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농사람 이문규의
(喜怒哀樂)

미농은 지난 30년간 한 번도 쉬지 않고 운영되어 왔다.
그 30여년의 세월동안 미농에는 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기쁘든(희), 화나든(노), 슬프든(애), 즐겁든(락)

그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희>

사람이 무언가 한 가지 일만 집중으로 하다보면
많은 인정을 받게 된다.
미농사람 이문규도 지난 30여년 동안 많은 공로를 인정받았다.


<2002년 행정자치부장관에게 받은 표창장>


<2014년 경기도지사에게 받은 표창장>

<2003년 농림부장관에게 받은 표창장>


미농사람 이문규가 정부로부터 받은 표창장이다.
꽤 많은 수상을 한 이문규씨의
자랑거리이다.

그가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받은 상인 행정자치부장 표창장,
그가 대표이사가 된 뒤에 처음으로 받은 상인
농림부장관 표창장,
쌀 산업에 있어 누구보다 능동적인 자세로 발전을 이루어 수여받은
경기도청 유공 표창 등

이문규는 이외에도 수 많은 표창장을 받았다.
내심 표현은 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기뻤을 것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 표창장>


그 중, 이문규가 가장 기억에 남거나 좋았던 표창장은 바로
대통령 권한 대행인 황교안 총리로부터 받은 표창장이라 한다.

"아이러니한 얘기인데 2016년도 겨울에 한참 촛불 시위가 일어났을 때,
국무총리인 대통령 권한 대행
황교안 총리로부터 받은 표창장이 기억에 가장 남습니다."

"왜 그게 기억에 남는지?"

"정권이, 대통령이 탄핵되고 대통령 권한대행으로부터 받은
표창장이기에 더 기억에 남습니다."

국무총리로부터 받은 상이라 기억에 남는게 아니라,
탄핵된 대통령의 대행으로부터 받은 상이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미농사람 이문규는 여태껏 많은 상을 받았지만,
항상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정말 이상을 받을 자격이 있나?'와,
'이걸 받고 사회에 유익한 기업이 돼야겠다'이다.

현재는 받은 상에만 안주하지 않고,
esg 경영의 환경과 사회적 역할과 지배구조에 부합하는 기업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유익한 기업이 되고자하는 이문규의 노력은
불우이웃 돕기에 서 찾아볼 수 있다.

<2019년 ㈜프로팩 소외이웃 돕기, 포천시>

인생에 있어 이문규의 < 희 >는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는 것에 있다.
비단, 그것은 정부로부터 인정받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때,
그의 입가에 가장 큰
미소가 번진다....


< 노 >

세상에 어찌 기쁜일만 있겠는가?
미농사람 이문규도 수 많은 실패를 맛보다.
기업인으로서 그가 안고 가야할 감정이다.

<현재 쌀 소비 패턴을 분석하는이문규>


미농사람 이문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지금이다.
최근 쌀 소비가 줄고, 매출이 급감하면서
큰 어려움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9명의 직원의 고용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것일까 걱정이 된다고 한다.

당장의 힘듬은 극복할 수 있겠지만,
쌀 소비 부진으로 인한 안타까운 현실은 큰
어려움을 안겨준다.



30년이 가까이된 미농, 평균 연령 40대 후반, 근속 연수 20여년..
미농사람 이문규가 책임지고 가야 할 부담은 회사의 이익이 아니었다.
바로, 함께하는 사람들의
지속 가능한 고용이다.


미농 30여년 동안 가장 힘든 날을 보내고 있는 지금,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한다...

<직원들의 과거 사진 3>


< 애哀 >

일을 하더라도 늘 슬픈일과 힘듬은 함께 찾아오기 마련이다.
미농사람 이문규아픔은 무엇일까?

<당시 손가락이 잘려나갔던 장소 1>



1995년 10월 가장 바빴던 날을 보내는 이문규
벼 수매를 위해 이틀 밤을 세우고,
3일째 되는 날에그만 큰
사고를 당하게 된다.

새벽에, 벼를 수매하고 건조 기계를 돌리는 작업을 할 때
그만 건조 기계에서 손가락을 크게 다치게 된다.

바로, 오른쪽 새끼 손가락이 한마디가 잘려나가는 사고였다.


<당시 손가락이 잘려나갔던 장소 2>

<손가락을 잘라간 당시의 기계>

몇일 밤을 세우고, 멍한 상태에서 벼를 건조시키다가갑자기 멈춰버린 벨트..
그만, 벨트에 손을 데다가 벨트가 돌아가는 바람에 새끼 손가락이 찢겨져 나간 것이다.

당시 혼자였던 이문규는 급한대로 수건으로 지혈을 하고,
잘려나간 손가락을 주어 의정부 성모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이 당시 아프다라는 표현은 손가락의 아픔이 아니었다.
밤을 꼬박 세워서 일해야만 했던 당시의
힘듬,
혼자서 그 많은 일을 감당해야 했던
부담,
손가락이 잘려나간 아픔보다 더 많이 느껴야 했던
피로,
당시의 이문규가 느끼는 아픔은 손가락의 아픔보다 더컸을 것이다.


다행이도, 성공적인 수술로 인해 손가락은 현재 붙어있다.
그러나, 그가 업무 스트레스와 피로로 느끼는 아픔은
매년
수매 시즌인 가을마다 찾아오고 있다....


< 락樂 >

세상에 어찌 힘든 일만 있겠는가?
그렇다면,
미농사람 이문규가 일을하며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농가들의 벼를 제값을 주고 수매할 때라고 한다.
제값을 주고 벼를 수매하여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같이
기뻐할 때가 가장 즐다고 한다.

제값에 수매를 하고, 이것을 잘 보관 및 관리하여
제 마진을 받고 판매했을 때 느끼는
보람은 상당하다고 한다.

<미농 창고>

<미농 내부 쌀 사진1>

<미농의 경기입쌀>

<미농 내부 쌀 사진2>

농가 소득에도 기여하며, 미농의 소득도 얻는 실리적인 경영.
그리고, 소비자들에게도 적당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먹거리를 공급할 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정책적인 배려가 함께 동반해야 한다.
모든 상황이 맞물려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고,
합리적인 선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한다.

모두가 힘들게 일하고, 좋은 결과를 얻고
또, 소비자가 쌀을 맛있게 먹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 아닐까...?

미농사람 이문규가 느끼는
어쩌면 매년마다, 매일마다 반복되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를
행복하게, 힘들게 만들 수 있다.

미농은 그의 인생에 상당 부분을 함께했다.
어쩌면 이문규의 삶 속에는
미농란 곳이 깊게 박혀있을지도 모른다.

미농과 함께한 지난 30년도 언젠가는 막을 내릴 것이다.
그 때는 미농을 벗어나
희(喜)락(樂)을 즐기길 기원한다.

본 전시는 한성대학교 2022년 디지털인문정보학트랙 4학년 1학기 수업 <아카이브와 콘텐츠> 수업의 구술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