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핵심단어 : 육성회비, 육지, 소풍

상세목록

0:00~01:15 경제지표(여전한 대물림과 가난)

01:57~02:13 : 건강지표(운동을 좋아하여 대부분 건강)

02:16~02:51 학교까지의 거리(초, 중은 2~5km 내외, 고등학교는 목포, 기숙사 생활)

03:07~03:51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시기)

04:16~05:17 육성회비(가난의 증거)

05:46~07:48 학창시절의 기억(소풍과 친구)

녹취문

그럼 다음으로 이제 10대 때 이제 학창 시절에 대해서 좀 여쭤보고 싶은데 먼저 경제부분은

참석자 2 00:08

저 밑바닥에서

참석자 1 00:10

이때가 가장

참석자 2 00:11

글쎄요 어차피 10대 정도는 경제는 밑바닥

참석자 1 00:17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참석자 2 00:19

특별히 우리가 가진 재산이 아무것도 없었어 지금 땅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어

참석자 1 00:26

근데 학창시절을 다니다 보면은 이제 학교 생활을 하잖아요. 그러면은 친구들과 뭐 먹고 싶은 것도 사 먹을 수 있고 그런 것도 좋아할 수 있잖아요

참석자 2 00:34

그럴 만한 여건이 없었지

참석자 1 00:37

참석자 2 00:37

가진 게 없으니까

참석자 1 00:42

본인이 이제 10대 학창시절 보내면서 본인이 진짜 가난하구나를 좀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었어요.

참석자 2 00:48

그런 계기는 많지 사실은 어떻게 보면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옷을 사 입거나 운동화를 신발 그런 거 등등 사 입고 그렇지만 우리한테는 그런 게 거의 없었어 뭘 사 입거나 하는 그런 경우는 거의 드물고 또 친척 누군가가 이렇게 살아주거나 그랬을 때는 한 번씩 있었지만

참석자 2 01:15

외가 식구들이 사 주었나 그래서 입은 적은 있지만 우리가 가난 때문에 그런지 실제로 옷을 사 입거나 그런 적은 거의 없다고 봐요

참석자 1 01:32

그러면 이제 건강은 뭐 운동을 하셨던 걸로 아는데

참석자 2 01:38

아빠는 시골에서 운동하는 게 다 그렇지만 축구도 하고

참석자 2 01:47

유년 시절을 하면 유도도 조금 하고

참석자 2 01:57

운동을 되게 좋아했던 것 같아 달리기도 남한테 재본 적도 별로 없는 것 같고 다방면에 운동은 좋아했던 것 같아

참석자 1 02:05

그래서 학창시절에 10대 때부터는 이제 건강하면 좋았다.

참석자 2 02:13

건강은 좋았지 운동을 좋아했기 때문에 누구한테 특별하게 자기 한 적은

참석자 1 02:16

그러면 그 당시 때 학교를 가잖아요. 그럼 혹시 학교까지 거리

참석자 2 02:20

거리는 한 2km 정도

참석자 1 02:25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참석자 2 02:27

고등학교는 여기서 없지 시골에 없지

참석자 1 02:29

그러면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는

참석자 2 02:31

10km 정도 안에

참석자 1 02:34

가깝네요. 시골 치고는

참석자 2 02:36

그치 그냥 가까운

참석자 1 02:37

고등학교는 어디로 목포 배를 타고 갔어야 했나요.

참석자 2 02:44

목포는 어차피 배 타고 가지 우리 시대는

참석자 1 02:46

그럼 고등학생을 목포에서 보내서 등교를 하려면 배를 타고

참석자 2 02:51

아니 등교를 하는 게 하는 게 아니라 목표를 아예 전학을 간다고 생각해야지 아예 전학을 그렇지 유학을 갔다고 생각을 해 임자도라는 섬이 원래 따지고 보면 유배지나 마찬가지야 예전 같으면 거기 섬이

참석자 1 03:07

그러면 여쭤보고 싶은 거는 이제 그럼 10대부터 20대까지 이제 어떻게 보면 학창시절인데 가장 기억에 남는다 라고 할 만한 게 있을까요.

참석자 2 03:21

포괄적으로 그렇게 얘기하면 친구들 얘기야 아니면 내 개인적인 일

참석자 1 03:25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두 가지 다 하셔도 되고

참석자 2 03:29

그냥 개인적으로는 10대 때는 가난했지만 그냥 나름대로 행복한 유년 시절이라고 봐야지

참석자 2 03:41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즐겁게 지내고 가난 빼고는 특별하게 나빴던 기억은 없어요.

참석자 1 03:51

학창시절도 전반적으로 만족도가 높았던 시기였다

참석자 2 03:52

그렇지 이제 옛날에는 육성회비이라고 우리 때는 육성회비이라고 있었어 그걸 이제 부모님이 못 내줘가지고 이제 조금 저기하는 건 있었지만 그것 말고는 특별하게 나빴던 기억은 없는 것 같아 가난 때문에 그러기는 하지만 이제 대부분이

참석자 2 04:16

우리 때 가난한 사람들은 육성회비를 잘 못냈어 날짜까지 예를 들어서 2월 말까지 내라 하면 3월 말까지도 되고 있는 데로 갖다 주고 이런 식의 지금처럼 시골은 다 그렇게 대부분 생활했던 것 같아

참석자 2 04:36

그게 많이 기억나지 육성회비 같은 거 이제 제 날짜에 못 내고 했던 기억이 나지

참석자 1 04:45

요즘은 좀 체벌 같은 게 많이 없어지잖아요. 학생들 체벌 같은 게

참석자 2 04:50

그렇지

참석자 1 04:51

전에는 육성회비를 못 냈다 라고 하면 맞기도 하고

참석자 2 04:55

나는 맞은 적은 없는데 그냥 그 선생님들도 그랬던 기억이 나 체벌 한 건 숙제를 안 해서 체벌한 것은 많았었는데 맞기도 많이 맞고 그랬었는데 저기로 등록금을 안 내서 체불하거나 그런 거 나는 한 번도 없었어요.

참석자 2 05:17

그것도 내가 또 부모한테 지게 다른 형제에 비해서 육상에 안 주면 내가 되게 부모한테 반항하는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형제들은 다 육성회비를 못 가져가도 나는 꼭 육성회비를 거의 시간 내에 거의 많이 가져갔던 것 같아요.

참석자 1 05:37

그러면 뭐 기억에 남는 친구나 아니면 좀 이건 기억에 남는 소품 아니면 뭐 운동회 뭐 이런 게 있을까요.

참석자 2 05:46

기억에 남는 뭐야 소풍은 항상 가던 데밖에 없었어 우리가 항상 가던 곳 거기 외에는 가본 적이 없으니까 어디든

참석자 1 05:59

초중고가 다

참석자 2 06:02

고등학교 때는 안 가고 이제 중학교 때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는 우리도 수학여행을 갔어

참석자 1 06:09

네 어디로

참석자 2 06:09

초등학교 때는 해수욕장 맨날 바닷가로 저기를 갔고 저기서 여행을 갔고 소풍을 가고 중학교 다닐 때는 육지에 나와서 처음으로 여행을 갔던 것 같아

참석자 1 06:26

처음으로 육지를 밟은 것 같다.

참석자 2 06:28

그렇지 도시하고 연결된 데를 처음. 가 봤지 그래서 저기도 저거 갔던 데가 어디야 공주 그 다음에 설악산 이렇게 해서 2박 3일 갔다왔던 거 그게 최초의 여행이었던 거 중학교 때

참석자 1 06:51

그러면 이때 기억나는 게 있어요. 2박 3일 공주 설악산 갔다오면서

참석자 2 06:57

그럼

참석자 1 06:58

어떤 게 기억에 남아요.

참석자 2 06:59

전라도 밑에는 식용개구리라는 게 없어 근데 거기는 식용개구리를 파는 데가 있더라고 설악산 쪽에 오다 보니까 그래서 그거 사 먹는 사람이 있더라고

참석자 1 07:13

아빠는 안 사 드시고

참석자 2 07:14

그는 그런 쪽은 별로 먹고 미개인 같아보여서 나는 이제 그런 건 잘 안 먹고

참석자 1 07:21

그럼 이제 기억에 남는 친구분

참석자 2 07:23

친구분은 이제 최철환이라고 지금 저기 제주도에서 교도소에 근무하는 교도소 소년원에 근무하는 친군데 그놈하고 되게 친했던

참석자 1 07:44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이분이랑 뭐

참석자 2 07:48

고등학교 올라가서 같이 큰 방에서 자치도 하고 같이 어울려서 다니고 스터디 그룹도 같이 하고 했던 기억은 크게 크게 재밌는 일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