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의 비로봉과 노적봉을 병풍처럼 뒤에 두르고 응봉능선과 의상능선 아래로 흐르는 삼천사 계곡에 위치해 있는 삼천사는 661년(문무왕1) 원효(元曉) 대사가 창건하였다.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고,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임란 중에 소실되었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중창하였다. 1970년대 현재의 주지 평산 성운 화상이 부임하여 30여 년의 중흥 불사를 통해 대웅보전, 산령각, 천태각, 연수원 등의 전각과 종형사리탑, 관음보살상, 5층석탑 등을 조성하였다. 1994년에는 사회복지법인 인덕원을 설립하여, 노인복지와 어린이보육 그리고 지역복지에 힘쓰고 있다. 서울 은평구의 대표사찰이다.삼천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657호)은 삼천사 경내 대웅전의 위쪽으로 30m 지점 계곡의 병풍바위에 새겨져 있다. 불상의 어깨 좌우에 큰 사각형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애불 앞에 목조가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불상으로, 전체 높이는 3.02m, 불상 높이는 2.6m에 달한다. 얼굴과 윗몸은 돋을 새김을 하였으나 하반신과 광배 그리고 대좌는 볼록한 선새김으로 마치 강한 선묘화(線描畵) 같은 느낌을 준다. 종형사리탑은 가로 3.1m, 세로 3.1m의 4각 대석 위에 놓여 있다. 무진년 4월, 평산 성운 화상이 미얀마를 성지순례할 때 마하시사사나 사원에서 아판디타 대승정(大僧正)으로부터 전수받은 부처님 사리 3과를 88올림픽의 성공 기원을 담아 종 모양의 돌탑[石鐘塔] 속에 봉안하였다. 대웅보전 위쪽 계단을 오르면 마애불전 앞에 위치해 있다.사찰에서 2km 위쪽에 위치한 옛 삼천사 터에는 대형 석조(石槽)와 연화대좌(蓮花臺座), 석탑기단석(石塔基壇石),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 대지국사(大智國師) 법경(法鏡)의 비명(碑銘)이 남아있다.구파발역 2번 출구에서 삼천사 셔틀버스가 4차례 운행되며, 7723버스로는 하나고.삼천사.진관사입구에서 내려 도보로 20분 걸린다. 연신내역 3번 출구에서 7211버스를 타고 삼천사 입구에서 하차해도 된다.
* 661 원효대사 창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