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로의 더 깊숙한 부분으로 내려가자, 수많은 미래예측체들이 보였다.
전혀 본 적 없는 형태의 정보...
글룸은 방황하며 허공에 손을 휘젓는다. 손에 닿는 정보들이 칼릭스의 미래 모습으로 변하자
글룸은 나지막이 머릿속으로 본인을 상상했다.
왜? 놀랐나? 실제로 남겨 놓은 기록이 있어서?
몇 십 년 전 지혜의 서재 속 숨겨진 통로에서 난 미래의 내가 찍어 놓은 영상을 발견했지.
그 영상 속 내가 하라는 대로 나는 움직였고, 끝내 내 예정된 운명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리빙 아카이브라는 개념은 정말 놀라워. 어떻게 그때 그 영상 그대로
정확히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던 거지? 사소한 부분은 달랐지만.
지금 이 영상을 보고 있는 너의 과거와 나의 과거도 조금 다를 지도 모르려나. 기분이 묘하군.
칼릭스는 처절한 극단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제정신이 아닌 거지.
리마의 모든 권한을 자신에게로 모이게 하고 완전히 사유화했다. 그리고는 정보의 흐름을 통제했지.
그에게 저항하던 윤서 측 인물들을 모조리 제거했어.
그리고 난, 미쳐버린 칼릭스의 비서가 됐다. 옛말로는 실세라고 하던가?
그는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서, 실질적으로는 내가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다.
칼릭스라는 이름 아래에서, 나는 다른 관료들과 함께 한국의 정보 체계를 주무르고 있다.
칼릭스의 정신은 메모리움을 향한 분노와 무한한 공허로 가득 차 버렸어. 소피라는 녀석도... 알겠지?
그 미래예측체 여자는 이미 다 소진되어 버렸다. 빈 데이터 껍데기만 남았지.
내가 미래를 바라보는 것에 그 여자를 무진장 썼으니.
지금 네가 바라보는 이 미래예측체가 말하는 대로, 미래는 이뤄질 거야.
이론적으로는 가만히 있어도, 아무것도 안 해도 이루어지지.
하지만, 조만간 칼릭스가 본인의 운명을, 미래를 거스르려 할 거다!
헛된 희망을 품고 자신이 활동하던 세계에서조차 은퇴하여 새 삶을 꾸미려 한다.
그걸 막기 위해서 나는 칼릭스를 좌절하게 하려 그의 친모를 살해했다.
네가 칼릭스 본거지의 포스터에서 찾은 주소 목록에서 그의 친모가 사는 곳을 파악할 수 있을 거야.
가장 믿음직한 부하에게 암살을 맡겨라.
그리고 친모가 살해된 걸 사진 찍어서 전송하라고 지시해.
부족하다 싶으면, 주거지도 불태워라.
그러면 칼릭스는 미쳐서 자신의 운명을 망가뜨렸다고 메모리움을 저주할걸?
삶이 시작됐을 때부터, 인간 모두 죽음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걸. 칼릭스는 모르는 거야.
그의 정신을 망가뜨려라. 그럼 이 미래가 널 찾아올 것이다.
나를 사라지게 하지 말아라.
스토리텔러: 이한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