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듯 걸어보기

어쩌다 공방

산책하듯 걷다보니, 만난 공간들 🚶‍♀️🚶‍♂

고철수씨는 턱시도 고양이다. 고철수씨는 어릴 때 눈을 다쳐 한 쪽 눈이 없다. 그래서 가끔 고철수씨랑 눈이 마주치면 나에게 윙크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철수씨가 살고 있는 공방은 아픈 동물도 편하게 쉴 수 있는 따뜻한 쉼터이다.

우리학교에서 빨래터 쪽으로 가는 길에는 언덕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어쩌다 공방’ 이라는 공방이 있다. 그 전에는 ‘그리다 널’ 이라는 이름의 공방이었는데 몇 달 전 뚝딱뚝딱 가게를 고치고 드림캐쳐가 주렁주렁 걸리더니 ‘어쩌다 공방’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지나가다가 뭘 만들고 파는지 궁금해서 유리창 너머를 기웃거렸는데 까만 고양이가 가만히 앉아 있는걸 보았다. 처음엔 인형인줄 알았는데 옆에 고양이를 소개하는 푯말이 있었다. 고양이의 이름은 고철수이고 어릴 적 눈을 다쳐 지금은 한 쪽 눈만 있다는 글이었다. 엄마는 그 글을 읽고는 “ 이름이 고철수라고? 그럼 이제부터 고철수씨라고 불러야겠다.” 하면서 웃으셨다. 고양이에게 ~씨라고 부르는 게 웃겼지만 고철수라는 이름에 은근 잘 어울리는 표현 같았다.

고양이 중에 마치 턱시도를 입은 것처럼 까만 몸에 목 쪽에 하얀 털이 있는 고양이들을 턱시도 고양이라고 하는데 고철수씨도 턱시도 고양이다. 그리고 항상 감겨있는 한 쪽 눈 때문에 꼭 나에게 윙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창가에 우아하게 앉아 한 쪽 눈으로 바깥을 바라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고철수씨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동시에 고철수씨가 저렇게 여유롭게 있는 어쩌다 공방은 아픈 동물들도 편하게 쉴 수 있는 쉼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고철수씨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다. 항상 공방 안에 가만히 앉아있는 줄 알았는데, 얼마 전 학원으로 가는 길에 고철수씨가 컴컴한 골목길에서 여유롭게 걸어 나와 열려있는 유리창을 통해 공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 막 돌아다닐 수도 있는 거였어?’ 뭔가 고철수씨의 이중생활을 봐버린 느낌이었다. 공방 안에서 얌전히 앉아있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우리 동네 길고양이 세계의 보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고철수씨를 볼 때마다 어릴 적에 본 ‘루돌프와 많이있어’라는 만화영화에 나오는, 인생에서 모르는 게 없는 시크한 길고양이인 ‘많이있어’가 생각난다.

어쩌다 공방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 번 쯤 눈여겨 고철수씨가 있는지 살펴보길 바란다. 만약 공방 안에 없다면 골목 어딘가를 순찰하고 있는 것이니 조금 기다리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 쪽 눈을 가진 턱시도 고양이, 고철수씨를 알게 되면 좋겠다.

박인하 ( 1학년 1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