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초 성은경
대구월초등학교
교사
성은경
아버지 돌아가시고 가시는 길에 같이 보내드린 글이다. 유년 시절 아버지가와 함께한 즐거운 일들은 아름다운 기억이 되었고, 어른이 된 나에게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을 읽는 모두가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구암고등학교 수석교사 박정미
성은경 작가의 ‘아버지 생각’은 민들레와 같다. 나를 비롯하여 함께 이 책을 읽은 지인들이 모두 각자의 아버지 생각, 아빠 생각을 쓰도록 만들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여섯 개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각자가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 이야기를 나누며 울기도 웃기도 했고, 끝내 또 다른 추억과 새로운 다짐을 가슴에 새겼다.
어린 시절 우리의 기억 속 아버지는 항상 딱 아빠의 나이에 맞게 적당한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내가 나이가 들면 어느 순간 아버지가 할아버지 모습으로 변해야 하는데, 고1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나의 아버지는 딱 지금의 내 나이의 모습으로 멈춰있다. 항상 힘겹게 삶을 살아내시던 중년의 남성 모습만 본 것 같은데, 그 때가 지금의 나보다 어린 30대의 모습이었던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은 크지 않아서 항상 아빠는 나보다 서른 살쯤 많은 어른의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40대 중년의 아버지 모습만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여섯 살 때쯤 아빠는 그 아저씨의 모습으로 군고구마 껍질을 벗겨주셨고,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도 그 아저씨의 모습으로 자장면을 사주셨다. 하지만 나의 아빠가 군고구마를 드시기는 했는지, 자장면을 좋아하셨는지는 잘 모른다. 언니와 오빠도 버젓이 있는데, 우리 엄마 아빠는 나의 이름 끝 글자를 따서 미야 엄마, 미야 아빠였다. 다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옆집 경미네는 내 친구 언니의 이름이 경미였고, 아랫집 요한이네는 장남 세례명으로기도 했다. 그래서 동네 어른들이 “니가 저 파란 대문집 ‘미야’가?” 하며 물으시면 부끄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그 때는 다들 가난했지만 동네 애들을 챙기는 것이 미덕으로 나도 그렇게 귀여움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식거리가 귀한 시절이라 아빠는 언니와 오빠 몰래 우유가 들어간 고급 콘아이스크림도 사주셨고, 공부 잘하는 언니가 받아온 학습우수상보다 막내가 받아온 달리기상을 더 좋아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이렇게 아빠의 젊은 시절을 내 마음대로 기억하고 있다. 진짜 그런지 확인도 안했고, 이제는 확인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나에게 아빠는 아주 드문드문 따듯하게 기억된다. 단지 아빠와 딸로 함께 살아 온 16년 정도 되는 시간동안 함께 기억할 만한 것들이 얼마 없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같이 가족으로 있는 시간의 양보다도 같이 먹고, 같이 살고, 같이 견뎌냈던 많은 일과 감정들에서 서로 어떻게 생각하고 생각해주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 생각’에서 아버지와 함께 떠오르는 추억들로 하늘에서 보라색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오디와 맛있게 곤로에 끓인 된장찌개가 나온다. 곁에 있는 아들에게 그림책 속 장면들을 옛날 얘기해주듯이 설명해주니 신기해한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어떤 것들로 그 자리가 채워질까 하고 궁금해하니, 아들은 엄마 몰래 아빠랑 먹었던 컵라면과 밤새워 아빠랑 pc방에서 게임하고 놀았던 걸 꼽는다. 좀 더 감동적 장면이나 멋진 먹을거리를 기대한 나로서는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우리 아들이 떠올린 추억의 한 자락이 오히려 너무 일상적이어서 시간이 흘러 기억이 까마득해 질 때쯤 문득 컵라면을 먹고 게임을 하는 그 어느 장면에서 아버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혼자 웃음을 지었다.
성은경 작가의 ‘아버지 생각’에서 시작하여 나와 너의 아버지 생각으로, 그리고 우리 시대의 아버지 생각을 나누었다. 아버지만 쳐다보는 아이의 해맑은 눈과 힘겨운 세상을 살아내는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를 생각했다. 아이와 소박한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우리가 곁에서 토닥여준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생각보다 젊고 꿈 많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