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학구열과 아버지의 장인정신

어머니 양경희

어머니는 참 멋진 여성이었어. 낫놓고 기억자도 모르고 교육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나랑 내 동생들은 공부를 해야한다며 고등하교까지 보내고 남동생은 대학까지 보냈으니말이야.

6.25당시 피난을 간 상황에서도 나를 학교를 보내셨어. 당시에는 제대로된 건물도 없이 산에 칠판을 걸어둔 것이 다지만 어머니는 나를 학교를 보냈지.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도 2년이 늦다보니 6학년도 제대로 못 마치고 중학교를 보내고, 내가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셨어. 그렇게 난 초, 중, 고를 다 졸업할 수 있었지.

우리 어머니 학구열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아? 동생들을 장춘초등학교를 다니게 하겠다고 취학통지서가 나오는 지역으로 호적을 옮길 정도였어. 물론 동생들은 동네 친구가 없다고 투덜거렸지만 어머니는 자식들이 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주셨던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우리 어머니는 참 대단한 분이셔.



>>고등학교 졸업식 때 할머니의 모습 (왼쪽 첫 번째)

아버지 조병옥


아버지는 목수이셨어.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에게 그 일을 배우셔서 독립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 일을 이어가셨지. 창틀을 정말 잘 만드는 장인이셨는데 이전 국회의원 한 분은 꼭 우리 아버지한테만 문짝을 해달라고 했어. 6.25때 북한군에게 끌려가고 국민병으로 잡혀갔을 때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는 우리 가족들을 위해 목수 일을 계속 하셨어. 전쟁이 끝났을 때에는 이제 피난갔다가 돌아오는 사람들이 집을 수리하느라 일이 많았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 일을 못 배운 것이 아쉬울 정도야.


학구열이 높은 어머지와 장인이셨던 아버지 사이에서 자라 나의 20대는 취업과 결혼으로 시작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