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르엘 평야 중에서도 므깃도는 동서남북을 서로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으므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제국들의 군대는 이곳을 통과하여 지나갔고, 가나안 땅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전투가 가장 많이 벌어졌던 곳이다. 솔로몬 왕은 므깃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곳을 강화시켰고, 이 지역의 행정적 중심지로 만들었다. (왕상 9:15) 그러나 923년경 애굽의 시삭(Sisak)은 므깃도를 파괴하였고 그 후 아합왕때 이곳은 다시 재건되었다. 요시아왕은 북진하는 애굽 군대를 이곳에서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BC 609). 1917년 영국의 알렌비(Allenby)장군이 터어키군을 패배 시켜 승리로 이끈 곳도 므깃도였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마겟돈(Amageddon)'은 므깃도 산(Har megiddo)이라는 히브리 말을 희랍어로 옮긴 말이다.
므깃도는 1925-39년에 시카고 대학의 동양 연구소(Oriental Institute)에 의해 발굴되었다. 또한 1960년 니가엘 야딘(Yigael Yadin)도 발굴하
였다. 이곳은 주전 3000년 부터 큰 도시가 형성되었다. 이곳에서 가나안 원주민들이 만들었던 산당(High Place)식 신전을 발굴하였고, 또한 솔로몬 때 건설한 성벽, 성문, 관저들도 발굴 되었다. 므깃도에서 중요한 것은 '솔로몬의 마병장(Solomon's Stables)이다. 솔로몬은 그 당시 군사력의 상징인 기병대를 육성하여 '병거성(City of Chariosts)'과 '마병의 성(City of Horsemen)'들을 건설하였다. 므깃도는 이러한 병거, 마병성의 하나 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므깃도 발굴에서 말의 고삐를 매는 돌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큰 장소를 발굴 하였다. 약 450마리 정도의 말과 150대의 병거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이며, 중앙에는 말에게 물을 먹이던 큰 물통도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것을 '솔로몬의 마병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 발굴된 지층은 솔로몬 왕 때의 주거 층이 아니라, 이보다 약 100년 후 아합왕 때의 것이다.(BC 869-850)
므깃도는 시삭에게 파괴되었다가 아합때 복구 되었었다. 그러나 아합왕 때의 마병장은 그 이전 솔로몬 때의 것 위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 할 수 있으며, 규모도 비슷한 것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적의 외침이 있을 때 성이 포위되더라도 주민들이 성밖에 있는 샘물을 무사히 걸어 올 수 있도록 만든 굴이다. 큰 통로가 바닥까지 내려 있고 그 통로의 끝에서 바위 구멍을 뚫고 도시 밖의 샘으로 부터 도시 내부로 끌어 들이도록 되어 있다. 밖의 샘 입구는 포위하고 있는 적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흙으로 덮여 있다
<성지순례-19> 므깃도
므깃도, 이스르엘 평야를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
아마겟돈 전쟁은 과연 일어날 것인가.일어난다면 그 시기는 언제인가.인류종말의 전쟁터로 예언된 성서의 아마겟돈 므깃도를 찾아가는 길은 흥분으로 가득했다. 세 악령이 왕들을 불러 모아 하나님의 군대와 영적 전쟁을 벌이는 곳으로 묘사된 아마겟돈(요한계시록 16장16절)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므깃도는 나사렛에서 약 18㎞, 하이파(Haifa)에서 남동쪽으로 약 32km 정도 떨어진 이스르엘 평야에 자리 잡고 있다. 평지보다 50m 높은 언덕에 있는 성읍이다. 이곳은 아마겟돈이라는 말로 더 유명한 군사전략적 요충지 중의 하나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마겟돈(Amageddon)'은 므깃도 산(Har megiddo)이라는 히브리말을 희랍어로 옮긴 말이다.
이스르엘 평야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한 평야 지대이며 곡창지대로, 므깃도는 고대로부터 이스르엘 평야를 지키는 요새도시였다. 더구나 므깃도는 이스르엘 평야 중에서 동서남북으로 서로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다. 해안을 따라 애굽으로, 남쪽으로는 사마리아와 세겜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북쪽으로는 악고를 지나 두로와 시돈으로, 또 갈릴리를 거쳐 다메섹으로, 벳산을 거쳐 암몬으로 연결되는 사통팔달의 교통로여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따라서 평화시에는 대상들이 왕래하는 길목이었고, 전시에는 북쪽의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등이 애굽을 치러 남쪽으로 갈 때, 남쪽의 애굽이 북쪽을 치러 갈 때, 항상 므깃도를 거쳐 가야만 했으므로 이 므깃도는 아군에게는 방어요새로, 적군에게는 점령해야만 하는 교두보로 이용되었다. 그래서 20여회 이상의 국제 전쟁을 치른 지역이었다.
역사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이 므깃도에는 주전 3천 5백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출애굽 당시에는 여호수아에 의해 가나안 땅과 함께 정복되었다. 그 후 다윗왕에 의해 점령되고, 솔로몬 왕은 므깃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하솔, 게셀과 함께 견고한 요새로 구축하였다 한다.(왕상9:15) 그러나 923년경 애굽의 시삭이 므깃도를 파괴하여 그 후 아합 왕 때 다시 재건되었다. 부상당한 아하시아 왕이 여기에서 죽었으며,(왕하 9:27), 요시아 왕은 북진하는 느고 왕의 애굽 군대를 이곳에서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왕하 23:28~30) 그 후 이곳은 폐허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리고 1917년 영국의 알렌비(Allenby) 장군이 터키군을 패배시켜 승리로 이끈 곳도 므깃도였다.
이토록 므깃도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점령, 파괴가 반복되는 전쟁터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더구나 신약의 요한계시록에 이 도시가 헬라어로 음역되어 '아마겟돈' (Armegeddon)으로 등장하는데, 종말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계 16:16)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도시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이집트 카르낙 신전 벽면에 부조되어 있는 투투모스 3세의 승전 기록인데, 그는 BC 1468 년 므깃도에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왕이었음을 자랑하고 있다. 므깃도는 1925~39년 시카고대학의 동양연구소에 의해 발굴되었고, 1960년 니가엘 야딘(Yigael Yadin)이 추가로 발굴하였다. 이곳에서 가나안 원주민들이 만들었던 산당(High Place)식 신전을 발굴하였고, 또한 솔로몬 때 건설한 성벽, 성문, 관저들도 발굴되었다.
므깃도에서 중요한 것은 '솔로몬의 마병장(Solomon's Stables)이다. 솔로몬은 그 당시 군사력의 상징인 기병대를 육성하여 ‘병거성(City of Chariosts)'과 ’마병의 성(City of Horsemen)‘ 등을 건설하였다. 말의 고삐를 매는 돌기둥들은 약 450마리 정도의 말과 150대의 병거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이며, 중앙에는 말에게 물을 먹이던 큰 물통도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것을 '솔로몬의 마병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 발굴된 지층은 솔로몬 왕 때의 주거층이 아니라, 이보다 약 100년 후 아합 왕 때(BC 869-850)의 것이라고 한다. 므깃도는 이러한 병거, 마병성의 하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성밖에 있는 샘물을 무사히 걸어 올 수 있도록 만든 굴이다. 큰 통로가 지하 10m의 바닥까지 내려 있고 그 통로의 끝에서 바위 구멍을 뚫고 도시 밖의 샘으로부터 도시 내부로 끌어 들이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적의 외침이 있을 때 성이 포위되더라도 주민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밖의 샘 입구는 포위하고 있는 적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흙으로 덮여 있다.
므깃도 정상에서 바라본 이스르엘 평야는 푸른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평화롭다.그 가운데 기손강이 흘러 평화와 풍요를 상징하는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했다.이런 곳에서 인류 종말의 전쟁이 일어난다니? 므깃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의문을 품을만하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아마겟돈(므깃도)은 수많은 전쟁의 역사로 인해 세상종말의 전쟁터로 기록된 것에 불과하며, 므깃도는 종말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될 때의 공간적 상황에 대한 예시로 제시된 것이라고 본다면 잘못일까? 중요한 것은 그곳이 언제, 어디가 되었든 마지막 날을 대비하는 나의 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 멀리서 바라본 므깃도 *
* 므깃도 박물관 입구(상), 안내판(하) *
* 위치도(상), 박물관 내의 므깃도 모형도 *
* 정상의 성읍으로 올라가는 길 *
* 발굴된 정상의 유적들 *
* 굴로 내려가는 계단(상), 물 저장소(중), 수로터널(하) *
* 므깃도 정상에서 내려다본 이스르엘 평원 *
아마겟돈 전쟁
요한계시록에는 세상의 마지막 때에 인류의 왕들이 마지막 전쟁을 벌이는 장소가 나오는데, 아마겟돈Armageddon이다(계 16:16). 아마겟돈은 ‘므깃도의 산’이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표기한 이름이다.
인류의 마지막 전쟁은 아마겟돈이라 불리는 므깃도의 평지와 언덕에서 일어날 것이다. 기독교인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이곳의 유대인 가이드들은, 자신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아마겟돈에 대해 설명하며 “빛과 어두움의 전쟁이 있을 것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므깃도의 역사와 성경 속의 므깃도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땅에서 국가 간에 쟁탈 전쟁이 가장 많이 일어났던 곳이 바로 므깃도 지역이다. ‘텔 메기도(므깃도 언덕)’라 이름하는 이곳에 수천 년 전에 견고한 성벽들이 있었고, 기원전 1500년경에는 이집트제국이 이곳을 통치했으며, 그 후 가나안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하며 므깃도를 지배했다. 여호수아 시대에 므낫세 지파가 이 지역을 분배받았으나 그들은 가나안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했다(수 12:21, 삿 1:27~28).
그 후, 솔로몬은 이곳에 요새를 짓고 도시를 형성했다(왕상 9:15). 솔로몬은 국가 방어를 위해 이스라엘에 12 관장官長을 두었는데, 므깃도에도 한 관장을 두었다. 그리고 므깃도 요새에는 마병馬兵과 병거兵車와 국고國庫를 위한 형태로 성을 지었다. 솔로몬은 므깃도의 관장으로 하여금 해마다 왕실에서 쓸 한달 치의 식량을 조달하게 하여, 므깃도의 경제적 상황을 점검함은 물론 왕실과의 긴밀한 관계도 항상 염두에 두었다.
므깃도 요새는 아합 왕 시대에도 마병과 병거를 위한 성으로 사용되었는데, 당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마구간 터, 수백 마리의 말들이 묶여 있던 곳, 말의 구유로 사용되었던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유다 왕 아하시야가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을 만나러 갔을 때,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요람 왕을 죽이고 도망치는 아하시야 왕을 므깃도에서 죽였다. 요시야 왕이 애굽 왕에게 죽임을 당했던 곳도 므깃도다.
므깃도는 BC 732년경 앗시리아에 정복되었다가 BC 609년에 다시 이집트에 정복당한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1917년에 영국군과 터키군의 전쟁에서 영국의 알렌비 장군이 터키의 정예부대를 므깃도에서 크게 무찌른 역사가 있다.
왜 므깃도가 중요한 곳이었는가?
므깃도 국립공원 안에 들어가니, 옛 므깃도가 어떤 형태의 도시였는지 모형이 만들어져 있었다. 수많은 정복 국가들에 의해 므깃도에 성과 요새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정복자들은 무너뜨린 성 위에 터를 닦고 성을 짓고, 또 무너뜨리고 그 위에 성을 짓기를 반복했다.
므깃도 박물관 안에 전시되어 있는 지도를 보며, 고대에 므깃도가 지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므깃도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일어난 메소포타미아 문명, 나일 강 유역에서 일어난 이집트 문명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장소였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지점으로, 이스르엘 평원에서 동서남북 네 곳이 교통하도록 연결해 주는 정확한 교차점이었던 것이다. ‘바닷길’이라 부르는 지중해를 끼고 펼쳐진 이스르엘 평원은 이집트, 시리아, 페르시아제국 등이 서로 오가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므깃도가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교차점이었던 것이다. 므깃도를 통과하는 길이 무역상들이 이집트에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가는 가장 편하고 빠른 길이었다. 동시에 군사 작전시 제국과 제국 사이에 보급품이나 군수품을 가장 빨리 조달할 수 있는 최고의 길이었다.
그렇기에 므깃도를 차지하는 제국이 상업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나라의 부흥을 좌우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곳이었기에 주변의 모든 나라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므깃도를 차지하려 했다. 므깃도에서는 고대의 상아 제품, 보석 같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당시 므깃도가 무역에 있어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므깃도에서 발굴된 유적들
므깃도 옛 성터에서 발굴된 유적들에서는 그곳을 정복했던 여러 제국의 흔적도 볼 수 있지만, 특별히 솔로몬 시대와 아합 왕 시대의 유적들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솔로몬 시대의 성벽 터와 성문, 그리고 관저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터 등이 발굴되었다. 옛 므깃도 요새로 들어가는 곳에는 솔로몬 시대에 서 있었을 큰 돌로 만들어진 성문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솔로몬 시대에 이 장소에 성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나, 현재 남아 있는 성문의 유적이 솔로몬 시대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많은 학자들이 솔로몬 시대의 유적으로 보고 있다.
첫 번째 문을 통과하면 또 하나의 성문이 나온다. 이것은 사람이 출입하는 문과 마병 및 병거들이 출입하는 문을 구분해서 사용하기 위함이었으며, 또한 적의 침입을 받았을 때 첫 번째 문이 열리면 다음 문에서 2차 방어를 할 수 있는 효과도 동시에 갖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
므깃도 요새 곳곳에는 말을 묶어 두는 돌기둥, 수백 마리의 말이 쓸 수 있는 돌구유 등 말과 관련된 유적들이 많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므깃도가 마병馬兵 성이었음을 증명한다. 솔로몬 시대에 마병 성이었던 이곳의 유적들은 아합 왕 때 다시 재건되어 대대적으로 사용되었기에, 현재의 유적들은 모두 아합 왕 시대의 유적이라 함이 더 맞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유적 중에 여호수아 시대와 사사기 시대에 가나안 족속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당 터가 발굴되었다는 것이다. 이 산당은 돌로 둥글게 쌓아 만들었는데, 가나안 족속이 자신들의 신을 섬기며 희생을 드린 장소로 여겨진다. 성경에 나오는 이방 신을 섬기는 산당의 모양이 어떠한지 추측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므깃도 언덕에는 길이 약 35m의 수직 갱도, 이어서 암반을 뚫어 만든 70m 가량의 터널이 나온다. 이 터널의 끝에는 샘물이 고인 물웅덩이가 있다. 당시 므깃도에서 물을 얻을 수 있는 장소는 성 밖에 있는 샘물들뿐이었다. 그랬기에 요새가 적에게 둘러싸이면 물을 얻을 길이 없었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 안에서 지하로 갱도를 판 후 물웅덩이가 있는 곳까지 터널을 뚫어 물을 길러올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터널은 아합 왕이 전쟁을 대비해 만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목을 끄는 점은, 바위로 덮인 땅을 수직으로 구멍을 내 파고 들어간 후 다시 직선으로 바위를 파고 들어가 성 밖에 있는 샘까지 연결되게 터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성 밖에 있는 샘의 입구는 적이 전혀 감지하지 못하게 흙과 자연적인 모습으로 은폐되어 있었다고 한다.
BC 40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므깃도 지방에서 간혹 전쟁은 있었지만 사람이 살지 않아 옛 시대의 유물들이 모두 흙 속에 깊이 파묻혀 있었다. 그 넓은 지역을 한 구역, 한 구역 발굴을 진행해 광대한 지역에서 유적들을 발굴해낸 것을 생각하면, 발굴작업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인류의 마지막 싸움
므깃도 평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잠시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한국의 푸른 논밭처럼 전원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무척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에서 과거에 수많은 전쟁이 있었으며, 앞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국제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성지 순례를 오는 사람들에게 한번씩 “이곳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 믿어집니까?” 하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에 므깃도 산에서 인류의 마지막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한 일이다.
랍비 ‘유다 글릭’
얼마 전, 내가 아는 랍비 한 사람이 팔레스타인 청년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진 사건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유다 글릭’으로, 성전 재건 운동가인 그는 수년 간 매일 성전 산에 올라가 무슬림 ‘바위돔 사원’ 앞에서 기도를 드려왔다. 그곳은 옛 솔로몬 성전 터였지만 현재는 무슬림 사원이 세워져 있는 지역이라 유대인이나 타 종교인은 그곳에서 기도하지 않는 것이 통례인데, 그는 성전을 재건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매일 그곳에 올라가 기도했던 것이다. 그래서 늘 그를 가운데 두고 이스라엘 경찰과 무슬림 경비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아랍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기도하고 내려오는 그를 총으로 저격한 것이다. 다행히 목숨은 건져 아직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중이다. 그는 저격당하기 2주 전 나를 만났을 때, 자신의 가방에서 새 성전의 도면과 수정본을 한 뭉치 꺼내 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가 저격당한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가 악화되고, 빨리 성전을 짓자고 주장하던 유대교인들이 분노하여 성전 재건 운동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은 자기 생각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은, 내가 이루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도하라고 하시면 우리가 전도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 말씀대로 전도할 길을 하나님이 열어 주신다. 그와 같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므깃도에서 인류의 마지막 전쟁이 일어날 것을 정확히 알고 믿는다. 그 일뿐 아니라 모든 일이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는다.
나는 근간에 내가 일을 했을 때와 하나님의 말씀이 일을 했을 때 어떠했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는 너무 달랐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일을 하시는 분이심이 틀림없었다. 지금도 거듭난 교회를 통해 그리고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통해 하나님은 이 시대를 향한 당신의 뜻을 말씀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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