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01] 2010.03.03 환희의 신비

2010년 03월 03일 - [(자) 사순 제2주간 수요일]

환희의 신비

1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2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합시다.

3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낳으심을 묵상합시다.

4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심을 묵상합시다.

5단 마리아께서 잃으셨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을 묵상합시다.

오늘의 말씀 (마태 20,17-28)

수난과 부활을 세 번째로 예고하시다 (마르 10,32-34 ; 루카 18,31-34)

1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18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출세와 섬김 (마르 10,35-45 ; 루카 22,25-27)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나눔거리

오늘부터는 감사기도 27일의 여정에 들어서게 됩니다. 남은 감사기도의 여정동안 힘내서 마무리하도록 해요.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은 수난 예고를 하십니다. 자신이 죄인으로 넘겨지고 이내 곧 죽음을 당하게 될거란 이야기를 하시는데 제베대오의 두 아들들은 어머니와 함께 요즘 말로 청탁을 하게 됩니다. 이미 변모했던 예수님의 모습을 본 두 아들인지라 예수님의 능력을 굳게 믿고 있었지만 수난에 대한 세번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서는 무슨 뜻인지도 이해하지 않고 아니 들을려 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출세와 명예만을 위해서 이야기합니다.

예수님 입장에서는 참 한심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이 보고싶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만 인내했던 것입니다. 조금만 참으면 세상을 지배하는 예수님을 상상하며 그 나라의 좌의정 우의정 한자리씩 차지하고 싶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만 그 목표는 달랐던 것이었습니다.

흔히 우리들은 인내, 믿음이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 인내 그 단어 만으로 좋은 뜻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 복음의 일화를 통하면 인내나 믿음도 결국 자신의 욕심을 위해 쓰일 수 있는 것들일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과 인내또한 예수님이 가르쳐준 사랑의 범주에서 그리고 그 사랑이 요구하는 희생의 옷을 입었을 때만 그 믿음과 인내는 참된 열매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낮출려고 하는 사람들은 결코 사람들이 얕잡아 보거나 무시하게 되지 않습니다. 낮은 자세로 종이 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많은 욕심과 가진 것을 내려놓고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려고 하는 희생과 사랑의 마음일 것입니다. 처음 보는 아이에게 무릅을 꿇고 아이들의 눈높이까지 낮출 수 있는 마음을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낮아짐이란 결코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알수없는 진리를 알게 해줍니다.

부활을 위해 당신의 몸마저 바칠 수 있었던 예수님의 고뇌를 생각하면 그 죽음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물어보십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마태 20,21)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문

내 기도의 말은 - 이해인

수화기를 들고 긴 말 안 해도

금방 마음이 통하는 연인들의 통화처럼

너무 오래된 내 기도의 말은 단순하고 따스하다

뜨겁지 않아도 두렵지 않다

끊고 나면 늘 아쉬움이 가슴에 남는 통화처럼

일생을 되플이하는 내 기도의 말 또한 부족하고 안타까운

하나의 그리움일 뿐

끝없는 목마름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