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현성산

신림사 新林寺址

제석사
주소_경북 경산시 점촌동, 현성산시기_633, 원효대사 창건조사 및 집필_2009.09.08. 이재수, 윤해진, 김보현참고문헌_김영태 조사
신림사터는 원효대사가 자라난 집을 희사하여 만든 사찰인 초개사(初開寺)로 여겨지기도 한다. 『자인읍지(慈仁邑誌)』에 의하면, 신림사는 자인현의 서쪽 십리 현성산(賢聖山)에 있는 절로 신라 신문왕 때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금당사(金堂寺)라 하였다. 1620년에 백양(白楊) 스님이 선승당(禪僧堂)을 짓고 절이름을 고쳐 신림사(新林寺)라 하였다. 임진병란에 소실되고 오층탑만이 남은 것을 법성(法性) 스님이 중건하였다. 부속암자로 명적암(明寂庵), 성재암(聖齋庵), 백운암(白雲庵) 등이 있었다. 명적암은 신림사 서쪽 백보 쯤에 있고, 성재암은 자인현의 남쪽 십리 현성산에 있다. 일설에 신라왕이 후사가 없어 이 암자에 기도를 하여 어진 아들을 얻었기에 산 아래 마을을 독자동(獨子洞)이라 하고, 그 위의 산을 상왕산(上王山)이라 하였다. 자식이 없는 자가 이곳에서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이 있다고 한다. 백운암은 자인현의 남쪽 십오리에 있는 삼성산에 있는데, 1700년에 신관(信寬)스님이 창건하였다. 자인현은 지금의 자인, 용성, 남산과 진량, 압량 일부를 합한 지역이다.오늘날 신림사터의 영역은 현 대구한의대학교 정문 서편 구릉 일대, 인터불고골프장 및 계림골프연습장 인근으로 판단된다. 주변 밭에서 다수의 기와조각과 도자기편 등이 채집된다. 신림사터에서 나온 유물은 현재 경산시립박물관에 있다. 일제강점기 때 경산지역 공중 의사였던 구메지(久米)는 유곡동 신림사지 및 경산 도처에서 옮겨온 석조유물을 정원의 장식으로 두었다. 광복 후 이곳은 경산중학교가 되었고, 유물은 그대로 교정에 놓여 있다가, 1999년에 경산시수도사업소 계양정수장 마당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경산시립박물관이 개관하여 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 이들 각종 석조물은 전술한 완형에 가까운 탑, 불상, 부도 등 11점과 기타 비석 귀부(龜趺), 문인석, 망주석 등 11점을 포함하여 모두 22점이다. 부도, 남근석, 석등 등 돌로 된 유물들은 외부 정원에 그냥 한데 모아 두었는데, 이들 부도 중 하나의 명문에는 서화당(西化堂)이라 새겨져 있다. 경산시립박물관 입구에는 원효대사, 일연대사, 설총의 동상이 있다.삼성산(三聖山)에 오르면 경산의 자인면과 용성면이 나즈막히 내려다보인다. 천년동안 그러했을 것이다. 네티즌 무영 스님은 신림사 옛터를 둘러보고는 그의 블로그에 메모하길, ‘일심(一心)이 왜 생멸문과 진여문을 아우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슬퍼할 자격이나 있을까. 나라를 빼앗기고, 나라의 혼을 빼앗기고, 이리저리 헤매기만 할 뿐인 자는 슬퍼할 자격이 없다. 스스로 마음의 바탕을 찾지 못한 바에 차라리 박물관 유리관 속에 있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하였다.주변에 유곡사 등의 절이 있으며, 관광지로는 경산 상대온천 등이 있다. 상대온천 위쪽의 남산면 하대리 소재 도동서원(道東書院)은 있다. 원효대사의 아들 설총을 모셔 본디 도동재(道東齋)로 불리던 것을, 마을의 유림들이 몇 년 전 규모를 키우고 서원 간판을 달았다. 도동재에는 자그만 봉분과 그 봉분 앞의 신도비가 전부였었다. 봉분은 설총의 묘로 알려져 있다.
* 633년 원효대사 창건, 원효 성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