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고선사탑 高仙寺址 三層石塔

고선사탑
주소_경북 경주시 보덕동시기_686 이전조사 및 집필_2009.09.06. 이재수, 윤해진, 김보현참고문헌_

고선사서당화상비, 삼국유사

고선사는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던 절이다. 삼층석탑 등 남은 유물은 경주박물관(경주 일정로 118)에 있다. 고선사터가 덕동댐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어, 1975년 고선사지 삼층석탑 등이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미술사학자인 又玄 高裕燮(1905~1944)의 답사기록에 의하면, 1914년 5월 삼층석탑 주변에서 원효대사 비석인 서당화상비 조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는 삼국유사 관련 기록에 신뢰성을 더한다.고선사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사복불언」이야기의 배경무대가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복불언 이야기의 대강은 이렇다.사복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원효(元曉)는 고선사(高仙寺)에 있었다. 원효대사는 그를 보고 맞아 예를 했으나 사복(蛇福)은 답례도 하지 않고, 그대와 내가 엣날에 경(經)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이제 죽었으니 나와 함께 장사지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묻는다. 원효대사는 좋다고 함께 사복의 집으로 가서 포살(布薩)하여 계(戒)를 주며 그 시체 앞에서 빌었다.“세상에 나지 말 것이니, 그 죽는 것이 괴로우니라. 죽지 말 것이니 세상에 나는 것이 괴로우니라.” 말이 너무 번거롭다고 사복이 말하니, 원효대사는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괴로우니라”라고 고쳐서 말한다. 상여를 메고 활리산(活里山) 동쪽 기슭에 도착하여 원효대사가 제안하길, “지혜 있는 범을 지혜의 숲 속에 장사지내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사복이 게(偈)를 지어 대답하길,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라수(裟羅樹) 사이에서 열반(涅槃)하셨네. 지금 또한 그 같은 이가 있어 연화장(蓮花藏) 세계로 들어가려 하네.” 그리고서 띠풀의 줄기를 뽑으니, 그 밑에 명랑하고 청허(淸虛)한 세계가 있는데, 칠보(七寶)로 장식한 난간에 누각이 장엄하여 인간의 세계는 아닌 것 같다. 사복이 시체를 업고 속에 들어가니 갑자기 그 땅이 합쳐 버린다. 이것을 보고 원효대사는 그대로 돌아왔다.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신라 석탑의 원형을 잘 보여주는 양식으로, 연대는 최소한 686년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682년(신문왕 2년)에 세운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유사한 양식으로, 2단으로 된 기단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높이가 10m에, 82장의 돌로 이루어진 것 등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다른 점은 고선사 삼층석탑의 경우 1층 몸돌에 문비(門扉)가 표현되어 있고, 감은사터 삼층석탑의 경우에는 찰주(刹柱)가 남아 있는 점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