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후퇴의 기억

다시 피난길에 오르다


1.4 후퇴가 발생하니 우린 바로 피난길에 올랐어.

이번에는 큰아버지가 당나귀를 갖고와서 짐을 싣고 한강을 건넜지. 당시 한강은 꽁꽁 얼었어서 걸어서 건넜고 그대로 분당까지 걸어 갔어.

나는 6.25때 보다 1.4후퇴가 더 힘들었었는데 1.4 후퇴때는 조당수라고 조를 아주 조금 넣고 물을 끓인 음식인데 밥을 먹기보다는 물로 배를 채우는 식에 가까웠지..

그나마 그거라도 먹을 수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

아버지와 멀어지며


1.4 후퇴가 시작되자 이번에 아버지는 국민병으로 끌려가셨어. 당시 신당동에 살았는데 끌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나에게 아버지를 부르라고, 소리치라고 하셨지만 나는 아버지를 부를 수 없었어 잘 안됐어... 그래서 멀어져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만 봤어...

듣기로 아버지는 부산까지 가셨다고 했어. 그리고 다시 도망쳐서 경안까지 오셨지, 그리고 계속 우리 집으로 돌아오시기 위해 노력하셨어. 하지만 한강을 넘기에는 힘들었지. 당시 한강에 군인들이 서있으면서 젊은 남자들을 국민병으로 잡아갔고 건너려해도 증명서가 있어야해서 쉽게 한강을 왔다갔다하지 못했어.

그래서 이번에도 내가 직접 움직였어. 한강을 건너기 위해서 다리를 건너는 여자의 치마자락을 붙잡았어. 마치 그 사람의 자식인 것 처럼 말이야. 그리고 다리 끝에서 군인을 만났을 때는 군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어. 내가 당당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아. 그렇게 한강을 넘어가 아버지를 만났고 아버지는 그 곳에서 목수일을 하시며 버신 돈과 쌀을 나에게 건네주셨고 나는 그걸 받아 다시 한강을 건넜지. 우리 식구는 아버지가 주신 쌀과 돈으로 생활을 이어갔어.

그리고 1.4후퇴가 끝난 후 온 가족이 신당동에 모일 수 있었지.

간첩과 북한으로


신당동집에서는 방 2개 한옥에서 살았는데 당시 아버지가 멀리계시니 방 1개를 세를 내주기로 했어. 그 방에는 어느 부부가 들어왔는데 구청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어. 어느날은 그 사람들이 지금 당장 안전한 곳으로 가야한다며 내일 차를 갖고 올 테니 자신들과 함께 떠나자고 미리 짐을 싸두라고 했지.

그런데 내일이 되니 그 사람들은 안왔어, 짐도 우리집에 그대로 있는데 말이야...한참이 지나도 그 부부는 나타나지 않자 어머니는 그들의 짐을 뒤져보며 그들이 북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되셨어. 북으로 갔기 때문에 짐을 찾으러 올 수 없었던 거야. 만약 그 사람들이 차를 끌고 우리를 데리러 왔더라면 북으로 가서 요즘 서울이 어땠는지 몰랐을꺼야

이후의 생활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고, 나의 모든 유년시절은 신당동에 있어. 그리고 요즘처럼 다양한 경험이 가능할 때가 아니니 그 시절에는 가족들이 한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하고 다행이었어.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우리 부모님이 참 대단하신 분들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