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도천산

제석사 帝釋寺

제석사
주소_경북 경산시 자인면, 도천산시기_632주지_적연스님조사 및 집필_2009.09.08. 이재수, 윤해진, 김보현참고문헌_삼국유사, 한국사찰전서
제석사는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의 마을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이 마을은 예부터 불당골이라 불렀기에 제석사를 ‘불당절’이라고도 한다. 제석사는 원효대사가 태어난 곳에 지었다는 옛 사라사(娑羅寺)를 계승한 절이다.원효대사는 617년(진평왕39) 불지촌(佛地村) 북쪽 율곡(栗谷)의 사라수(裟羅樹) 나무 아래에서 태어났다. 원효대사의 속성은 설씨(薛氏)이다. 조부는 잉피공(仍皮公) 또는 적대공(赤大公)이라고도 하며, 적대연(赤大淵) 옆에 잉피공의 사당이 있었다. 아버지는 담날내말(談捺乃末)이고, 어머니는 사라부인(娑羅夫人)이다. 처음에 어머니 꿈에 유성(流星)이 품속으로 들어오더니 이내 태기가 있었다. 만삭이 된 사라부인이 마침 이 골짜기에 있는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갑자기 해산하였으므로, 몹시 급박하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편의 옷을 나무에 걸어 그 속에서 출산하였기 때문에, 이 나무를 ‘사라수’라 부르게 되었다. 그 나무의 열매가 특별해서 ‘사라율(裟羅栗)’이라 했다. 옛날에 사라사(娑羅寺)의 일꾼에게 하루 저녁 끼니로 밤 두 알씩을 주었다. 일꾼이 적다고 관청에 호소하자 관리는 괴상히 여겨 그 밤을 가져다가 조사해 보았더니, 한 알이 바리 하나에 가득 차므로 도리어 한 알씩만 주라고 판결했다. 이런 이유로 율곡(栗谷)이라고 했다. 사라수 나무가 있던 율곡은 원효대사가 태어난 곳으로 사라사(娑羅寺)란 절이 되었으며, 율곡의 서남쪽에 있던 원효대사의 집은 희사하여 초개사(初開寺)란 절이 되었다.불지촌은 발지촌(發智村) 혹은 불등을촌(弗等乙村)이라고도 하는데, 발지촌은 ‘지혜가 발현된 마을’이란 뜻으로 ‘부처님의 터[佛址]’이란 지명과 일맥상통한다. 석가세존은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태어나고, 사라수(沙羅樹) 아래에서 입멸하였다. 또한 불지촌 북쪽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곳이란 함의가 있다. 그런데 원효대사는 그 사라수 아래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즉, 원효대사의 탄생은 부처님이 입멸하신 곳으로부터 중생구제를 위해서 하화중생의 발원으로 다시금 사바세계로 되돌아와 나투는 보살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사라율(裟羅栗)의 열매는 매우 커서 한 알이 바리에 가득 찰 정도였다고 하는데, 보살의 회향(回向)이 원만한 결실을 맺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지리적으로 불지촌(佛地村)은 자인현(慈仁縣)에 속한다. 자인현은 지금의 자인면, 용성면, 남산면과 진량면, 압량면의 일부를 합한 지역이다. 압량군 남쪽에는 삼성산이 있는데, 원효, 설총, 일연 세 성인이 태어났다고 하여 삼성산(三聖山)이라 한다. 블등을촌은 ‘브들’의 향찰식 표현으로 ‘버들마을’에 해당된다. 오늘날 경산시 여천동(麗川洞) 일원으로 추정된다. 여천동은 조선 후기까지 유천동(柳川洞)이라 하였으며, ‘버드내’ 혹은 ‘버등’이라 부르는 까닭이다.『홍유후실기(弘儒侯實紀)』에 의하면, 요석공주는 시댁 동네를 물어물어 찾아와 원효대사의 탄생지인 유곡(油谷)에서 아이를 낳았고, 설총은 불지촌(佛地村)인 유천(柳川)에서 자랐다고 한다. ‘홍유후(弘儒侯)’는 고려 현종이 설총에게 추증한 시호이다.오늘날 제석사는 그 규모는 작지만 정갈하게 도량을 정비해 놓았다. 원효성사전에는 원효대사 소상과 원효대사 생애를 부처님의 팔상도 형식으로 조성한 원효보살팔상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대웅보전에는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석조 연화무늬 좌대가 있다. 예부터 남아있던 유물이다. 400여년 전 농부가 밭갈이 중 불상과 탑신을 발견하여, 1625년 유찬이 절을 중건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해마다 음력 5월 4일, 원효성사 탄생다례제를 봉행한다. 지역의 유지들 및 경산시 관계자, 신도 등 많은 이들이 원효성사전에서 ‘차(茶)’를 올린다.
* 원효 탄생지, 632년경 창건. (원효성사전에는 원효대사 소상과 원효보살팔상탱화가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