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느리게 달리기

#완주라는 것의 의미

달리는 사이,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

  • 내가 완주에게 주는 의미 이도담 (1학년 3반)

  • 삶의 완주 조유민 (1학년 3반)

  • 자만심이 불러온 슬픔 신의엽 (1학년 3반)

  • 완주는 꿈? (꿈을 향한 달리기) 이효서 (1학년 4반)

내가 완주에게 주는 의미


“야, 이만큼이면 됐어.”

이 말은 과연 어떤 상황에 적합한 말일까? 긍정을 위한 말일까 부정을 위한 말일까? 내 머릿속에는 가끔 이런 질문들이 떠오른다. 최선을 다해 완주 지점에 도달한 자신에 대한 찬사를 위해 하기도 하고, 포기하는 자신의 미련을 덜어주기 위해서 하기도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런 말들을 어떤 상황에서 주로 할까?

완주는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말이다. 사람들마다 이 단어의 기준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사람들 속 하나인 나에게 완주는 앞에서 말한 ‘야, 이만큼이면 됐어.’ 또는 ‘수고했어. 넌 최선을 다한 거야.’ 같은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만한 정도이다. ‘최선’을 다해서 그 일에 대한 미련이 없을 때가 ‘완주’ 아닐까 싶다.

나는 예술중학교 미술입시를 완주했다. 최선을 다해서 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피땀눈물을 흘린 나. 하지만 자꾸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색을 강요하고, 선생님들마다 방법과 기준이 다른 평가로 인해 어떤 피드백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상황들은 나를 점점 지쳐가게 했다. 노란 파프리카에 파란색을 칠하라고 하고, 어떤 선생님이 내 그림 위에 시범삼아 칠한 걸 다른 선생님은 더 칠하라고 지적하고. 나는 이런 입시방법에 ‘불합리적이고 심각하게 주관적’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내가 쏟은 피땀눈물을 뒤로하고 입시를 그만뒀다.

그런데, 나는 분명 입시를 그만뒀는데. 친하지만 함께 만나서 놀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치열하게 달리고 있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그만뒀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한 걸까. 왜 후회가 없을까. 친구들이 보고 싶은데,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는데, 나는 오히려 이상하게도 너무너무 편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에게 미련이 없다는 걸. 내가 입시를 ‘완주’했다는 걸. 이때부터 입시의 기억은 내 머릿속 깊숙한 곳으로 접혀 들어갔다. 그리고 그 위로는 새로운 기억들이 자리잡혀갔다. 이렇듯 나는 ‘미련’이 없을 때를 내가 그 일에 대한 마라톤을 완주했고, 나의 노력과 최선에 찬사를 보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완주는 꼭 어떤 일을 끝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일을 어떻게든 끝내기 위해 스스로를 괴롭히며 매달려 있는 것보다, 나의 노력과 최선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모든 일에는 그 다음 일이 이어지게 되고, 한 가지 일에만 계속 집착한다면 그 다음 일을 할 수 없게 되니까. 완주가 무언가의 끝에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보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나에게 맞는 ‘완주’라는 단어의 의미를 부여해보고, 노력해보자.

‘모든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우리는 미래로 달아날 거니까.’

이도담 ( 1학년 3반)


삶의 완주


째깍째깍, 시곗바늘 소리다. 타박타박, 내가 달리는 소리이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 같다. ‘나는 혹시 하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너무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지만 분명히 시간은 가고 있고 나도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완주는 단순한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끝남과 동시에 새로운 무언가의 시작이다. 우리는 항상 삶을 달리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가듯, 구구단도 어려워하던 내가 방정식을 풀고 있듯, 우리는 삶 속에서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만약 뒤처진 듯한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남’의 속도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나만의 속도에 초점을 맞춰도 내가 지금 앞으로 가고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면, 내가 해온 일을 되돌아보자.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탁구를 쳐보았다. 처음에는 잘 치진 못했지만 점점 서브와 리시브가 잘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스핀이 많이 꺾이는 서브를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지금도 이 서브를 사용한다) 5학년 때는 탁구부에 들어가서 정확한 자세들을 배우고 모의시합도 해보며 내 인생의 ‘탁구’라는 것의 시작점을 만들었다.

처음으로 나간 탁구대회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세트 스코어 ‘2 대2’인 상황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내 차례가 왔다. 첫판을 이겼는데도 불구하고 내리 두 경기를 지고난 후라, 멘탈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결국 경기는 졌지만 값진 것을 배우고 다음 번을 기약할 수 있었다. ‘탁구’라는 것을 완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서 이런 경험들, 완주들이 굉장히 많다. 그 완주를 성공했을지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삶을 끊임없이 완주해나가고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만약 지금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이것도 삶으로 가는 한 울퉁불퉁한 길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노력은 완주가 가져오는 행복과 비례한다. 나 자신을 믿고, 나의 속도에 초점을 맞추면 비로소 삶이 조각조각 차오른다.

나는 지금도 열심히 달리고 있고, 앞으로도 달려 나갈 것이다. 삶의 완주를 반복하며 성장할 것이다. 그러므로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는 ‘완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유민 ( 1학년 3반)


자만심이 불러온 슬픔


‘나중에 하지 뭐.’라는 말은 정말 안 좋은 말이다. 마치 지금 잠깐의 행복을 위해 미래 목표에 대한 완주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마인드. 하지만 사람들은 안 좋은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말을 많이 쓴다. 나도 사람인지라 비슷한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대표적인 예시로 학교에서 5월 달에 진행한 ‘함께 달리기 프로젝트’가 있었다.

나는 지난 5월에 달리기를 굉장히 열심히 했다. 그리고 나는 활동 결과 발표 날, 당당히 우리 반 1등을 차지했다. 6월이 되자 학교에서는 새롭게 ‘달리기 도장판 모으기’ 활동을 계획했다. 나는 5월에 1등을 했으니, 6월도 당연히 1등을 할 것이라는 자신감에 계속 펑펑 놀았다. 나도 사람인지라 할 수 있는 한 6월 달리기의 시작을 계속 미루고 미뤘다. 다른 애들은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땀 흘리며 달리고 있었는데, 나는 5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때는 6월 11일. 평소처럼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책상 위에 있던 달리기 도장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걸 보고 바로 계산을 해보았다. ‘만약 오늘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29일 날이면 도장을 모두 채울 수 있겠네? 그래, 오늘부터 시작해도 충분하겠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조금 많이 여유로운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 오만한 생각이었다.

저녁 8시경, 나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런데이(Runday) 앱를 켜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 달리기의 목표는 1km를 7분 이내로 달리기. ‘대충 노래 두 개가 6~7분 정도니까 이 노래가 끝나기 전까지만 뛰면 되겠다!’ 너무 힘든 나머지 중간중간 걷기도 하며 1km를 완료했는데 결과는 8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어라? 혹시 중간에 너무 쉬어서 그런가?’ 나는 자존심이 상하여 쉬지도 않고 바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앱에 찍힌 기록은 9분.

‘속도를 너무 느리게 하고 달렸나’라고 생각하고 바로 다시 뛰어 보려 했지만 너무 힘이 들었다. 나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왜 안 되는 거지? 도대체 왜?!’ 그리고는 후회가 몰려왔다. ‘내가 만약 조금만 더 일찍부터 뛰었더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계속 후회와 자책을 하다가 진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다시 한 번 뛰었다. 역시 이번에도 실패. 이번 기록은 8분이었다. 결국 나는 벤치에 앉아 점점 떠오르는 달을 보며 생각했다. ‘달은 매일 저리 부지런하고 빠르게도 올라와 저녁이라는 완주 결승선에 도착하는데, 왜 나는 안 되는 거지?’

결국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저녁 모기와 흔들리는 나무 사이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나가서 얻어온 거라곤 모기한테 물린 자국, 누구랑 싸운 건지 나뭇잎과 흙이 막 묻어 만신창이가 된 티셔츠까지. 내가 만약 자만심을 갖지 않고, 처음부터 부지런히 달리기를 했다면 지금의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까?

신의엽 ( 1학년 3반)


완주는 꿈? (꿈을 향한 달리기)


나는 꿈을 꾸었다. 미래에 내 꿈인 무대에서 노래하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 길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난 계속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하지만 나의 오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계속 달려온 이 길을 포기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꿈이 많았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사진작가’라는 꿈을 꾸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꿈이 생겼다. 유튜브에서 돌아다니는 베이킹 영상을 보았고 ‘파티시엘’이라는 꿈에 도전하고 싶었다. 파티시엘은 전문적으로 베이킹을 하는 사람으로, 초콜릿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은 ‘쇼콜라티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베이킹의 매력은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부모님은 나의 꿈을 반대하셨고 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난 ‘내 꿈이 무엇일까’ 하면서 방황했다. 주변의 친구들은 빨리 꿈을 찾은 것 같았다.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그 친구들의 호흡에 맞추어 따라 달리려고 하니 너무나 힘들었다. 난 계속 쫓아가는 사람이었고, 계속 넘어졌다. 난 또한번 좌절했다.

그런 날 도와준 건 언니였다. 언니는 ‘위키드’라는 뮤지컬을 알려주었고 난 차지연이라는 뮤지컬 배우에게 빠져들게 되었다. 그녀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을 보고 나도 차지연 배우님처럼 되고 싶다고 느꼈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면서 연기를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이 뮤지컬 배우의 매력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만의 페이스로 ‘뮤지컬 배우’라는 꿈에 다시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뮤지컬 배우는 춤, 노래, 연기를 다 해야 하지만 난 노래실력부터 키우기 위해 부모님에게 실용음악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한번 거절당한 것 때문에 난 불안했다. ‘또 거절당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나를 감쌌다. 하지만 부모님께 예상 밖의 말을 듣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슬퍼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화나서 나오는 것도 아닌, 기쁨의 눈물이었다. 뮤지컬 배우라는 꿈에 한층 더 다가간 것이다.

만약 내가 꿈을 향한 완주를 지속한다면 ‘위키드’라는 뮤지컬에서 ‘Defying Gravity’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님인 차지연 배우님의 인생작이면서도 내가 처음으로 본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물론 뮤지컬이라는 꿈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계속 멈추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난 이렇게 꿈을 향한 달리기를 시작하고 있으니, 이걸 읽은 사람들도 지금이라도 꿈을 찾은 달리기를 해보면 어떨까?

이효서 ( 1학년 4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