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천성산

내원사 內院寺

내원사
주소_경남 양산시 하북면, 천성산시기_646, 원효대사 창건조사 및 집필_2009.08.03. 신병삼, 박소령, 윤해진참고문헌_『송고승전(宋高僧傳)』,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권상로 편, 『한국사찰전서』(동국대학교출판부, 1979)『한국의 명산대찰』(국제불교도연합회, 1982) 『문화유적분포지도』-양산시(양산시·통도사 성보박물관, 2004) 『양산의 문화재』(양산시, 2006), 『한국불교사찰사전』
내원사(內院寺)는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천성산에 위치한 통도사(通度寺)의 말사로, 선덕여왕 15년(646)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중국 당나라 태화사의 승려들이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예견하고 ‘효척판구중(曉擲板求衆; 원효가 판자를 던져 중생을 구함)’이라고 쓴 현판을 날려 보내 그들을 구해준 인연으로 1,000명의 중국 승려가 신라로 와서 원효대사의 제자가 되었다. 원효대사가 이들이 머물 곳을 찾아 나섰는데, 용연리를 지날 무렵 산신이 마중 나와, “이 산은 1천 명이 득도할 곳이니 청컨대 이곳에 머무소서.”라고 하였다. 대사는 산신의 인도에 따라 지금의 내원사 산령각 부근에 이르자 갑자기 산신은 자취를 감추었다. 원효대사는 신령이 감응한 것임을 직감하고 마침내 이 자리에 대둔사(大芚寺)를 창건하고 상내원암, 중내원암, 하내원암을 비롯하여 89개의 암자를 세웠다. 이후에 대사는 천성산 상봉에서 화엄경을 강론하여 1천명의 스님을 깨우쳤다고 한다.내원사는 원효대사 창건 이후 1646년(인조 24)에 의천대사가 중건하였고, 1845년(헌종 11)에 용운선사가 중수하였으며, 1876년에는 해령선사가 중수하였다. 1898년에 유성선사가 수선사(修禪社)를 창설하고 절 이름을 내원사로 개칭하였다. 이때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라 이름 붙인 이후 선찰(禪刹)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경허선사의 법제자인 혜월선사가 조실로 주석하면서 운봉선사, 향곡선사 등 한국 선종사(禪宗史)의 맥을 잇는 많은 선승(禪僧)을 배출한 도량이 되었다. 6ㆍ25전쟁 때 산속에 숨어 있던 공비들의 방화로 완전히 소실된 뒤 1955년에 수덕사(修德寺)의 비구니 수옥(守玉)이 5년 동안에 걸쳐 13동의 건물을 재건하여 현재는 독립된 비구니 선원으로 새롭게 중창되었다.산내 암자로는 미타암(彌陀庵), 성불암(成佛庵), 금봉암(金鳳庵), 원효암(元曉庵), 조계암(曹溪庵), 금강암(金剛庵), 내원암(內院庵), 안적암(安寂庵), 익성암(益聖庵), 노전암(爐殿庵) 등이 있다. 또한 다른 문화재로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8호 금고(金鼓), 제406호 아미타삼존상, 문화재자료 제342호 석조보살좌상이 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법당인 선나원(禪那院), 선원(禪院), 심우당(尋牛堂), 정처헌(靜處軒), 불유각(佛乳閣), 송루, 사문(寺門) 등이 있다.주변에 내원사 계곡이라 불리는 계곡과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천성산이 있어 절 주변은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계곡 곳곳에는 삼층바위가 첩첩이 서 있으며 절벽에 ‘소금강’이라는 글자가 뚜렷이 새겨져 있고, 병풍모양으로 바위가 길게 뻗어 있어 병풍바위라 불리는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