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wls
독수리 타법으로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모습 같지만 세계 최초의 ERP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창립 초기를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인 Night Owls. 고객이 사용하지 않을 밤과 주말에만 작업을 한 것이 차별화 포인트.
유럽 시가 총액 1위 회사는? 🥇
유럽에서 시가 총액 기준으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은 어디일까요?
대세는 반도체지! 📱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몇 년 간 주식 좀 하는 사람들은 다 들어봤다는 네덜란드의 ASML 일까요?
전통 강자는 제약이지! 💉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위고비' 제조사인 덴마크의 노보 노디스크 일까요?
유럽하면 명품이지! 👜
루이비통, 디올, 헤네시 등 '사치재산업'의 대명사 프랑스의 LVMH 일까요?
1위 자리를 놓고 의외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유럽의 올 상반기 1위는 바로~!
우리 직원 모두가 아는 그 이름. 바로 SAP 입니다.
별로 궁금하진 않겠지만 알려드리는 SAP의 풀 네임
: Systems, Applications, & Products in Data Processing
한 번 발을 담그면 빠져나갈 수 없는 신비의 서비스 🪄
1970년 대 초, IBM 독일지사에서는 5명의 엔지니어가 기업 맞춤형 회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IBM 본사가 이 프로젝트를 중단하라고 지시합니다. 이유는 'IBM은 하드웨어를 팔아야지, 소프트웨어 개발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 것이지요. 이에 5명의 엔지니어는 자신들이 개발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에 확신을 갖고 IBM을 떠나 1972년 SAP를 설립합니다.
이렇게 설립된 SAP는 ERP (전사적 자원 관리 :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을 사실상 발명하여 이 분야의 선두 주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재 경쟁 기업으로는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들이 있습니다.
ERP는 영업, 생산, 구매, 회계, 물류 등 기업을 영위하면서 하는 일 전반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모은 것입니다. ERP가 없던 시절에는 구매팀이 원료를 구매하고, 생산이 생산을 완료하고, 영업이 주문을 받는 일들이 모두 각각의 작업으로 전화나 팩스를 통해서 전달이 되었죠. 당연히 오류도 많았고 시간 차도 발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ERP는 실시간으로 이런 정보들이 공유될 수 있게 하였지요. 전 세계 곳곳에서 구매, 제조, 영업하고 영업하는 글로벌 기업이라면 더욱 필요한 시스템이 되었고, 실제로 세계 100대 기업 중 98 개의 회사가 SAP의 고객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 고객사 수는 40만 개라고 합니다.) 🤓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다들 알잖아요? SAP의 ERP가 얼마나 사용하기 어려운지... 게다가 UI / UX 할 것 없이 '응답하라 1988'의 뚱뚱이 모니터에서나 볼 법하지 않습니까 !!!📇
그러나 ERP는 매우 방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이라 일단 들여놓으면 구축하는 것도 사용하는 것을 익혀서 활용하는 것도 어려워서 어지간해서 다른 걸로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타자기 시절의 기술적 이유로 쿼티 자판을 쓰다가 기술적 이유가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쿼티 자판을 쓰는 이유와 같은 것이지요.)
하지만 바로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SAP는 ERP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1️⃣ 전 세계 글로벌 대기업에서 SAP ERP를 쓴다니 믿을 수 있겠다.
2️⃣ 한 번 도입하면 바꾸기가 어렵다.
영화 건축학 개론 중에서 수지는 '국민 첫사랑'이 된다. 시작도 힘들지만, 유지는 더 힘들고, 끝내는 것은 더더욱 힘든 첫사랑. 그 첫사랑 같은 SAP ERP.
시작하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어렵다네 🫂
R/2, R/3, ECC로 이어지는 SAP의 제품 라인업은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며 진화했고, 2000년대 초반까지는 기업용 소프트웨어의 대명사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기술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죠.
클라우드 컴퓨팅, SaaS* , 모바일, AI 와 같은 기술들이 부상하면서 기업용 IT의 패러다임이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SAP는 큰 문제 없었죠. SAP의 주요 제품은 구축형(on-premise)이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이유로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어 보였지요. 하지만 미래에는 어떨까요?
고객: SAP ERP를 쓰고 싶어요.
SAP: 자체 서버와 큰 돈을 들고 오시겠어요?
고객: 좀 오래된 것 같은데 업그레이드 되나요?
SAP: 아 벌써 사용하신지 5년이 지나셨네요. 업그레이드에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물론 비용은 넉넉하게 준비 되셨지요?
2012년 오라클은 이미 클라우드 기반의 ERP 시스템을 런칭하여 SaaS 부문의 시장을 확장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장 환경에서라면 아무리 완벽한 해자를 가진 SAP라도 오래가지 못하지요.
*SaaS (Software as a Service) :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로 인터넷을 통해 구독 형태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설치나 유지보수가 필요없고, 월/ 년 단위로 요금을 지불하며 사용하는 방식. 구글 워크플레이스, MS365 등이 대표적이다.
한 때 잘나갔던 이에게 찾아오는 '중년의 위기'
SAP는 손가락을 빨고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2010년부터 SAP를 이끌어온 미국 출신 빌 맥더멋은 SAP에 변화의 불씨를 당긴 카리스마형 CEO였습니다. 기존의 독일 중심주의 문화를 흔들며 실리콘밸리처럼 빠르게 혁신하고자 했지요. SAP를 기술 중심 회사가 아닌 고객 경험 중심의 회사로 바꾸자고 주장하며 9년 동안 SAP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SAP의 미래를 위해 과감한 M&A를 거듭했습니다. 2011년부터 유명 소프트웨어 기업 인수에 총 310억달러를 썼습니다. 클라우드 기반으로 바뀌어야 함을 인식하고 관련 제품을 추가했습니다.
아! 그래서 SAP가 지금도 잘나가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 방법은 SAP의 시총을 5배 증가 시켰지만 실질적인 미래를 약속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SAP의 캐시카우는 구축형 ERP였으니까요. SAP는 캐시카우를 두고 굳이 사업의 방향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고객들 역시 이미 구축해 놓은 시스템을 두고 클라우드 기반으로 ERP를 바꿀 필요성을 못 느꼈지요. 게다가! 한 번에 돈이 들어오는 구축형과 달리 매 월, 매 년 구독료 형식으로 조금씩 들어오는 돈은 회사의 수익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죠.
지금입니다.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혁신가의 딜레마에 빠진 시점이...
(* 폴라로이드 편에서 다루었습니다. 압도적 기술력으로 성장한 회사는 그 기술력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으므로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스스로에게 메스를 들어 수술을 해야 성장은 차치하고 생존이라도 할 때가 온 거죠.
[위] 크리스티안 클라린(좌)과 제니퍼 모건(우) 공동 CEO 시기. 6개월만에 제니퍼 모건은 사임했다. [아래]SAP의 주가가 폭락하자 CRM 클라우드 선두주자 세일즈포스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 마크베니오프는 'SAP의 CEO 교체가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사진: 구글 금융]
수술을 받아야 하나요? SAP?
2020년 SAP는 1980년생 (MZ 세대?!?) 크리스티안 클라인을 SAP 역사상 최연소 CEO로 선임합니다. 클라인은 대학생 인턴으로 입사해 CEO까지 오른 자타 공인 'SAP Kids' 입니다. SAP의 과거부터 현재, 막내부터 임원까지 속속들이 아는 그는 전임 CEO의 카리스마적 성향과 달리 부드러운 이미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의 행보는 부드럽지 않았는데요,
2020년 10월 중대 발표를 합니다.
✅ 핵심제품인 구축형 ERP 고객을 클라우드로 빠르게 전환한다.
✅ 이를 위한 투자로 영업이익율은 전망 대비 4~5% 감소할 것이다.
✅ 향후 몇 년 간 약 40억 유로의 이익이 사라질 것이다.
☑️ 지금 우리는 위기다. 🚨
클라인은 'RISE with SAP'을 도입하며 고객이 기존 SAP Business Suite를 버리고 SAP S/4HANA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도구, 전문가, 서비스를 개편할 것을 발표했습니다.
와! 시장이 이제부터 응답하나요?
아직 아닙니다.
이 발표로 SAP의 주가는 하루 만에 22% 넘게 폭락합니다. 금액으로는 약 300억 유로였지요. (*현재 시세로는 잠시만요.. 10억.. 100억.. 48조 5천억이네요.)
그럼에도, 크리스티안 클라인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ERP를 파는 회사가 아닙니다. 고객의 비즈니스를 함께 바꾸는 파트너입니다. 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려면, 우리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바뀌지 않는 건 곧 도태를 의미합니다.”
— Christian Klein, SAP CEO, 2021년 직원들과 함께하는 타운홀 미팅에서
[사진: sap.com / AI와 결합한 sap는 AI 에이전트 쥴(Joule)의 도움으로 다양한 정보들을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한다. 특히, 명령어 형식으로 제공되어 극악의 UX를 벗어나고 노력했다는 평을 듣는다. UX 개선에 대한 평가는 사용해보기 전에는 노코멘트. 기존 SAP를 생각하면 개선이라니 상상도 할 수 없다!]
수술대신 폭탄을 맞았습니다. 💣 저 .. 이제... 죽나..요?
폭탄 선언 후 5년이 지났습니다. SAP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2025년. SAP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거나 떠오르는 사업으로 잘 나가는 기업들을 모두 따돌리고 유럽 전체의 시총 1위 (약 490조원)에 올랐습니다. 폭락한 주가(100유로 언저리)로 2년을 가더니 지난 3년간 주가가 2배 이상 상승하였습니다. (25년 7월 20일 기준, 주당 264.05유로) 독일하면 '자동차 산업'을 흔히 떠올리는데 SAP는 독일의 모든 자동차부문을 합친 것보다 시가 총액이 큰 회사가 되었습니다.
성장의 원동력은 역시 클라우드 사업이었습니다. 2023년부터 SAP의 클라우드 사업은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며 전통적인 ERP 사업을 대체해가고 있었습니다. 2024년 기준 클라우드 매출은 50억 유로에 육박하며 시장의 감탄을 샀습니다. 그런데 2025년에는 이미 1분기에 매출의 55% (49.9억 유로)를 클라우드에서 올렸습니다. 이 추세 대로라면 클라우드 사업에서 연간 215억 유로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SAP는 AI 전략에도 발 빠르게 대응했습니다. 클라우드로의 전환이 있었기에 AI도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SAP는 2023년부터 자사 제품군에 생성형 AI 기능을 통합하기 시작했고, 2024년에는 AI 기반의 자동화 기능을 전 제품에 확대 적용했습니다. 특히, 고객서비스, 재무분석, 공급망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기반 의사결정 자동화가 가능해지면서 고객의 업무 효율이 상승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SAP의 클라우드 구독 고객들은 SAP가 제공하는 AI 에이전트 '쥴 (Joule)'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복잡하고 어렵기로 유명한 ERP 사용을 도와줄 비서 쯤 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명령 형식으로 필요한 데이터를 뽑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SAP의 이런 혁신은 기술의 진보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SAP는 고객과의 공동 혁신 (co-innovation)을 강조하며, 고객이 실제 겪는 문제를 중심으로 솔루션을 구성했습니다. 고객과 함께 만든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제품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산업으로 과감하게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챗GPT가 생각한 'SAP가 사람이라면 어떤 이미지일까?'
이성적으로는 '기술과 신뢰를 양복에 차려입은 독일계 전략가'로 표현했고, 감성적으로는 '과거의 장인정신을 디지털 미래로 이식한 중년의 혁신가'로 표현했다.🫠]
레거시 IT 기업, 돌파구는 있나요?
SAP, IBM, 오라클 등을 레거시(legacy) IT 기업이라고 일컫는다고 합니다.
'레거시 미디어'는 자주 쓰는 말인데 '레거시 IT 기업'이라니 뭔가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낯설게 느껴집니다만, 생각해보니 SAP가 우리 회사보다 한 살 많습니다.
레거시 (legacy)라고 하면 주로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늬앙스를 전달합니다.
크고 낡고 무거워서 쉽게 변화하기 힘든 시스템이나 구조를 의미하지요. 긍정적인 유산으로 쓰이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SAP는 이런 '레거시'라고 불리는 기업들이 어떻게 미래를 그려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SAP는 비싸고 바꾸기 어려운 구축형 ERP 기업이라는 크고 튼튼한 보금자리를 스스로 깨고 나왔습니다.
'한 때의 전성기'는 '중년의 위기'를 맞이했고, 이를 과감한 방향 전환과 고객과의 관계, 조직문화를 재 설계하며 새로운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 때의 전성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방법을 고집하는
'중년의 위기'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현재 도입하고 있는 하림그룹의 One ERP 역시 SAP입니다. (SAP하~!)
"뭐? 지금도 SAP 인데 왜 또 SAP 인거야?" 생각하신 분은 이제 안계시겠지요?
기존 시스템은 SAP의 구축형 (on-premise) 시스템이었고, 이번 바뀌는 것은 PCE (Private Cloud Edition) 입니다.
어떤 점이 좋아지는지 이번 아티클을 통해 확인하시고
새로 구축하는 시스템으로 우리도 중년의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많은 관심과 협조 부탁 드립니다.
출처가 명시되지 않은 이미지는 AI로 제작하였습니다. 자유롭게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2025년에는 Process Innovation의 중심에서 Quality Excellence를 외쳐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제품, 서비스, 관리 품질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함께 나누면 좋을 생각거리,
다른 회사의 흥망사 등을 제보, 기고 받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에디터 : 정상희 / normal@sunjin.com / 02-2225-0609 (2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