 말씀 (필리 1,27-30)

믿음을 위한 투쟁

27 다만,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가서 여러분을 보든지 이렇게 떨어져 있든지 간에, 여러분에 대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한뜻으로 굳건히 서서 한마음으로 복음에 대한 믿음을 위하여 함께 싸우고,

28 어떠한 경우에도 적대자들을 겁내지 않는다는 소식 말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징표이며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징표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29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30 전에 나에게서 보았고 지금도 나에 대하여 듣는 것과 똑같은 투쟁을 여러분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나눔거리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수많은 율법과 규율로 다스려지는 삶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우리의 삶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때도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수많은 고난 그리고 그 안에서의 수많은 투쟁들은 우리가 쉽게 갈 수 있고 쉽게 살아갈 수 있는 유혹들을 모두 뿌리치고 살아갈 때 생기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한 믿음의 댓가는 이 현실세계에서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참 어리석고 미련한 것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조차 사실은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만큼이나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같은 특권입니다.

내적 투쟁이란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차라리 눈에 보이고 뚜렷한 적과 싸우는 것은 명분도 있고 깔끔하지만 항상 자신과 싸워야 하는 내적인 갈등과 고난은 그 누구도 알아주기 힘들고 그리고 이해한다고 해도 그 고통의 수위를 알아채지도 못합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두렵고 힘든 이유는 하느님의 계명이 너무도 어렵고 힘들고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계명을 지키지 못해 죄의 굴레안에서 살아야 할 때 가장 힘들고 두렵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지키지 못했을 때 벌을 받는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지키지 못했을 때 죄를 지어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고 속박에서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안타가워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의 기도문

우리가 밖에서 오는 고통을 더 크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정말 고통 없이 살아야 한다는, 고통을 겪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환상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고통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표상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 고통이 우리를 덮칠 수 있음을 염두에 두면 자기가해를 통해 고통을 더 깊게 하지 않고도 고통을 대할 수 있다.

이 사랑 안에서 우리를 박해하고 상처 주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할 때, 상처 입히는 그들의 행위에서 그들 자신의 질병을 발견한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의 행위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이 자신의 상처를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리의 사랑이 아주 강하면 그들의 상처까지 치유할 능력이 생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당신을 죽게 한 사람들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자기 자신과 자기 문제의 주위를 끊임없이 맴도는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 자기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자신의 두려움을 응시하면서 머무르게 된다. 모든 것을 다 통제하려는 사람은 외부 통제를 받는 삶 속으로 빠지게 된다. 모든 것을 옳게 하려는 사람은 끝에 가서 자신이 모든 것을 잘못했다고 확인하게 된다.

- 안젤름 그륀의《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