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에게 루이스가 

발행인 의 말

루이스의 편지 쓰기[1]

많은 독자가 탁월한 기독교 변증가요 위대한 작가, 또는 영문학자와 비평가`로서 C. S. 루이스는 잘 알고 있지만,  방대한 양의 편지를 쓴 ‘서신 작가(letter writer)로의 그의 면면은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루이스의  편지를 모은 세 권짜리 서간집에는 편지가 대략 3,700통이나 실려 있다. 루이스를 연구한 조엘 헥(Joel Heck)에 따르면, 그는 평생 대략 3만 통의 편지를 쓴 것으로 보인다 (그의 형 워렌이 타이핑한 것만 12,000통이 넘는다). 루이스는 이미 1947년부터 아침마다 편지를 쓰는 데 한두 시간씩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2주간의 휴가를 다녀왔더니 60통의 편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거나,  휴가 다녀와서 그간에 쌓인 편지에 답장하는 데 9시간이 걸렸다는 기록도 있다.

단순한 팬레터는 그냥 무시할 법도 한데, 그는 받은 편지에 가능한 한 모두 답장하려고 애썼다. 관절염으로 펜대를 잡기 힘든 상황에서도, 비록 아주 짧은 답장이더라도 말이다. 그는 1955년에  『예기치 못한 기쁨』(홍성사, 2003, 20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행복한 생활의 본질은 편지가 거의 오지 않아 우체부의 노크 소리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그 축복받은 시절에 나는 일주일에 단 두 통의 편지만 받아 답장을 썼다.

루이스에게 있어 편지를 쓰는 일은 하나의  섬김이자 돌봄이며 목회였다. 클라이드 킬비가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루이스는 이것이 “주님께 겸손히 자신의 재능을 드리는 일”인 동시에 그의 저술 활동 못지않게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가 오늘날과 같은 이메일과 문자와 각종 SNS가 난무하는 시대를 살지 않은 천만다행이다. 만약 우리 시대를 살았다면 루이스는 과연 몇 권의 책이나 남길 수 있었을까?

‘메리’에 관하여[2]

1967년 영어판이 미국 어드먼스(Eerdmans) 출판사에서 출간될 당시에는 편지 수신자의 요청에 따라 ‘메리’라는 이름으로만 공개되었다. 메리는 메리 윌리스 셸번(Mary Willis Shelburne)이었으며, 1895년 미국 조지아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두 번 결혼하였으나 모두 남편과 사별했다. 1942년부터 독신으로 지내다 1975년에 사망하여 메릴랜드 실버 스프링에 묻혔다. 시인이자 비평가로 활동했으며, 미국 시 학회(Poetry Society of America) 회원이기도 했다. Poet Lore, New York Times, Saturday Evening Post 등에 그녀의 시가 실렸다. “Pluto meditates” (1938), “Devotee of grief” (1942) 등의 시를 썼으며, Broken Pattern (1951)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한국어판이 나오기까지

1966년, 메리 윌리스 셸번은 152통의 편지(루이스가 145통, 워렌과 바필드, 후퍼가 각각 2통, 조이 루이스가 1통)를 미국 일리노이주에 있는 휘튼 대학 내 매리언 웨이드 센터(Marion E. Wade Center)에 기증했다.[3] 루이스가 51세였던 1950년부터 시작하여 1963년 루이스가 죽을 때까지 14년간 주고받은 이 서신들은 휘튼 대학의 교수이자 웨이드 센터 설립자인 클라이드 킬비가 138편으로 추린 후 편집하였다. 다음 해인 1967년 어드먼스 출판사에서 Letters to an American Lady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다양한 표지로 갈아입으면서 많은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마침내 한국어로는 2009년에 홍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이번에 비아토르/알맹e에서 출간하는 한국어판은 역자와 내용 면에서 이전 홍성사 판과 동일하지만, 다시 편집하면서 이전 판의 오역도 일부 바로 잡았고, 영국인 저자가 쓴 편지 형태를 한국 독자들에게 최대한 살려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이 책이 루이스 입문서로 좋은 이유

C. S. 루이스의 세계로 입문하려는 독자가 있다면, 그는 필시 주변에서 『순전한 기독교』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예기치 못한 기쁨』 혹은 『나니아 연대기』 중 한 권을 추천받게 될 것이다. 특정 개인에게 보낸 편지 꾸러미를 루이스 입문서로 추천받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위의 책들이 루이스의 세계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변증가의 모습과 탁월한 상상력을 가진 루이스를 알게 되는 좋은 통로이니까. 그런데 여기에 색다른 문이 하나 더 있다. 그와의 인간적이고 인격적이고 사적인 만남으로 이끌어 줄 서신서가 그것이다. 루이스에 대한 전기나 입문서도 여럿 나와 있지만,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감이 없지 않다. 반면에 이 책은 신학이나 문학에 대한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서 바로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루이스라는 한 인간을 만나는 데 최적의 책이라 말하고 싶다.

루이스 말년의 농염한 생각이 짧은 서신들에 잘 녹아 있으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분량에다 종종 이웃과 수다를 떠는 그의 아재 같은 대화도 엿들을 수 있다. 초기의 다소 심심해 보이는 두 사람의 관계가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우정의 관계로 진전되면서 독자 또한 개인적으로 더 친밀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행정 업무와 저술과 건강을 위해 편지 쓰는 비중을 줄이라는 주변의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답장을 쓰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 그의 개인적인 취미와 소소한 일상과 염려들, 매일 상대를 위해 기도하면서 또한 기도를 요청하는 모습… 이런 루이스를 보면서 위대한 저자로 만나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이미 이 세상을 떠나서 개인적으로는 알 수 없는 루이스를 이렇게 내밀하게 알게 되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루이스의 세계로 안내하는 ‘나니아의 옷장’ 같은 포탈(portal) 역할을 하는 작고 요긴한 책이다.

우리(김도완, 맹호성)의 친구이자 루이스 마니아이기도 한 CBS 신동주 피디는 원고를 읽고 이런 피드백을 보내왔다.

편지는 정말 무언가 다른 걸(!) 우리에게 준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어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꼭 전하고 싶은 말을, 무게 잡지 않고 하는 말을 듣는데,

이런 솔직함, 겸손, 단순함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루이스의 일반 신앙서적이 주지 않는 독특한 장점이 확실히 있네요!

 

 

이 책은 이렇게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은 가급적 루이스의 편지 느낌을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애썼다. 편지가 쓰인 일자와 상황은 각각 다르고, 그래서 쓸 때마다 바뀌는 주소와 형식, 다양한 날짜 표기 방식을 그대로 살렸다. 한 문단이 너무 길어도 루이스가 편지를 그렇게 썼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문단을 나누지도 않았다. 편지를 읽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성급하게 각주로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다.

평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두 사람이  문자, 카톡, 메신저, 이메일이 없던 시절에 편지를 한 번 보내면 최소한 며칠씩 걸리고, 잘 도착했는지 수신 확인도 안 되는 시대의 편지 교환이 어떠했을지를 상상하면서 이 책을 보면 재미가 더해질 것이다. 답장이 도착하지 않아 속을 태우면서도 바로 확인할 수도 없는 상황, 이해가 되질 않아 되묻고 확인하고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 서로 신뢰가 쌓이면서 어느 시점에 편하게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된 관계, 처음에는 당면한 어려움과 표면적 대화로 채워지다가 조금씩 삶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끝으로, 루이스는 답장을 보내고 받은 편지는 모두 휴지통에 버렸다. 메리가 루이스에게 보낸 편지는 없는 이유다. 그러니 루이스의 편지를 읽으면서 메리는 루이스에게 뭐라고 편지를 썼을지 상상하면서 읽어 보시길 권한다.

 

알맹4U, M어게인 그리고 비아토르[MH1] 

(이하 맹호성) 이 책을 신학책 중심으로 꾸려 가고 있는 알맹e와 구별하여 좀 더 대중적인 알맹이를 담아낼 임프린트 ‘알맹4U’(라고 쓰고 ‘알맹포유’로 읽기를 권장하나 알맹사유로 읽는 것을 막지 않는다)의 첫 책으로 내게 되어 기쁘다. 이 책을 시작으로 그간 알맹e에서 내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싶어 출간을 주저했던 책을 본격적으로 낼 예정이다. 더불어 ‘M어게인’ 시리즈의 책이 한 권 더 추가되어 감사하다. 한 번 나왔던 책이 저작권 관리의 문제나 기타 다양한 이유로 절판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의미 있는 책들의 생존에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 이 시리즈의 이름을 최종 낙점한 친구 신동주는 두고두고 뿌듯할 것이다.

또한 마지막까지 작업을 같이하며 종이책 출간까지 맡아 준 비아토르의 김도완 대표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알맹e는 후진 기어가 없어서 오늘도 계속 전진할 수밖에 없군요.

 

2021년 7월 14일

 

비아토르 대표 김도완

알맹e/알맹4U 대표 김진실, 맹호성 씀


[1] 루이스의 편지 쓰기에 대해서는 루이스의 서간집 서문들 외에 다음의 글들이 도움이 된다. Brenton Dickieson, “A Statistical Look at C.S. Lewis’ Letter Writing,” A Pilgrim in Narnia, 2013년, 5월 23일, https://apilgriminnarnia.com/2013/05/23/statistical-letter-writing/; Andrew Cuneo, “The Postman’s Knock,” Christian History (2005): 88, https://christianhistoryinstitute.org/magazine/article/postmans-knock; Joel Heck, “The Letters of CS Lewis,” Joel Heck’s Lewis Site, 2010년 2월 25일, http://www.joelheck.com/powerpoint-outlines.php.

[2] 이 부분의 Mary에 대한 정보는 다음의 글을 주로 참고하여 작성했다. Crystal Hurd, “Ladies and the Letters: Lewis and His Female Correspondents,” Dr. Crystal Hurd Insights in C.S. Lewis and More, 2013년 6월 26일, http://crystalhurd.com/ladies-and-the-letters-lewis-and-his-female-correspondents/.

[3] Christopher W. Mitchell, “30th Anniversary of the Marion E. Wade Center,” VII (1995): 12, https://www.wheaton.edu/media/wade-center/files/about-us/history/30thAnniversaryWadeWeb.pdf.


 [MH1]이 부분은 종이책에서는 제외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