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리 개인전 《흰 개와 검은 노인》
2025.08.19.-08.30.

하나의 상실에 또 하나의 상실이 겹친다. 그럴 때 슬픔은 두 배가 되는 것일까, 혹은 상충하고 상쇄되어 없어지는 것일까. 애도의 반복과 상실은 점점 일상과 동화되는 길을 걸어간다는 점에서 같은 결말을 맞이한다. 그러다가 일상에 불현듯 이미지가 겹치며, 시공간의 층이 하나 더 씌워진다. 잠시 잊고 있던 생각들이 다시 소환된다. (어쩌면 상실은 일상이 된 시공간에 갑작스럽게 들어온 빈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과정은 상실을 직시하는—즉, 대면하고 대적하는—시작점이 된다. 갑작스러운 상실감을 만나면 우리는 뭐라 할 수 없다. 뭐라 할 수 없기에 직시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반가운 마음과 슬픈 기분이 한 덩어리가 되어 나를 찾아온다. 애틋하고 안타까워하는 감정을 목도할 때, 묵묵한 덩어리를 다시 풀어보려고 한다. 그것이 박혜리가 펜과 붓을 든 이유가 아닐까. 설령 그 행위가 완벽한 필사(筆寫)보다 허우적거림에 가깝더라도, 나에게 닥친 이 감정이 한동안 돌고 있는 내면에 다가가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가까스로 건져 올리기 위한 던짐(一投)이 된다. 

박혜리의 개인전 《흰 개와 검은 노인》은 시기를 달리하여 두 곳에서 열린다. 주제는 서로 연결되며, 박혜리의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쉬 shhh에서 열리는 8월 전시에서, 작가는 본인과 시간을 같이 보낸 개와 할아버지의 상실을 겹쳐 본다. 이들의 이야기를 하기에는 곳곳에 여백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상실이라는 더 큰 여백을 대면하면서 작가는 펜과 붓을 들었다. 작가는 수직으로 세운 종이에 곱게 간 목탄을 붓에 묻혀 그린다. 목탄 가루가 그자리에 남아 고요한 화면을 만든다. 금방 흩어질지도 모르는 재료가 거기에 멈추듯 남을 때, 이곳에 작가의 내면—너와 나, 개와 노인, 삶과 죽음이 얽히고 스미는—이 담긴다. 이는 전시의 구성을 통해서 관람객에게 감상 형태로 전달된다. 오래된 분위기와 새로운 분위기가 공존하는 이 지역에서, 관람객은 전시장에 들어가 회화와 조형물에 시선을 돌리고 흘러나오는 사운드에 귀 기울인다. 가운데에 서서 전방향적으로 보다가, 작품 하나하나에 다가가자, 시선이 쪼개져 감각의 균형이 바뀐다. 그러고 다시 물러서서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돌린다. 좀 전에 들린 소리가 작아지고 장면은 시야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거기에 있다.)

전시 서문 ‘덩어리를 건져 올리기 위한 던짐’ 중 (전문 보기)
글: 콘노유키

기간: 2025.08.19.-08.30, 13:00–18:00 (월요일 휴관)
장소: 쉬 shhh (인천 중구 제물량로 166번길 5, 2층)

기간: 2025.09.04.-09.13, 13:00-18:00 (월요일 휴관)
장소: 공간 듬 (인천 미추홀구 주승로 69번길 22)


글|콘노 유키

디자인|석지아
전시 음악|한의주
사진|유물
영상 편집|한슬기
설치 도움|남현지

후원|인천광역시, 인천문화재단

본 전시는 인천광역시와 (재)인천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2025 청년예술인창작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개최되는 사업입니다.


전시작품 

<흰 개와 검은 노인>, 2025, 장지 위에 잉크, 185×130cm.
<개와 여자>, 2025, 장지 위에 목탄, 잉크, 116×149cm.
<겹과 결>, 2025, 장지 위에 목탄, 잉크, 14×139.5cm(3).
<모은_것>, 2025, 판넬 위에 장지, 목탄, 잉크, 라텍스, 45.4×53cm, 15×15cm.
<펼친_것>, 2025, 판넬 위에 장지, 목탄, 잉크, 라텍스, 45.5×53cm, 10×10cm.
<긁어낸_것>, 2025, 장지 위에 라텍스, 24×28.2cm.
<엉킨_것>, 2025, 장지 위에 라텍스, 23×28cm.

<지우개 찾는 사람>, 2025, 장지 위에 잉크, 32.2×47cm.
<바닥>, 2025, 장지 위에 잉크, 32.2×47cm.
<그>, 2025, 장지 위에 잉크, 22.6×16cm.
<그 풍경의 우리>, 2025, 장지 위에 잉크, 15×15cm.
<너는 나와 닮았다>, 2025, 장지 위에 잉크, 27.5×21cm.
<거-죽의 기억>, 2025, 라텍스, 목탄, 45.6×53cm.
<그것에게는 눈이 없다>, 2025, 장지 위에 수묵, 잉크, 145.5×89.4cm.

<하얀풍경: 물가>, 2024, 장지 위에 잉크, 43.6×53.8cm.
<하얀풍경: 가죽>, 2024, 장지 위에 잉크, 21.7×21.7cm.
<하얀풍경: 털>, 2024, 장지 위에 잉크, 25.5×14.6cm(2).
<개1>, 2024, 철사, 시바툴, 45×35×80cm.
<개2>, 2024, 철사, 시바툴, 71×33×45cm.
<개3>, 2024, 철사, 시바툴, 22×40×50cm.
<개4>, 2025, 철사, 시바툴, 32×16×54cm.
<3의 순환>, 2025, 턴테이블 위에 페인팅, 7×33×42cm.


작가 소개

박혜리 (b.2001)는 성신여자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작가의 작업은 한 권의 책처럼 서로 다른 장르와 장면이 이어지는 챕터로 구성된다. 평면과 입체, 설치와 드로잉을 넘나들며 독립된 이야기를 담지만, 결국 작가라는 한 사람의 서사로 모인다. 첫 개인전 《흰 개와 검은 노인》은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 기억과 망각 사이에 떠도는 모호한 감정을 포착한다. 작업은 끝내 닿지 못한 감정과 이야기를 ‘느슨하게 떠나보내는 낚시꾼’으로서, 감각의 궤적을 따라 잉크를 긁어내고 목탄을 긋는 반복적 행위로 기록한다. 어릴 적 잃어버린 지우개를 끝내 찾지 못한 경험과 두 번의 이별이 만든 ‘끝맺지 못한 감정’은 경계의 존재로서 작업 전반에 흐른다. 작품은 이분법적 세계 사이에서 모호함을 온전한 상태로 바라보며, 선과 질감, 소리와 표면의 반복과 어긋남 속에서 하나의 덩어리로 굴러간다. 단체전으로는 《Love my memories》 (2024, 답십리고미술상가, 서울), 《우리 속 우리》 (2024, 공아트스페이스, 서울), 《서 울》 (2023, 복합문화공간 미인도, 서울), 《스윙 바-이!》 (2023, 노드메이트, 서울), 《사^이》 (2023, 캠퍼스타운 오작교 프로젝트, 꿈의숲아트센터 드림갤러리, 서울), 《손에 쥔 것을 펼쳤을 때》 (2022, 복합문화공간 미인도, 서울) 등에 참여했다.



Hye-ri Park
White Dog and the Old Man at Dusk
Aug 19 – Aug 30, 2025
shhh, Incheon

“Everything exists like separate episodes within a single book. In this space, I let stories drift away—casting emotions, memories, and unspoken fragments into the distance, waiting for them to erode, break, sink, and eventually resurface. I retrieve them with care, rendering them with a sense of touch. The act of applying and scraping ink onto coated paper—never fully absorbed—becomes my own way of tracing the air and recording the intangible.”
— from the artist’s note

This exhibition unfolds in two spaces over different periods:


shhh (Aug 19–Aug 30)
166beon-gil 5, Jemullyang-ro, Jung-gu, Incheon
Hours: 13:00–18:00 (Closed Mondays)

Space Dum (Sep 4–Sep 13)
69beon-gil 22, Juseung-ro, Michuhol-gu, Incheon
Hours: 13:00–18:00 (Closed Mondays)

Text: Konno Yuki

Design: Seok Jia
Exhibition Music: Han Eui-ju
Photography: Yumull Studio
Video Editing: Han Seul-gi
Installation Assistance: Nam Hyun-ji

Supported by Incheon Metropolitan City and Incheon Foundation for Arts &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