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07] 2010.02.10 고통의 신비

2010년 02월 10일 - [(백)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고통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매맞으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시관 쓰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오늘의 말씀 (1티모 6,11-16)

믿음을 위한 싸움

11 하느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그 대신에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12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그대는 많은 증인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13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본시오 빌라도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대에게 지시합니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

15 제때에 그 일을 이루실 분은 복되시며 한 분뿐이신 통치자 임금들의 임금이시며 주님들의 주님이신 분

16 홀로 불사불멸하시며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 어떠한 인간도 뵌 일이 없고 뵐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영예와 영원한 권능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나눔거리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천주교만큼 고난과 고통을 포함한 신앙의 체계는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하거나 회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기꺼이 참고 견딜 수 있어야 하고 그로 인해 영광에 이르는 희망을 주는 종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 나누고 싶은 티모테오의 첫째 서간에 나온 "믿음을 위한 싸움"은 그러한 신앙과 영광의 관계를 보여주는 희망의 메세지이자 우리가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 될 것 같습니다.

"신앙심이 깊다" 란 표현을 우리는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고 소위 깊은 신앙안에서 더 깊은 유혹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고 그만큼 지키기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깊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작은 신앙이라도 굳게 지킬 수 있는 희망과 용기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지켜야 하는 대상이지 깊이를 가늠하는 대상이 아닐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흔히 착하게 살면 손해본다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삶을 영리하게 산다는 미명아래 사람들을 아프게 하며 자신만 살아나려는 삶을 추구합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아도 그것을 합리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교만을 지키는 길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결코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혹시나 하느님의 영광 아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비합리적이고 나에게 피해만 주는 것 같은 이 세상 속에서 고난과 고통은 결코 나를 죽이거나 헤하려는 것이 아닌 나를 성장시키는 하나의 작은 활력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낙담과 절망의 썩은 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영광의 맑은 샘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자세일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문

주여,

오늘의 나의 길에서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고갯길을 올라가도록

힘을 주소서.

내가 가는 길에

부딪히는 돌이 저절로 굴러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오히려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넓은 길, 편편한 길

그런 길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좁고 험한 길이라도

주와 함께 가도록

더욱 깊은 믿음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