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서 돌아보는
New Start Story
실패에서 돌아보는
New Start Story
어디서 많이 본 화면인가요?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선진피플들이라면 한 번쯤은 본 화면이었을 것입니다. 만화부터 간단한 학습 페이지, 인형놀이, 캐릭터, 옷 입히기 같은 간단한 놀이까지 즐길 수 있었던 사이트. 몇 년 전 해당 사이트가 다시 열린 것이 뉴스로 보도될 정도로 화제였습니다. (*공식 서비스는 아니었습니다.)
80년대 출신들은 이 사이트로 생애 처음 개인 이메일이라는 것을 만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인터넷 시대에 '포털사이트'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어주었고, 포털 사이트라고 하면 생각나는 바로 그 화면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이 회사를 컴퓨터나 모바일 웹의 대문(Portal)으로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무슨 회사라고?
1994년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생이던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는 지도교수의 안식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교수님이 안 계신 틈을 타 취미 삼아 인터넷 검색 서비스를 만들어 보았는데, 하루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제리 양은 박사 논문을 내버려둔 채 인터넷이라는 망망대해를 떠도는 본인들의 모습이 걸리버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걸리버 여행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서비스의 이름도 걸리버여행기에 등장하는 거칠고 미개한 종족(*인간을 묘사한 것입니다)을 나타내는 단어를 따와 '야후' 라고 지었습니다.
학교에서 뚝딱뚝딱 서비스를 만든 지 불과 2년 만인 1996년에 나스닥에 상장하고 인터넷 시대를 대표하는 첫 번째 유명 브랜드가 된 기업. 기업 브랜드가 곧 웹 서핑 그 자체를 나타내었던 기업. 바로 'Yahoo!' 입니다.
야후 초기 TV 커머셜. '야후 = 웹서핑'을 잘 나타내는 광고로 호평받았다.
Do you Yahoo?
두 창업자는 당시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던 인터넷에 심취하였습니다. 서로 자신들이 방문한 사이트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으며 모았지요. 이렇게 모으기 시작한 사이트의 주소가 점점 늘어나자 이것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었습니다. 오늘날 야후의 기본 틀이 된 제리와 데이비드의 월드 와이드웹 가이드였습니다. (*Jerry and David's Guide to the World Wide Web)
야후 이전의 인터넷은 주소창에 주소를 전부 써넣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웹 사이트에 들어가려면 주소를 모두 알고 있어야 했지요. 야후는 이를 카테고리로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남자 > 헤어스타일만 알고 있으면 남성 헤어스타일을 전문으로 하는 바버샵 등의 사이트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동창의 도움을 받아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벤처 캐피털 업체로 4백만 달러로 95년 4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경영에는 자신이 없었던 그들은 중소 통신업체 사장 출신인 팀 쿠글을 CEO로 영입해 회사경영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창업주 제리 양은 'Chief 야후'라는 직책으로, 데이비드 필로는 'Cheap 야후' 라는 이름으로 신규 프로젝트에만 주력하였습니다. (*직장에서 닉네임을 부르는 그들의 자유로운 문화도 화제였습니다.)
야후는 새로운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했습니다. 과거의 정보검색엔진에 머물지 않고 인터넷 미디어 회사로 거듭났습니다. 미디어, 상거래, 커뮤니케이션이 통합된 서비스 제공 전략에 따라 마케팅 전문 회사, 홈페이지 제작 업체, 인터넷 방송국 등을 인수하며 성장해갔습니다.
전 세계를 여는 하나의 문(Portal)
새 천 년(2000년)이 오기 전까지 야후라는 문(Portal)은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 진출했습니다.
미국, 캐나다, 중남미, 한국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 국가,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에서 압도적인 포털 점유율 1위였습니다. 각 나라의 야후는 전체적으로 동일한 구조와 디자인을 바탕으로 각 나라 언어와 실정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그 나라의 언어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야후 사이트 안에 존재하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야후라는 문을 열며 닷컴 산업의 거품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2000년. 야후에게는 최고의 해였습니다. 2000년 1월 야후의 주가는 120 달러를 기록합니다. 1996년 7월 기준 18000% 상승, 기업 가치는 1200억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불과 3개월 후인 4월에 닷컴 기업들의 주가는 나스닥 폭락과 함께 롤러코스터급 강하했습니다. 야후의 주가는 2001년 9월 9.11 테러 사건 이후 8.11달러까지 추락했습니다. 중소형 닷컴 기업들이 속절 없이 무너졌지만 야후는 살아남았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야후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6년까지 야후는 줄곧 세계 인터넷 사이트 랭킹에서 1위였습니다. 2006년 세계 상위 20대 인터넷 기업 랭킹에서 야후(1위), 야후 재팬(7위), 야후 차이나(14위)가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야후의 영향력은 단순히 숫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야후 이후 대부분의 포털들은 야후를 벤치마킹했습니다. 미국의 구글, 페이스북, 중국의 포털사이트 시나닷컴, 소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다음, 네이버도 야후의 추종자이거나 모방자였습니다.
▲ 정점 찍고 내리막길 걷던 야후 주가 추이
빵빵, 거기 앞에 비키세요!
야후는 사업 초기부터 '수익창출'에 대한 방향이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먹거리는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많은 사람들이 (*무려 전 세계 사람들의 절반 이상) 찾자 사이트에 광고를 게시하면서 자연스럽게 수익을 창출하였습니다. 게시하는 광고 (*DA -Display AD라고 합니다. 반대로는 SA - Search AD가 있습니다)로 재미를 봤던 야후는 2001년 워너브라더스 출신 테리 시멜을 CEO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2003년 검색 키워드 광고 회사인 오버추어를 16억 달러에 인수합니다.(*국내에서도 오버추어는 2011년까지 네이버와 다음의 검색광고 대행사이기도 했습니다) 또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알리바바'의 지분 40%를 10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갑자기 알리바바?)
테리 시멜은 야후를 마케팅 미디어로 탈바꿈시킵니다. 인터넷 광고가 필요했던 브랜드 대기업들의 러브콜이 쏟아졌습니다. 존슨앤존슨(J&J), 네슬레, GM 같은 광고주를 유치하며 브랜드 광고를 게재했습니다. 야후는 당시 인터넷 광고를 지배했으며 이는 야후의 캐시카우가 되었습니다. 정보는 야후가 주고 야후를 통해 정보를 받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 곳이 광고의 장이 되는 시스템. 야후에게는 더 많은 트래픽이 필요했기에 야후가 인수하는 기업들은 트래픽을 높이는데 효과적인 마케팅 회사, 미디어 그룹 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야후의 세상은 짧았습니다. 야후의 검색 기능을 아웃소싱한 회사. 학생 둘이 만든 스타트업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하기를 원했던 개발자들이 1998년, 100만 달러(!)에 야후에 인수되길 바랐지만 창업주 제리 양이 인수를 포기한 바람에 독자생존해야 했던 기업. 바로 구글의 등장이었습니다. 창업한 지 2년도 안되었던 구글은 당시 인기 있던 우수한 검색 기술을 보유하지 못했기에 야후가 설정한 최저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야후의 검색기능을 아웃소싱했습니다. 구글은 이 아웃소싱을 통해 야후를 통해 유입되는 검색 요청 정보를 얻게 되었고 검색이 증가할 수록 그들의 기술을 정교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2004년 구글은 기업 공개를 한 뒤 급성장하였습니다. '세상의 정보를 수집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한다'는 미션을 가지고 '검색' 중심으로 성장한 IT 회사 구글. 구글은 야후가 관심이 없었던 검색 광고를 핵심 역량으로 성장하였고 사람들은 점점 나와 관계없이 노출되는 광고보다 검색을 통해 나오는 정보와 광고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2008년 미국 인터넷 이용자들의 80% 야후를, 81.2%는 구글을 방문했습니다. 별 차이가 없죠? 그러나 야후의 전 분기수익은 1억 3100만 달러, 구글은 15억 달러로 11배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당시 구글은 검색 시장의 65%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버라이즌의 야후 인수가 결정되자 애널리스트 (Analyst for Futures Techs) Nicola Duke가 X에 올린 글
야후요? 뭐 하는 회사인가요?
구글은? 검색회사, 페이스북은? SNS 회사. 애플은 아이폰, 컴퓨터 만드는 회사. 이베이는 경매 회사입니다. 그런데 야후는 인터넷 기술 회사인지, 미디어 회사인지, 콘텐츠 회사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즉, 회사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포털의 특성 상 다양한 분야의 비즈니스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분야에 집중해서 역량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특히 미디어 회사로 운영하고자 했던 테리 시멜이 CEO로 들어오면서 기술 회사로서 야후의 정체성은 실종되었습니다. 광고 매출은 잠시 올라갔지만 인터넷 회사로서의 기술 비전은 사라졌습니다.
2007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CEO로 복귀한 제리 양은 위기에 처한 야후를 살리기 위한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간부 200명을 소집했습니다. 이 회의에 애플의 스티브잡스를 초청하여 고견을 듣기로 하였습니다. 잡스는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야후는 흥미로운 회사입니다.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회사입니다. 훌륭한 인재들을 보유하고 자금도 넉넉합니다. 하지만 나는 야후가 콘텐츠 회사인지 테크놀로지 회사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만 고르십시오. 저라면 어떤 방향을 선택할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리 양도, 이후의 구글출신 CEO인 마리사 마이어도 야후의 본질인 기술에 집중하지 못하고 두 마리 토끼를 잡다가 모두 잃었습니다.
야후는 M&A 실패기업으로도 유명한데, 이 또한 본업에서의 방향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야후는 많은 가능성을 놓쳤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구글도 유명한 실패 사례입니다. 야후는 페이스북을 인수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마크주크버그는 협상의 장까지 나왔지만 10억 달러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고 합니다.(*현재 메타의 시총은 1.4조 달러) 또 반대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MS는 2008년 야후를 446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모두가 정점을 찍은 야후에게는 합리적인 가격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야후는 너무 싸다며 거절했습니다. 결국 8년 만인 2016년 그 금액의 1/10 에 버라이즌(*통신사)에 팔리며 우리가 알던 야후는 없어졌습니다.(*버라이즌은 2021년 사모펀드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에 다시 매각했습니다) 이후 야후는 남은 법인을 알타바로 이름을 바꾸고 투자 전문 회사로 거듭났습니다.(*알리바바!) 불과 20년 남짓한 시간 만에 인터넷 세상을 창조했던 닷컴 공룡 기업 야후는 본연의 모습을 잃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야후는 버라이즌에 사업을 넘기기 전 이미 IT 기업은 아니었습니다. 실적이 저조한 포털을 분사했고 인터넷 사업 매각을 준비했습니다. 회사 자산의 대부분이 알리바바의 지분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본업(?)을 버리고 투자회사로 거듭나던 순간이었습니다.
한바탕의 봄 꿈을 꾼 것인가?
전 세계인의 인터넷 대문이었던 초 일류 닷컴 기업 야후는 불과 2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아직도 '구글링'을 하면 야후의 행보를, 문화를 찬양하는 많은 기록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말입니다. 마치 일장춘몽을 꾼 것 같이 사라졌습니다.
기술이 '혁명'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좋은 바람을 만나 순탄한 항해를 하던 배들도
언제 바람이 바뀌어 다른 곳으로 가게 될지 모릅니다.
이 바람을 타면 여기로 가고, 저 바람을 타면 저기로 가다가는 목적지 근처도 가지 못하고 좌초될 것입니다.
목적지가 분명한 지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순풍이 불면 돛을 펴고 역풍이 불 때는 돛을 내리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습니까?
출처가 명시되지 않은 이미지는 AI로 제작하였습니다. 자유롭게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2024년 동안 기업 패망사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업하는 입장에서도 안타깝고 복장이 터지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서사보다 비극이 수준 높다고 했는지 아주 조금 알 것도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남의 산의 큰 돌멩이를 통해 내 산을 조금이라도 돌아보는 시간들이 되셨기를 바라며,
12월은 쉬어가고 2025년 1월에 새롭게 돌아오겠습니다.
normal@sj.co.kr / 02-2225-0609 (2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