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릭스의 머리에는 어릴 적의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과거의 일도 그저 뭉뚱그려진 감정으로, 색깔로, 하나의 장면으로 남아 있다.
요즘 벚꽃나무가 많이 안 보여.
호텔의 입구로 들어오는 거리에 흰 벚꽃이 수놓아 있었던 게 기억이 나네.
그 사람은 내게 저 벚꽃이 피면 요정이 그곳에서 태어난다고 했어.
벚꽃이 피면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그 어떤 근심 걱정도 사라졌었는데
이제는 어딘가 마음 한 쪽이 무너지는 것 같아.
벚꽃을 보면 당장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웃음을 터뜨려야만 할 것 같은데.
사랑하는 사람도 벚꽃도 이제는 내 곁에 없어.
저 리마의 척박한 틈에서 흐르는 벚꽃잎들
저 벚꽃 하나하나 전부 나의 어린 시절에서 온 꽃들인가?
부유한 가족이었지만 서민들이 많은 시내를 돌아다녔지.
어느 순간부터 일이 더 바빠지고 나니까
더 이상 가족끼리 그런 시내에 놀러 가지는 않았지만...
나들이라면 유일한 기억은 시내를 돌아다니며
맛있는 먹거리 하나씩 손에 쥐고 담소를 나누던 게 생각이 나네
항상 마지막에는 서점에 들렀어
거기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샀었어
들고 오는 길에는 무척 설렜고 신났는데
100쪽 정도 읽고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지
그게 그가 처음으로 사주신
교양 서적이었는데
지금은 달달 외울 정도로
지금은 다 닳았을 정도로
읽어버렸지는데 말야
소피. 한국 야구의 전설적인 투수, 정우주라고 들어는 봤는지
우리 아버지가 정말 애정하시던 선수였어. 지금은 리그 우승도 몇 번 해낸 감독인데.
어릴 때, 그 감독의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입히고
해가 질 때까지 캐치볼을 하면서 놀았어.
아버지의 제구는 최악이어서, 나는 정우주 감독 유니폼을 입고 유격수 행세를 해야 했지.
다시 노을을 보니까 슬프네.
하염없이 붉은 하늘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 같아.
저기, 지고 있는 해가 울고 있어
우리 아빠는
빅맥을 자주 사 주셨어.
잘 사는 집안이니까 비싼 것을 먹일 법도 한데,
항상 패스트푸드점에 나를 앉혀 놓고는 빅맥 세트를 시켜주셨지.
웃긴 건, 나도 그 빅맥을 정말 좋아했다는 거야.
이렇게 구렁텅이로 나자빠져질 걸 예측하셨던 건가.
너무 맛있었는데
스토리텔러: 황의준, 이한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