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벽발산

안정사 安靜寺

안정사 安靜寺
주소_경남 통영시 광도면, 벽발산 시기_654, 원효대사 창건조사 및 집필_2009.08.04. 이재수, 김보현참고문헌건축유적 발굴조사 자료집: 사찰편 2, 강원·경북·경남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안정사(安靜寺)는 654년(무열왕 1) 원효대사 나이 37세에 창건한 사찰이다. 원효대사가 이곳에 와서 벽발산(碧鉢山)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전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마하가섭 존자가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부촉받아 미래세의 미륵부처님께 가사와 발우를 전하기로 하였는데, 그 발우가 바로 벽발산에 있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원효대사는 “의발(衣鉢)을 간직한 채 내세불(來世佛) 미륵을 기다리는 벽발산은 참으로 마땅한 절 터였이다”라 하며 안정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아주 먼 미래세 남해의 통영 앞바다가 융기하여 육지가 되며, 미륵불이 이곳에서 가섭으로부터 석존의 의발을 전해받는다고 한다. 벽발산은 지리적으로 통영의 용화사가 있는 미륵산과 마주보고 있다. 미륵산과 남해의 여러 섬들의 명칭이 이 때에 생겼다. 벽방산(碧芳山)이란 이름은 조선후기에 고지도에 등장해서 일제 강점기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 설화의 의미로 보아서는 벽발산이라 하는 것이 타당한 듯 하다.안정사 산내 암자로는 의상암, 가섭암, 은봉암, 천개암이 있고, 원효암과 윤필암은 현재 터만 남아 있다. 이 밖에 현재 확인된 산내암자터는 18군데라 한다. 창건 당시 14방(坊), 전성기에 22방으로 산내에서 1500여명의 스님이 수행하던 때도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단행된 토지개혁으로 사찰의 토지 대부분을 빼앗기게 되었다. 또한 일제는 안정사를 축소시키고자 계곡 안쪽에 몰아 배치토록 조치하였다. 이후에 만세루, 범종각, 일주문 등을 새로 지으며 본래의 가람배치와 다른 기형적 복원이 이루어졌다. 이승만 대통령 때에는 대처, 비구 법란으로 말미암아 사중의 스님들이 다 갈라져 흩어지게 되었고, 벽발산 바로 아래의 사찰토지마저 잃게 되었다. 현재에도 경내 진입로가 만세루를 통과하지 않고, 범종각 옆으로 돌아 들어가게 되어있다. 나한전에는 아난, 가섭 등 대표적인 존자상이 보이지 않는다.그렇지만 대웅전 뒤로 울창한 소나무 숲과 아름다운 풍광은 그대로이다. 벽발산 정상에 서면 동남쪽으로는 거제도의 계룡산과 노자산이, 남으로는 한려수도의 여러 섬의 산들이, 북으로는 거류산과 소가야의 벌판이 한폭의 동양화처럼 보인다. 많은 지명을 원효대사가 붙였다고 한다. 또한, 예로부터 이름난 선사들이 수행하던 곳이었고, 근세에는 성철스님도 이곳에서 수행하셨다. 안정사와 산내암자는 모두 법화종에 소속된 전통사찰이다. 범패에 있어 안정사 소리는 특히 유명하여, 지금도 여러 종단에서 범패와 의식을 배우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