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있는 참고 자료로 1년의 오차가 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자료라서 올립니다.
언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렸는가?
1차: 고레스 원년 BC537년 - 성전 건축 중단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스 1:2)
그러나 사마리아와 주변 나라들의 방해로 전을 건축하지 못함
2차: 다리우스1세 BC520년 - 성전 건축과 봉헌식
“다리오 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니라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즐거이 하나님의 전 봉헌식을 행하니”(스 6:15-16)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 강 서편에 있는 신복들은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우리의 곳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스 4:11-13)
2차에서 이미 성읍을 건축하기 위하여 성전은 건축되었고, 성곽(성벽)을 건축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사마리아와 주변 나라들의 방해로 실패함
3차: 아닥사스다 7년 BC457년 - 예루살렘 성 전체가 중건됨
“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조서하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로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강 서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스 7:12-25)
(스 9:9, 킹흠정) 『이는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우리의 속박 가운데 버리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페르시아의 왕들의 눈앞에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사 소생하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의 집(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또 그 황폐하게 된 것을 보수하게 하시고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성벽을 주셨음이니이다.』
2차에서 성전은 이미 중건되었고, 3차 중건령에서 모든 성문과 성벽이 중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성벽을 주셨다"는 말씀에서 성문과 성벽이 거의 재건되었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멸망하기 전의 상태 즉 하나님의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던 자치권이 3차 때에 회복되었다.
따라서 다니엘이 말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의 조서에 가장 합당한 조서는 3차이다.
4차: 아닥사스다 20년 BC444년 -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다시 재건
“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 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 ...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느 1:1-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느 2:3-5)
하나니와 다른 유대인들이 고국으로부터 도착하기 전에 느헤미야가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한 사건과 그들이 최근에 재건한 성벽 일부를 파괴했다는 소문을 들었을지 모르지만, 그가 유대로부터 받은 믿을 만한 소식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느헤미야는 더 상세한 소식을 알고자 열망했을 것이다. 그의 형제와 다른 유대인들이 도착함으로, 바사와 유대 사이에 연락이 두절된 기간에 발생했었을 수도 있는 사건들을 목격한 자들의 보고도 함께 이르게 되었다.
어떤 주석자들은 하나니의 이 말이 BC 586년에 느부갓네살 군대가 예루살렘 성읍을 파괴한 사실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느3장에서 볼 수 있는 성벽 건축에 대한 그 다음의 설명을 감안해 보면, 성벽과 성문 전체가 파괴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느부갓네살이 파괴한 상태로 있었다면, 아무리 좋은 조건에 있었을지라도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성문을 포함하여 성벽 전체를 재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급속한 중건은 지도자들과 백성의 큰 열심뿐 아니라, 사마리아인들이 그 일부를 파괴하기 전에 분명히 에스라와 다른 이들의 지휘 아래 상당한 진척이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내용에는 무너진 성전뿐만 아니라 폐허가 된 성읍(城邑)의 복구도 포함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율법으로 다스리는 자치권의 부여는 필수적이다. 이 일을 위한 세 명의 페르시아 왕들의 조서는 고레스 원년(537년 BC), 다리우스 1세 제2년(520년 BC), 아닥사스다 제7년(457년 BC), 아닥사스다 제20년의 추가 조서(444년 BC) 등이 있었으나, 다니엘서 9장 25절에 예언된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 조서는 기원전 457년에 내린 아닥사스다 왕 제7년의 조서였다(스 4:12, 13, 7:7~26).
[다음에 두 번째의 귀환령이 아닥사스다 왕 7년이 되는 B.C. 457년경 에 있었다. 그러나 이 때의 귀환령 역시 예루살렘의 중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 물을 드리기 위한 영이었다.]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1.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단9:25)에서 한국어 성경에서는 중건이라는 한 단어로 쓰여져 있습니다만 "중건"이라는 단어를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슈브"(shub)와 "바나"(banah)라는 두 동사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문성경에서도 to restore and to build Jerusalem 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슈브"는 회복하다(restore)를 뜻하고
"바나"는 세우다 짓다 (build)를 의미함으로써
전체적인 뜻은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다"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2. 그러니까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라는 뜻은
"예루살렘을 본래의 상태로 완전히 회복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라는 뜻입니다.
본래의 상태로 완전히 회복한다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뿐만 아니라 성읍의 재건은 물론 제사 제도 등 종교의식과 함께 이에 관계된 행정과 사법권의 회복 등도 폭 넓게 의미하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스 7: 25, 26을 보면
25절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로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강 서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라고 되어있고
26절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하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
위의 25절을 보면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백성을 재판함으로써 스스로 백성을 다스리고 재판하는 자치권을 회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유대인들은 성문에서 백성을 재판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은 물론이요 예루살렘 성읍과 모든 사법권도 모두 회복됨을 알 수 있습니다.
4. 그런데 목사님은 어찌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물을 드리기 위한 영이었다고 말씀하시는지요?
5. 또한 445년에 내려진 조서에서 느헤미야의 귀환은 아닥사스다 왕 제7년(BC 457년)의 경우와는 달리
집단적이 아니라 신변 안전에 역점을 둔 개인적인 것이었으며(느2:7-9)
또한 비밀리에 진행된 것이었습니다.(느2:12)
이것이 어떻게 예루살렘 중건령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까요?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로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강 서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라고 되어있고,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하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25-26)."
위의 25절을 보면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백성을 재판함으로써 스스로 백성을 다스리고 재판하는 자치권을 회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유대인들은 성문에서 백성을 재판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은 물론이요 예루살렘 성읍과 모든 사법권도 모두 회복됨을 알 수 있습니다.
4. 그런데 BC 444/445년에 내려진 조서에서 느헤미야의 귀환은 아닥사스다 왕 제7년(BC 457년)의 경우와는 달리 집단적이 아니라 신변 안전에 역점을 둔 개인적인 것이었으며(느2:7-9) 또한 비밀리에 진행된 것이었습니다(느 2:12). 그러므로 예루살렘 중건령은 BC 444/445 이 아니라 스7:25, 26에서 보는 것처럼 아닥사스다 왕 제7년 BC 457 이 맞습니다.
질문: 예루살렘 중건령이 BC 457년인 근거는? (단 9:25)
실제 예루살렘 성전 중건의 역사를 보면 최초에 고레스가 BC 538년에 성전 중건령을 내렸고(스 1:1) 20년 후인 BC 516년 다리오 왕 6년에 성전이 완공되어 봉헌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 6:15-18) 이는 생애의 빛에서 주장하는 예루살렘 중건령 BC 457년의 59년 전의 일입니다. 자세한 역사를 알고 싶습니다.
답변
예루살렘 중건령은 3번에 걸쳐 있었다. 3번의 명령이 있었는데 왜 예언 계산의 기산점을 세 번째 명령인 BC 457년으로 잡는가? 성전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다니엘 9:25에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라고 했다.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단 9:25)
즉,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라는 명령을 말한다. 25절의 뒷부분에서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라는 말씀에서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명령의 구체적 의미를 알 수 있다. 예루살렘 성의 거리와 해자(적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하여 성 둘레의 외벽 아래에 파놓는 인공적인 호수)가 만들어져야만 25절에서 말하는 중건령이 될 수 있다.
BC 538년경 - 고레스 왕은 중건령을 내렸는데, 이것은 예루살렘 성의 중건령이 아니라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이었다(라 1:1-4, 대하 36:22,23).
BC 519년경 - 다리오 1세가 주위 나라와 민족들의 반대로 중단되었던, 고레스의 조서를 확인하는 새 칙령 반포함(스 4:1-12). 이것은 강서편 총독의 성전 중건에 대한 상소로 인해 내려진 것으로 예루살렘 중건령이 아니라 성전 건축령이었다(스 5:3-17, 6:1-5 참고).
BC 457년 - 아닥사스다 1세는 세 번째 조서를 내림. 이것은 그전의 단순히 건축하라는 법령과는 달리 수도로서의 예루살렘의 지위를 회복시키고, 법을 집행할 행정관과 재판관들에 대한 임명권까지 부여했다(스 7:12-26). 또한, 관리들의 주택과 재판소, 거리와 성벽 등의 건축을 허가했다. 그러므로 기원전 457년에 내린 명령이 다니엘 9장 25절에 기록된 중건령이 된다.
언제 예루살렘 중건 영이 내렸나? <--- 클릭하면 열림
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제칠년 다섯째 달이라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 학자요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14.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하여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으니
15.왕과 자문관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성심으로 드리는 은금을 가져가고
또 네가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 모든 은금과 및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기쁘게 드릴 예물을 가져다가
그들의 돈으로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그 소제와 그 전제의 물품을 신속히 사서 예루살렘 네 하나님의 성전 제단 위에 드리고
그 나머지 은금은 너와 너의 형제가 좋게 여기는 일에 너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쓸지며
네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그릇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궁중창고에서 내다가 드릴지니라
나 곧 아닥사스다 왕이 유브라데 강 건너편 모든 창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을 신속히 시행하되
은은 백 달란트까지, 밀은 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백 밧까지,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이나 노래하는 자들이나 문지기들이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혹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는 것이 옳지 않으니라 하였노라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436년은 희년인데 안식년 주기의 첫해이다. 436+21=457년도 안식년 주기 첫해이다.
성서력으로 닛산월 1일은 정월 초하루.새해 첫날이다. 안식년 주기의 첫해의 새해 첫날이 바로 70이레의 출발점이다.
BC 457년에서 69이레 후는 AD 27년이 된다. 기원전에서는 빼가야 되고 기원후 부터는 더해가야 해서 어떻게 계산하는냐에 따라 1년 더 나오고 1년이 덜 나온다. 483-457=26+1 , 457+27=484-1 AD 1년 다음에 BC 1년이다.
기원전과 기원후로 넘어가는 계산이 다소 헷갈리지만 넘어갈 때 1을 더해야계산이 정확해 진다.
쉽게 설명하면 기원전 2년에서 기원후 1년까지 몇 년이 지난 것인가? 실제로는 2년이 지났는데 년도는 기원후1년이다. 그래서 1년을 더해야 된다.
기원전457에서 483년 지난 해는 기원후 27년이 된다.
69이레 후는 바로 기원후 27년은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던 30세가 되는 해이다.
기원전 4년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추정된다.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의 호적령으로 인구 조사를 명령한다.
베둘레헴으로 마리아와 요셉이 간 해이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다니엘 9장 25절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름부음 받으신 것을 의미한다,즉 성령이 임하는 그 때가 왕이 일어난 때이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다니엘 9장 26절)
예순두 이레 후에 란 말은 기름부음을 받고 3년 후에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의미한다.
기원후 27년 안식년이 끝나는 절기 이다.기원후 6년은 희년이다. 6+21년은 27년 안식년이 끝나고 안식년 첫주기 시작되는 해가 맞물린 해이다.3월에서 4월 사이가 닛산월 1일이 시작된다.
69이레는 정확하게 안식년 주기에 맞추어서 이루어졌다. 또한 기원후 27년에 예수님이 기름부음을 받는 것도 정확하게 예언이 성취 되었다. 마지막 한 이레도 안식년 주기에 맞추어서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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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때가 되어서 이루어진 징조와 사건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주님의 오시는 시기를 알 수 밖에 없는 너무나 가까운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 그 날과 그시는 알 수가 없다. 또한 각나라마다 시차가 달라서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레의 절반 쯤에는 짐승의 우상을 보게 되고 해와 달과 별의 징조가 있고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여호와의 날, 주의 날, 공중재림,휴거가 있을 것이다.
예수를 배척했던 유대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는 때가 올 것이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야곱의 환난의 때에 스가랴 12장 10절의 민족적 회개가 있을 것이다. 마치 요셉이 7년 흉년의 시기에 형들이 용서를 구하는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바로 유대인들이 거의 2000년 동안 예수님을 배척하고 못박고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영접하게 될 것이다. 한 이레의 후반기 환난의 때, 즉 야곱의 환난의 때에 유대인들이 참감람나무 가지로써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서 이방인과도 하나가 되어 새사람이 될 것이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고 이스라엘의 완악한 마음이 녹아지고 회개하는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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