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농의 창립 역사

미농사람 이문규가 일하고 있는 미농은 과연 어떻게 창립 되었을까?
미농의 기원은 모두 이문규의 아버지인
이응철로부터 시작되었다.

<초등학생 이문규>


이문규의 아버지인 이응철
1975년 서울시
구로구에서 쌀 도매상으로 처음 일을 했다.
바로 미농의
창립자인 이응철이 처음 쌀을 맞이한 순간이다.


당시 10세에 불과했던 이문규는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관련 자료도 많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1977년에 군포에서 정부의 양곡 도정공장을
임대받은
이응철은 이를 3여년간 운영한다.
그가 개인적으로 쌀 사업에 뛰어든 첫 사업이었다.

4년뒤인, 1981년
이응철은 경기도 시흥시에
시흥 곡산이라는 현대화된 시설의 정미소를 짓게된다.
굉장한
도전의식끈기로 갖게된 자신만의 사업장이었다.
당시에는 상당히 현대화된 공장이었다 한다.


<시흥곡산 사업자등록증>

<대학을 졸업한 이문규와 이응철>



그러나, 시흥곡산이 어려워지자 이응철
포천에서 정부의 양곡 사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1991년 아들인 이문규가 대학교를 졸업한뒤,
함께 일할 사람이 필요했던 이응철은 이문규에게 말했다.
"함께 일을 해보는게 어떻겠냐"

이 한마디로 인해 이문규는
본격적으로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94년 미농 세무조정계산서1>

<1994년 미농 세무조정계산서2>

<1990년대 미농>

그리고 마침내 1994년 민간분야에서도 미곡종합처리장이 등장하자 이응철은 미농을 창립하였다.
미농의 1대 대표이사
이응철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문규는 아버지를 따라 미농에서 함께 일을 하게 된다.
뒤이어 2003년 이문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표이사에 취임하게 되었다.

<미농에서 이문규가 주로 일하는 장소>




단순히 아버지를 도와드린다는 마음에서 일을 시작한 이문규
지금은 이 분야에 큰
열정을 가지고, 미농을 이끌어 가고 있다.
마치 그의
아버지처럼..

그리고 현재 이문규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님과 같이 이 일을 한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이사 이문규의 현재 명함>

<미농 설립 당시 대표이사 이응철>

<미농 설립 당시 이문규와 첫 아들>

<현재 쌀 소비 패턴을 분석하는이문규>

누구보다 도전의식이 강했던 미농의 창립주 이응철,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한
이문규

닮지 않은 듯 닮은 두 부자는 서로를 가장 많이 의지했다.
아들을 믿고 일을 맡긴 아버지
묵묵히 아버지를 믿고 따라온 아들.
두 사람이 있었기에 지난 30년간
미농이 굳건했던 것이 아닐까?

<미농의 시설>

<미농 창고>

<미농 사무실>

<미농의 쌀 포장지>

미농사람 이문규가 일하는 곳은 많은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곳이다.
지난 30년간 꾸준히 그래왔다.
그리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수 많은 이야기는 또 무엇이 있을까?

본 전시는 한성대학교 2022년 디지털인문정보학트랙 4학년 1학기 수업 <아카이브와 콘텐츠> 수업의 구술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