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신과 악마, 질서와 혼돈, 선과 악, 검과 마법이 살아 숨 쉬는 모험과 환상의 세계가 있습니다. 용감한 영웅들이 부귀와 영광을 찾아 이 세계의 구석구석으로 위험천만한 여행을 떠납니다. 이것이 던전월드의 세계입니다.

던전월드의 모험가들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영웅은 엘프, 인간, 드워프, 하플링을 가리지 않고 나옵니다. 어떤 이들은 철갑을 두른 전쟁의 화신이고, 또 어떤 이들은 신비롭고도 강한 마법의 힘을 불러내어 뜻대로 부릴 줄 압니다. 거룩한 사제도, 음흉한 도적도, 고결한 성기사도, 이 세계에서는 보물과 영광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영웅 노릇이 항상 고귀하고 쉬운 것은 아닙니다. 사냥꾼이 친구들을 이끌고 지나는 그 오래된 숲 속에는 사람 머리 정도는 한 입에 잘라 먹을 수 있는 괴물이 적어도 백은 됩니다. 고블린 노예상인들이 한 무더기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회색의 마녀가 사는 저주의 숲인지도? 원한에 찬 언데드들이 밤마다 깊은 무덤에서 깨어나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 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렇듯 무시무시하지만, 그곳에는 보물도 있습니다. 세상의 잊혀진 빈틈에 잠들어 이제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 황금과 보석과 마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습니다. 굳센 영웅의 무리가 아니면 누가 이를 되찾겠습니까?

그 영웅의 무리가, 바로 당신과 친구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갈 수 없는 곳, 감히 쳐다 보지도 못 하는 곳으로, 여러분은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에는 이루 말로 다 못할 정도로 끔찍한 괴물들이 있고, 그만큼이나 놀라운 보물들이 있습니다. 도전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도적

모닥불 주변에서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는 여러 번 들었습니다. 이 싸움 저 싸움에서 자기가 얼마나 용맹했는지 자랑하기도 하고, 신들께서 일행을 보우하신다고 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그 사이에 당신은 돈을 세면서 씨익 웃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삶의 보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다름 아닌 돈임을 당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혼자 슬쩍 빠져나갈 때마다 동료들은 의심하며 타박하지만, 당신이 없었으면 모두 벽에서 발사된 칼날에 해부가 되었거나 고대인들의 독침 덫에 걸려 길고 괴로운 죽음을 맞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껏 불평불만을 하라고 내버려 두십시오. 모험질이 끝나면 영웅님들의 무덤에 건배를 올리는 것은 당신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그 건배는 창고에 황금이 가득한 저택의 비단의자에서 올려야 맛이겠지요.

드루이드

모닥불 주위를 둘러 보십시오. 도시의 홍진에 뒤덮이고 땀 냄새가 진동하는 이 사람들 곁에 당신이 머무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치 새끼곰들을 보살피는 어미곰처럼 친절하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이제 저 사람들도 당신과 한 무리인가요? 참으로 기묘한 형제자매를 두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당신의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그보다 날카로운 감각이 없으면 저들은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신성한 대지의 자녀입니다. 흙에서 태어나, 그 정령의 자국을 피부에 새겼습니다. 전에는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한때는 저들처럼 도시에서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당신은 이제 그 형태조차 자유롭습니다.

당신 친구들은 돌을 깎아 만든 신들에게 기도하며 쇳조각에 윤을 냅니다. 자기들이 살던 그 악취 나는 도시로 돌아가면 영광이 기다릴 것이라고 합니다.

저들의 신은 어린아이와 같고, 저들의 강철은 결국 녹이 슬 것입니다. 반면 당신이 걷는 길은 태고의 길, 당신이 입는 것은 대지의 껍질입니다. 당신도 자기 몫의 보물은 챙기겠지만, 과연 저들과 진짜로 어울릴 수 있을까요? 두고 볼 일입니다.

마법사

이 세계는 법칙으로 움직입니다. 그 법칙은 사람의 법률도 아니고, 어느 좀스러운 폭군의 변덕도 아닙니다. 그보다 더 크고, 더 좋은 법칙입니다. 잡고 있던 물건을 놓으면 떨어지고, 무에서 유를 만들 수는 없으며, 죽은 것은 도로 살아나지 않습니다. 맞지요?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고서에 얼굴을 파묻고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실험 때문에 미칠 뻔한 적도 많고, 소환 의식이 잘못되어 영혼이 날아갈 뻔 한 적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무엇을 위해서 한 것입니까? 당연히 힘을 위해 한 것입니다. 달리 추구할 것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산 사람의 혈관에 흐르는 피를 삽시간에 끓어오르게 만드는 힘, 하늘에서 천둥을 부르고 땅을 흔드는 힘.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나 믿고 싶어하는 법칙들을 벗어던지는 힘. 그것이 마법입니다.

남들은 당신을 백안시합니다. 등 뒤에서 “흑마술사”니 “악마소환사”니 수군대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물론 그것은 우주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질투일 뿐입니다.


사냥꾼

저 도회지 사람들을 보십시오. 늑대의 울음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고, 동방의 사막에서 뜨거운 바람에 데워진 모래를 느껴본 적도 없습니다. 당신처럼 활과 단도로 사냥감을 잡아 본 적은 있을까요? 당연히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을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누구는 당신을 길잡이라고 합니다. 누구는 숲사람이라고, 누구는 야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야생의 몸과 마음을 담아낼 수 없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혼자 야외에서 살아 왔지만, 위대한 무언가가, 어쩌면 운명이, 당신을 불러 이 도시 사람들과 함께 두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용감합니다. 강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모르는 땅의 비밀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없으면 모두가 길을 잃습니다. 사냥꾼이여, 피와 어둠을 뚫고 길을 밝히십시오.


사제

모험가들이 가는 곳은 살벌하기가 짝이 없어 마치 신의 버림을 받은 듯합니다. 시체가 돌아다니지를 않나, 식인 짐승이 들끓지를 않나, 번듯한 사원이 있는 문명의 땅과는 풍경도 딴판이고 거리도 멉니다. 그래서 당신이 이곳에 필요한 것입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이교도들에게 신의 영광을 보이는 것은 그냥 직무가 아니라 천부의 임무입니다. 검과 철퇴와 주문으로 말씀을 전파하고 무지한 야만의 땅에 깊은 칼자국을 내고 참된 믿음의 씨앗을 심는 것이야말로 곧 당신 삶의 보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신앙은 가슴에 품고 있을 때 진정으로 빛난다고. 당신은 그게 헛소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신은 칼끝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에 가르쳐 주십시오, 누가 우주의 진정한 주인이신지.


성기사

지옥은 항상 저 아래에서 우리를 기다립니다. 불로 되어 있건, 얼음으로 되어 있건, 그 무엇으로 되어 있건 간에, 그 고통은 극단적이고 영원합니다. 영원한 구원과 영겁의 고문 사이에 버티고 선 것은 바로 당신, 당신뿐입니다. 사제도 신을 섬긴다고요? 전사도 갑옷을 입고 검을 다룬다고요? 사제는 자기 전에 하늘에 계신 신들께 기도를 올리겠지만, 전사도 “선”을 위하여 검을 집어 들 수 있지만, 당신은 압니다. 오로지 당신뿐이라는 것을.

신의 눈이자 손이요, 신이 내리는 최후의 일격, 그것이 바로 성기사이고, 그 힘은 정의와 미덕에서 옵니다. 다른 누구에게도 당신과 같은 순수한 의지는 없습니다.

그러니 성기사여, 이 무지한 자들을 인도하십시오. 거룩한 대의를 받들어, 이 속된 세계에 구원을 가져오십시오.

정의가 필히 승리한다면, 패자는 그저 통곡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음유시인

모험가의 인생은 탁 트인 길과 부귀영화, 그리고 모험뿐이라고, 노래와 시에서는 말합니다. 술집이면 술집마다, 여관이면 여관마다 울려 퍼지는 노래들이 설마 처음부터 끝까지 꾸며낸 소리겠습니까? 평민의 가슴과 왕족의 가슴을 가리지 않고 설레게 하는 노래들, 야수의 마음을 달래고 사람의 투지를 불태우는 노래들의 출처는 과연 어디겠습니까?

그게 부드러운 혀와 날카로운 재치의 음유시인, 노래와 이야기에 사는 자, 바로 당신입니다. 평범한 노래꾼은 들은 노래를 부르고 왼 이야기를 되풀이할 뿐이지만, 진정한 음유시인은 노래 같은 삶을 삽니다. 그러니 장화끈을 매고 단도의 날을 가십시오. 영웅들 틈에서 싸우며 영웅이 되어야 비로소 그런 노래를 지을 자격도 생기는 법입니다.

동료들이 당신의 노래를 기다립니다. 이제 출발할 시간입니다.


전사

매일 같이 갑옷과 칼솜씨만을 의지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위험 속에 뛰어들지만, 남들은 고마운 줄을 모릅니다. 전에 북스베르크의 술집에서 친구들 대신 옆구리에 단도를 맞았지만, 아무도 나팔을 불고 칭송해 주지 않습니다. 광기의 구덩이 가장자리에서 비명만 지르고 있던 사람들을 질질 끌어서 구해냈지만 그렇다고 천사들이 노래를 불러줄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전혀 아쉽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 일을 하는 건 뛰는 가슴과 싸움의 함성, 그리고 뜨겁고 뜨거운 피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강철로 만든 검을 가지고 다니지만, 전사여, 당신은 강철 그 자체입니다. 동료들은 야영지 모닥불에서 상처가 쑤신다고 불평하지만, 당신은 흉터를 드러내고 자랑합니다.

당신은 벽입니다. 무엇이 되었건 부딪쳐 보라고 하십시오. 먼지가 걷히고 나면 서 있는 것은 당신뿐일 테니까요.


왜?

던전월드를 하는 이유를 대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유는 주인공들이 놀라운 일들을 해 내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모험가는 아무도 가 보지 못한 곳에 가고, 죽일 수 없는 것을 죽이고, 땅 속 가장 깊은 곳, 하늘 가장 높은 곳까지 찾아 갑니다. 역사적 대사건과 장엄한 비극에 말려 들기도 합니다. 그것을 보고 겪는 것이 던전월드를 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둘째 이유는 주인공들이 함께 싸우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주인공들이 모여서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적들을 상대로 합심하거나, 보물의 분배를 놓고 싸우거나, 전투 계획을 의논하거나, 어렵게 쟁취한 승리를 축하하는 것도 던전월드의 재미입니다.

셋째 이유는 세계에 탐험할 곳이 아주 많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잊혀진 무덤과 용의 보물창고가, 인적 없는 곳에서 모험가들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밝혀지지 않은 세계에서도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플레이를 통해서 이런 것들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캐릭터들의 인생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던전월드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입니다.

이 책의 사용법

이 책은 던전월드를 플레이하는 법을 담고 있습니다. 마스터가 되려면 책 전체를 다 읽어야 하지만, 괴물 자료는 훑어만 보고, 천변만화는 나중에 봐도 됩니다. 플레이 키트를 읽으면 던전월드에서 중요한 사항들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인쇄해 놓고 참고하십시오. 플레이어에게 필요한 룰은 상당량이 캐릭터 시트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플레이하는 법만 읽어도 괜찮습니다. 룰을 확인하느라 책을 찾아봐야 하는 일도 있겠지만, 흔치는 않을 것입니다.

준비

던전월드를 하려면 우선 같이 할 친구 2~5명을 모으십시오. 합해서 3~6명 정도가 적당합니다. 그 중에서 한 명이 게임마스터, 줄여서 마스터가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플레이어가 되어서 주인공 캐릭터를 담당합니다 (이런 캐릭터를 플레이어의 캐릭터, 줄여서 PC라고 합니다). 플레이를 진행해 나가면서, 플레이어들은 자기 캐릭터가 하는 말, 생각, 행동을 말로 표현합니다. 마스터는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을 표현합니다.

한 번 모일 때부터 헤어질 때까지를 하나의 “세션”이라고 하며, 한 세션에는 몇 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던전월드는 준비에 약간 시간이 걸리지만, 그래도 첫 세션에 플레이를 시작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한 세션으로 플레이를 끝낼 수도 있고, 여러 세션에 걸친 큰 모험 이야기를 꾸려 나갈 수도 있습니다. 후자를 “캠페인”이라고 합니다.

이 책 외에도, 던전월드를 시작하기 전에 필요한 준비물이 몇 가지 있습니다. 문서 자료는 모두 플레이 키트에 포함되어 있으니 인쇄해서 사용하면 됩니다.

• 기본 액션과 특수 액션 목록 몇 부.

• 직업별 캐릭터 시트 한 부씩.

• 사제와 마법사 주문 시트 한 부씩.

• 마스터 액션 목록 한 부.

• 펜과 연필, 지도를 그리고 메모를 할 종이. 공책이 있어도 좋습니다.

주사위도 필요합니다. 6면체 주사위 (d6)가 적어도 2개는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마다 6면체가 2개씩 있으면 편합니다.

더불어 4면체 (d4), 8면체 (d8), 10면체 (d10), 12면체 주사위 (d12)도 최소한 하나씩은 필요합니다. 주사위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던전월드의 느낌

던전월드는 주인공들이 황금과 명예를 찾아서 모험을 떠나 위험하고 흥미진진한 괴물, 유적,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는 맛으로 합니다. 진행은 플레이어들과 마스터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마스터는 플레이어들에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고, 플레이어들은 자기 캐릭터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행동을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런 설명의 와중에 액션이 발동될 수 있는데, 그러면 진행을 잠시 멈추고 “주사위를 굴려서 어떻게 되는지 볼 때”가 됩니다. 그러면 모두가 긴장하고서 주사위가 구르는 것을 봅니다. 던전월드는 주사위가 어떻게 나와도 흥미진진한 일들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고 모험을 겪다 보면 캐릭터들도 변합니다. 세상을 좀 더 이해하고, 괴물들과 싸워 이기며, 보물을 모으면서 경험도 더 쌓습니다. 주인공들 사이의 관계도 달라지고, 각자의 인생관도 도덕 관념도 변합니다. 경험이 쌓이면 레벨이 높아져서, 그만큼 더 강해지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던전월드는 같은 사람들끼리 세션에 세션을 거듭해서, 캐릭터들의 변화와 성장을 함께 보고 겪으며 오래도록 플레이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한 세션만에 끝낼 수도 있습니다. 장편이건 단편이건, 던전월드의 룰은 판타지적 모험의 세계를 만들고 탐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