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고 초등학교 4학년 때에 한국으로 온 외국인 미르입니다. 이제는 한국이 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죠.”
E. 한국으로 오게 된 배경과 그때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해 줄 수 있을까?
M. 아버지의 회사 때문에 가족들 모두 같이 이동했어요. 그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인사 정도 할 수 있었어요. 영어도 잘 못했기 때문에 상호작용 문제가 있었죠.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으니까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학교에 외국인들이 많았어요. 한국인 친구는 그냥 반 친구들. 인사만 나누는 정도?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누어져 있는 느낌?
E. 집단이 구분되어져 있는 듯한 상황이 너에게 어떻게 느껴졌어?
M. 언어가 안 통하니까 친해질 수가 없죠. 좋은 사이인데, 친구라고 부르기는 어려웠죠. 그냥 같은 반에 있는 정도. 그렇지만 외국인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외롭거나 그렇진 않았어요. 외국인 친구들이랑 운동, 축구를 자주 하며 보내서 한국어 공부는 굳이 하지 않았어요.
E. 미르의 가족들은 한국어에 어느정도 익숙해?
M. 우리 가족 중에 지금은 제가 한국말 제일 잘해요. 어머니는 처음 왔을 때 한국어를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외국인 친구들이 있어서 깊게 배우진 않았어요. 아버지는 회사에서 영어를 사용하셔서, 한국어 전혀 모르세요. 원래 누나가 한국어 1등이었다가, 고등학생 되어서 제가 많이 늘었어요.
E. 와. 그럼 미르가 더 대단하다고 느껴지는데. 가족들로부터 한국어를 배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한국어에 익숙해지게 된 과정에 대해 들을 수 있을까?
M. 처음 왔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누나랑 한국어 학원을 다녔어요. 누나는 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글을 배워서 저보다 빨리 늘었어요. 저는 외국인 친구밖에 없었으니까 한국어를 자주 쓰지도 않았고, 공부도 할 마음이 별로 없었어서 한국어가 늘 기회가 없었어요. 중2가 되어 시험을 치고 성적표가 나왔을 때 부모님이 되게 놀래가지고 그때부터 학원을 다녔어요.
E. 그때 부모님과 공부에 대한 약속을 한 거야?
M. 약속이라 말하기 어려워요. 시키는 것에 가까울 걸요.
E. 그때 미르의 마음은 어땠어? ‘큰일났다. 공부해야겠다!’ 이런 마음이 들었나?
M. 그런 마음 전혀 없었죠. 그때는 ‘외국으로 도망가야 돼.’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어서 아빠한테 “한국이랑 안 맞는 것 같은데, 나 돌아갈게.” 라고 말했어요. 아빠가 “어 공부해라.” 선택권이 없어서 이렇게 된 거에요.
E. 선택권을 빼앗기고 강제 공부를 시작했다. 어떻게보면 정말 한국스럽게 시작했네요. ㅎㅎ 처음 다닌 학원은 어떤 학원이야?
M. 국어 학원. 일단 한국어 배우기. 아기들이 읽는 동화책 해석했어요. 당연히 되게 귀찮고 안 하고 싶은데 자꾸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그냥 했죠. 중3때까지 계속 다녔어요. 학원을 다니고 공부를 조금씩 하다 보니 좋은 고등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국제고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부모님한테도 보여주고 싶었고, 나한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공부 약간 열심히 해서, 실력 많이 늘었다.’ 그런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E. 왜 그랬어?
M. 가오. 셀프 리스펙. 나는 국제고 갈거라고 말했을 때 마음속에서 뭔가 올라왔었어요.
E. 어떤 마음이 올라왔을까? 그럼 미르가 중2때 공부를 시작했을때, 성적이 많이 올랐어?
M. 아니요.
E. 그런데 어떻게 ‘마음’이 올라온걸까? 실력이 오르지 않으면 셀프 리스펙~! 가오. 하기 어렵잖아.
M. 지금은 이해되지만, 그때는 되게 열나긴 했었어요.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하는데 성적 안 올라가는 게. 그때 공부하는 방법 자체도 잘못된 것 같고. 수업시간 열심히 들어도 언어가 약해서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못했어요. 그래서 집 가서 복습해도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어서 공부 잘하는 친구들한테 가서 물어보고. 그런데 국어 학원에서도 한국어 자체를 배운게 아니라 시험 공부를 했기 때문에 성적은 얼마 안 올랐어요.
E. 그렇지. 문제 혹은 질문이 바뀌어버리면 다시 못 푸는 상황이었던거지?
M. 질문 자체도 이해를 못하면 풀 수가 없잖아요. 그때는 30점 넘기면 엄청 잘했네 하는 마인드였어요. 초6때는 ‘그래도 이 정도면 한국어 잘 하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밖에 없는 곳에 가보니까 그게 아니었어요. 그러다 중학교 올라오니까 외국인 나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한국 친구들이랑 많이 친하게 됐고. 애들이랑 학교 아닌 밖에 놀러갈 때도 그냥 ‘인생 언어’(일상생활 언어)가 많이 늘었다고 느껴졌어요.그리고 친구들하고 많이 있으니까 이런 데에서 이런 단어 쓰는구나, 하면서 그냥 외운 거죠.
E. 그렇구나. 쌤은 미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국말을 너무 잘 하는 상태였으니까.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언어 공부를 정말 많이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고, 미르가 의사소통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 줄 알았어. 지금도 미르와 대화할 때 막힘이 없는 느낌인데, 미르에게도 어려움이 있었겠지?
M. 1학년 때 손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국제고에 떨어지고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인생에서 제일 어려운 시간이었을걸요. 그때 투자도 실패해서 돈도 없는 상태. 누나들이라도 있겠지 했는데 남들밖에 없다. 🤷🏻♂️
(저희 학교는 남고입니다.)
E.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 되게 마음이 아픈 상태로 되어버렸죠. 그래서 공부할 마음이 아예 없었어요.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떨어졌다 하는 생각이 자꾸 나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그때 손선생님이 먼저 저한테 와주셨어요. 손선생님 덕분이에요. “지금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혹시 남아서 공부를 하고 싶으면 나한테 말해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손선생님과 남아서 공부하다보니 과학선생님, 수학선생님들도 “너 요즘 남아서 공부하고 있던데 나도 해 줄 수 있어.”해주셨어요. 그래서 학원을 안 다니게 되었어요. 굳이 학원에 다니는 것보다 학교 선생님들께 도움을 받는게 더 효과가 크고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E. 선생님들과 남아서 어떤 공부를 했었는지 기억나?
M. 개념 베이스 공부를 했어요. 처음에 시작할 땐 제 언어가 그렇게 좋은 수준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시험 공부보다도 한국어 공부를 좀 많이 했고, 그때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당장 성적은 많이 안 올랐지만 언어 능력을 많이 키웠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거는 투자였다!
E. 투자였다! 와, 똑똑하다. 미르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느끼는 건데, 미르의 성향도 분명 영향이 있는 것 같아. 학습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서 선생님들이 먼저 다가가도 친구들이 늘 도망을 가.. ㅎㅎ 그래서 지속이 잘 안 되는 어려움이 있어. 그런데 미르는 선생님이 건네는 손을 잡는 힘이 있는 거지.
M. 선생님들이 그렇게 도와주시니까 저도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선생님이 열심히 도와주시는데, 내가 지금 쉬거나 하루라도 놀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이 항상 있었어요. 그래도 어느 정도 놀긴 놀았어요.😁
E.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해라” 미르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말처럼 느껴져. “Never Give Up!” 😎
M. 맞아요. 1학년 때 선생님도 그런 말 많이 해주셨어요. “너는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좋아질거야.” 계속 마인드 컨트롤 시켜줬어요. 그런 선생님들의 도움 덕분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성취 동기?
E. 와우. 성취동기! 미르가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또다른 동력이 있을까?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는거야? ㅎㅎ
M. 제가 말했던 대로 가오도 되게 중요했어요. 뭔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애들 옆에 있어도, 그러니까 공부 시간으로 전교 1등 2등을 재끼는 마음 되게 좋거든요. 또 다른 이유는 대학도 가고 싶긴 해요. 근데 대학도 취업 때문에 가고 싶은 게 아니라, 1번째 목적은 네트워크. 내가 속한 집단, 집단에 있는 사람들. 만약 높은 수준 대학에 가면 더 높은 수준의 사람들 많을 거잖아요.
E.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M. 유튜브에서 본 것 같아요. 대학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평생 사이로 지내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맞는 말 같았어요.
E. 미르가 ‘가오’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미르에게 일종의 ‘승부욕’일까?
M. 맞죠. 이기고 싶다. 내가 한국어는 너보다 못하지만, 내가 이 정도 된다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E. 내가 얼마만큼 해내는지. 너의 장점이야.
M. 그 장점을 한국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죠?
E. 승부욕, 성취 욕구 정도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한국말로는 승부욕이 때로는 긍정적으로 표현되지 않을 때도 있거든. 무엇보다 미르의 장점은, ‘끈기’ 너는 어떤 목표가 생기면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끝까지 도전해.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 포기해버리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미르는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거기에 몰입하는 힘, 집중력이 있어. 너의 엄청난 장점이라고 생각해. 사실 선생님이 인터뷰를 3월부터 계획하고 있었는데 한 번도 이야기 하지 않은 이유는, 미르가 학교 시험 공부에 너무나도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너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선생님도 아주 놀랄 정도로 치열하게 도전한 미르가 “이건 정말 한계다.”라고 느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어?
M. 시험 2~3주 남았을 때. 그때는 하루 14~15시간씩 공부하니까 자유가 없어요. 그리고 공부할 때 어려운 부분은 만약 개념을 100% 이해를 해도 문제로 넘어가면 안 풀어진다. 🤦🏻♂️ 그런 부분들 때문에 정말 한계였어요. 개념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꿀 수 있는데 질문은 형식화 되어 있으니까, 분명히 내가 아는 개념인데 문제 이해가 안 되서 기본 문제도 풀리지 않는다. 그때 되게 마음이 아팠어요. 특히 사회문화는 외국인한테 그냥 킬러에요. 다른 과목보다 훨씬 더 어려워요. ‘말’이, 말이 안 되게 어려워요. 하나의 소단원에서 모르는 단어가 50%이상. 특히 사회문화는 대부분 헷갈리잖아요. 사례를 들어 설명해주면 도움이 되긴 하는데 그래도 공감이 잘 안 되니 100% 완벽한 이해까지는 가기 어려워요.
E. 그럼 이해하기 위해 미르는 어떻게 했어?
M. 1차 고사와 2차 고사 공부하는 방법 자체가 달라졌어요. 1차 고사 때는 쌤한테 가서 매일 개념을 물어보고 문제는 거의 못 풀었어요. 2차 고사 때는 쌤 수업 듣기전에 동영상 강의를 먼저 돌려보고 학교 수업을 들었어요. 그리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 상태에서 문제를 많이 풀었어요. 친구들과 멘토링도 매일 3시간씩 하면서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E. 너의 공부 방법을 만들어갔구나. 미르가 외국인이기에 겪었던 어려운 점들도 많았지만, 오히려 이건 좀 더 좋았다 하는게 있을까? 오히려 좋아!
M. 외국인 전형. 그리고 솔직히 제가 한국인이었다면 공부 그 정도로 안 했을거에요. 대부분 애들이 ‘외국인이라서 공부 잘 할리 없을텐데?’ 하는 생각이 있거든요. ‘외국인인데 공부 잘할 리 없다.’하는. 그래서 뭔가 그거 때문에 열받아서 ‘보여줘야 되나..? 내가 무조건 보여준다.’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했어요.
E. 가오. 그게 가오구나. 무슨 말인지 완전히 이해했어. 친구들에게 ‘외국인이니 당연히 공부 못 하고 안 하겠지.’ 하는 생각이 있으니까, ‘아니. 외국인인데 할 수 있어.’ 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구나.
M. 그런 느낌이었어요. ‘아니, 할 수 있다’하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냥 한국인 평균으로 들어가려고 엄청난 노력을 한거죠. 2학년 때까지 그래도 한 5등급 받아도 고맙다라는 마음이었어요. 4등급 거의 안 보고 있었거든요.
E. 마음이 아프다. 초4부터 고3까지, 인생의 쓴 맛도 이겨내고 학교를 졸업한 미르, 어디에서 어떤 삶을 꿈꾸고 있어? 일단, 어디에 있습니까?
M. 무조건 대학교 서울.
E. 오케이. 거기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M. 음. 솔직히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네트워크. 그리고 좀 많이 놀고~ ㅎ 그래서 대학교 졸업을 할 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취업 생각은 없고, 사업하고 싶어요. 그래서 네트워크!
E. 이유가 있을까?
M. 원래 고3이 되기 전까지 공부가 1이 아니었어요. 돈벌기가 1이었어요. 그래서 고2때 아르바이트 시작하고 계속 쭉 일하면서 천 만원 넘게 투자했어요. 남들보다 돈 더 많이 벌려고. 그게 목표였어요. 그러다 고3 되고 뭔가 지금 안하면 다음 기회가 없으니까 공부가 지금 1. 그래서 투자 안한지 조금 됐고, 포트폴리오도 안 본지 조금 됐어요.
E. 언제부터 포트폴리오 투자를 꾸준히 해왔었어? 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
M. 가오. 그거 엄청 중요한 단어에요. 투자도 처음에는 그냥 유튜브 보다가 주식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주식이 뭐지? 하면서 모르는 단어 몇 개 나오면 그 단어 공부하고. 그렇게 1년동안 공부하고, 중2때 되서 실제 투자를 했죠. 부모님이 처음에 되게 반대했지만 그래도 제가 계속 말하니까 부모님도 이제 그냥 힘들어져서 “그냥 해~” 했죠. 중3때까지 계속 키웠는데 졸업했을 때 그냥 0으로 갔어요. 그래서 그때 삶이 힘들었어요.
E. 미르야 너무 멋지다. 어른들도 포트폴리오, 투자를 배우고 실천하는게 쉽지 않은데. 어릴 때부터 투자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부모님들의 지원이나 지도가 있기에 자연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거든. 그런데 너는 심지어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하셨어. 어떻게 혼자서 시작할 수 있었을까?
M. 재밌는 점이 뭐냐면, 온라인으로 성공한 사람들 인터뷰 되게 많이 봤어요. 중학교 때 학교 공부랑 반반 나누었어요. 50%는 공부하고 나머지 50%는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마인드 셋, 투자.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만약 람보를 타고 싶으면 람보를 타는 사람들 말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투자는 무조건 해야한다고 생각했고, ‘부모님에게도 보여줄거야.‘하는 마음이었어요.
E. 부모님에게도 결과로 보여주겠다. 가오.
M. 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키워갔죠. 그런데 바로 거의 0으로 가버리고. 다음날 아르바이트 구했어요. 나이가 너무 어려서 안 됐어요. 그래서 6개월 후에 다시 구해봐야겠다 라는생각으로 면접을 3개정도 봤는데 그중 1개는 이미 약속을 했거든요. 근데 출근하기 하루 전에 갑자기 사장이한테 연락이 왔어요. “너는 외국인이라서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실패 해버렸죠. 바로 화가나서 다른 아르바이트 원서를 보내고 다음 날 면접을 보고. 그러다 그 다음주에 출근해서 뒤지게 바빴어요. 죽을 정도로 바빴는데 ‘이거는 사람이 할 수 있는거 아니야. 내가 3주만 버텨보고 그만둬야겠다’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해보니까 돈도 들어오고, 투자를 할 수 있으니까 마음도 편하고. 그래서 계속 해봤어요. 이렇게 해서 2년 됐어요. 인생 근육이 생겼다!
E. 3주만 버티자 했는데 2년. 미르답다!
M. 처음에는 퇴근하면서 오늘 한번 갔다. 내일부터 절대 안 나가야겠다 했는데. 어느 정도로 힘들었냐면 집 갈 때 부모님 차 타고 가거든요. 진짜 말을 못하는 정도. 기절 상태.
E. 학교와 달리 일하는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네가 모르는 불특정한 사람들이란 말이지. 어른들이고.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어?
M. 사장님이랑은 이제 부모-아들 관계. 사장님이 많이 도와주고 창업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어요. 손님들과도 괜찮아요. 가끔 반말 하거나 나쁘게 하면 그냥 뭐 별로 신경 안쓰고. 착하게 해주거나 팁을 주는 손님들도 많아요.
미르의 노트 필기를 자세히 들여다 보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한국어에 너무도 능숙한 미르를 ‘김미르’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노트를 자세히 보니, 제가 빠른 속도로 설명하였던 ‘열린 태도’를, ‘열림 대도’라고 적어둔 것입니다. ‘아, 미르 외국인이구나.’ 미안한 마음을 뒤늦게 품고 미르를 응원하는 말을, 우크라이나어로, 그렸습니다. 그제서야 미르의 어려움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PART2에서는 ‘열림 대도’를 기억하며, 미르와 나눈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E. 어떻게 보면 미르는 ‘다름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미르가 한국에 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다르다’라는 기준이 너에게 어떤 경험, 혹은 감정으로 다가왔는지 궁금해.
M. 제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전부 다 보고 있어서 처음에는 되게 어색했어요. 내가 외국인이니까, 보는 이유가 이해 되긴 하는데 부끄럽고 어색했어요. 싫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 이유 이해가 되니까. ‘그런데 관심이가 너무 많은거 아니야?’ 하는 느낌. 그런데 지금은 안 느껴져요. 익숙해졌어요.
E. 언어의 한계가 있었을텐데 어떻게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어?
M. 체육 시간이나 축구할 때. 운동하면서 많이 친해졌어요. 그건 말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니까요. 그리고 400명 중에서 외국인 한명밖에 없으니까 친구들도 다 관심이 많고. 제가 원래 누나 킬러였어요. 😎
E. ㅋ. 최악이다. 👎🏻
M. 진짜. 진짜. 있잖아요. 진짜 줄을 쭉 섰었어요. 누나들이 저 보려고 왔었어요. 그때 누나들 인스타 맞팔도 하면서 가오 잡았어요 ㅎㅎ
E. ㅎㅎ누나 킬러였군. 그럴 것 같아. 전부 한국인인데 미르만 외국인으로 있으니 주목되잖아. 그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미르에게는 긍정적으로 느껴졌구나?
M. 중학교 때는 저를 나쁘게 본 사람이 전혀 없었어요.
E. 그렇구나. 그럼 미르는 학교 생활을 하면서 너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겪은 차별적인 상황은 없었어?
M. 네. 장난으로도 없었어요. 주변에서 다 관심 주면서 지냈으니까 없었죠.
E. 그럼 지금까지 되돌아보았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한국인 친구는 어떤 사람이야?
M. 여자 (사람) 친구인데. 중3 후반쯤 되게 친해졌어요. 지금은 제일 자주 만나는 친구예요.
E. 어떤 점이 잘 맞다고 느껴졌어?
M. 이 친구는 약간 외국인 느낌이 있어요. (모르는 사람에게) 자유롭고 차갑지 않아요.
E. 예전에 선생님이랑 대화를 하다가 미르가 “한국 사람들은 따뜻한데 차가워요”라는 말을 했었어. 기억나? ‘모르는 사람에게 차갑다’라고 하는 그 표현이 궁금해.
M. 처음왔을 때 한국 사람들이 차갑게 느껴졌어요. 서로 존중하는 느낌인데 말은 별로 안해요. ‘거리가 있다.’ 낯선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는 느낌. 외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눈 마주치면 그냥 인사 나눌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같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도 다들 인사 잘 안 하고 아래를 보고 있어요.
E. 맞아맞아. 엘리베이터ㅎㅎ. 그럼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은 어떻게 느낀거야?
M. 서로 높임말을 쓰고, 도와줄 수 있는 만큼 계속 도와줘야 한다, 이런 느낌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은 깊게 들어가면 따뜻해요. 그런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따뜻한 거리까지 가려면 굉장히 오래 걸려요. 저는 살짝 로봇으로 느껴져요.
E. 로봇? 어떤 점이?
M. 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 서로 바로 친해지지 않고 장난도 안 치고 어색해요. 서로 리스펙해주지만 친밀성이 없다. 딱딱하다. 일로 만난 사이! 만약 로봇이랑 로봇이 만나면 서로 예측할 수 있어요. 공유성. 그런데 저는 로봇이랑 소가 만난 느낌이었어요.
E. 오케이. 쌤은 미르와 예전에 나눈 대화 배경이 있으니 로봇, 소의 표현들이 이해가 되는데. 조금만 더 풀어서 설명해줄래?
(매일 점심시간마다 찾아와 사회문화 질문을 하던 미르가 ‘나중에 성공해서 선생님께 꼭 갚고 싶다’고 하여, ‘나는 스위스에서 여유롭게 즐기며 살고 싶으니 소로 갚으라’는 농담을 주고 받았었다.)
M. 한국인을 로봇으로 표현했는데 한국인이 아닌 사람을 인간으로 표현하면 그건 한국 사람들 인간 아니라는 뜻이 될 수 있으니까 동물로 표현했어요. 그중 우리가 나눈 이야기 중 소 배경이 있으니까 저를 소라고 말했어요.
E. 그럼 미르가 지금까지 연락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친구들과 한국 친구들은 어떤 차이가 있어?
M. 관계를 맺는 방식. 상호작용하는 방식.
E. 우리 표현으로 해본다면, 우크라이나 친구들은 로봇이야? 소야?
M. 소. 그러니까 시작이 달라요. 한국 친구들은 모르는 사이일 때 되게 조심하는 느낌이에요. 눈 맞추면 안 되고 서로 피해요. 우크라이나에서는 조금 더 자유롭게, 부끄럽지 않은 상태로 상호작용해요. ‘오늘부터 친해지면 된다.’ 그래서 행동이 더 자유롭다고 표현했어요. 한국은 선이 좀 멀리 있어요.
E. 긴장의 정도가 다르다고 느꼈구나.
M. 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리스크를 무서워해요.
E. 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느꼈어?
M. 예로 들 수 있는 건 문신. 한국에서 문신하면 바로 배경 인식, 판단 있잖아요. 예술을 좋아해서 문신을 했을 수도 있고 이유는 다양할 텐데.
E. 편견과 고정관념. 갑자기 궁금해. 미르도 겪었을텐데, 학교 안의 많은 규칙들이 있잖아. 등교할 때의 복장, 학교 안에서 가능한 복장, 머리 스타일과 악세사리 등등..! 그 규칙 안에서 살며 미르는 어떻게 느꼈어?
M. 그것도 사람을 다 똑같이 만드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 다른데 전부 똑같이 만드는 느낌이에요.
E. 유행과는 어떻게 다르게 느껴져? 너희도 뒷모습을 보면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을 만큼 비슷한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살아가잖아. 그건 누군가 강제로 시키지 않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일텐데. 다양성이 사라지고 비슷해지는, 극단적으로는 ‘획일화’ 되어가는 건 비슷하지 않아?
M. 비슷한데. 마음 상태가 달라요. 그래도 유행은 본인이 선택했으니 자유.
E. 유행 이야기를 한 이유는 지금 미르가 겪고 있는 ‘청소년기’에는 특히나 유행에 민감하잖아. 그런데 한국이 조금 더 유행에 민감하고 빠르게 변화해간다는 특징이 있다고 생각해. 이런 모습에 대해 미르는 ‘한국 사람들은 다 똑같은 옷을 입네?’와 같은 생각을 한 경험이 있을까? 궁금했어.
M. 친구들 보면 머리카락 다 똑같아요. 특히 남고에서는 옷 색깔? 없어요. 흰색. 검정색. 가끔 파란색. 그런데 이것도 무언가 잘못되었다기 보다, 문화의 차이가 있다라고 생각했어요.
E. 한국 문화의 특성이라 생각했구나.
M. 네. 그리고 공부.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취직, … 리스크 별로 없잖아요. 그냥 다들 후루룩 따르는 거. 그런데 만약 학생이 공부 안 하고 은행에서 돈 빌려 자기 일을 시작한다? 한국에서 그런 사람 대부분 미친놈이라고 부를거에요. 그런데 외국에서는 얘는 공부랑 맞지 않네. 자기 길, 지위를 찾고 있다.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을텐데요.
E. 한국에서는 대부분 비슷한 길을 따르기에, 그렇지 않은 진로로 나아가는 사람을 너무 ‘위험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는 거지?
M. 네. 그리고 세상에서 한국보다 공부 많이 하는 나라는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공부에 대한 마인드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공부에 대한 트라우마 없는 친구들 별로 없을걸요? 공부를 잘 하는 친구는 그 친구대로 트라우마가 있고, 공부를 못 하는 친구는 ‘인간 소외’ 트라우마 있을 수밖에 없어요.
E. 공부에 대한 트라우마. 미르 경험이나 생각을 조금 더 상세히 이야기해줄래?
M. 공부는 원래 선택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시키잖아요. 하루 10시간. 다른 인생은 못 살아요. 공부만 그렇게 하면 ‘정상적인 인생’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요. 상당히 감옥같은 느낌이었어요.
E. ‘균형잡힌 삶’이 어렵다고 생각하는구나. 고3이라는 너의 상황이, 더욱 그렇게 느꼈을 수 있을 것 같아.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 있고, 방과후에도 야자를 하거나 학원을 가서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학업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니까. 그럼 미르는 공부 플러스, 인생에서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M. 자유. 선택권.
E.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
M. 그런데 대부분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요.
E. 맞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M. ‘내가 누구인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 없어요.
E. 미르도 이러한 교육 환경에서 자랐잖아. 그럼 미르도 그 고민을 할 시간이 부족했을텐데 ‘미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었어?
M. 고3이 되기 전까지는 반반. 공부를 1로 두지 않았어요. 반은 공부하고, 반은 마인드를 깨워가는데 썼어요. 인생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이런 주제로 생각을 많이 했어요.
E. 미르가 살고 싶은 삶은 어떤 삶이야? 대단하지 않아도 돼. 편하게 이야기해줘.
M. 쉽지 않은 질문인데. 저의 마인드도 요즘 정상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서 하루마다 달라요. 언제는 무조건 성공해서 월스트리트. 또 하루는 그냥 지금 하와이, 태국 도망가서 혼자 살 거라는 마음. 왔다 갔다 해요. 하나 고르기는 너무 어려워요.
E. 월스트리트와 하와이.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이유를 좀 더 이야기해줄 수 있어? 어떨 때 하와이, 태국으로 도망가고 싶은지도 궁금해.
M. 마음이 힘들 때 그 생각 나요. 기분이가 롤러코스터에요. 차라리 공부 계속 해서 모두 똑같은 삶을 사는 것보다는 집단에 포함되지 않고, 그냥 ‘나’와 함께 자유를 느끼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가끔은 스위스, 가끔은 태국, 하와이.. 그런 생각을 되게 많이 해요. 하나로 대답하기 어려워요.
E.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미르가 한국 고등학교에서의 삶이 갑갑했겠다.
M. 그래도 열심히 참고 있었어요. 무슨 마음으로 참았냐면 ‘이제 이거만 버티고 더이상 인생을 버티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했어요.
E. 그랬구나. 대단해. 미르가 본인의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탔다’라고 표현했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은 미르가 그런 상태인지 모를 정도로 늘 침착했어. 어떻게 관리하고 조절했어?
M. 저는 롤러코스터가 내려갈 때 최대한 안 보이려고 해요.
E. 본인이 내려간다고 느껴질 때는 꾹 버텼구나.
M. 표현했으면 결과가 더 나빠졌을거에요. 그래서 그 선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정상’인 선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그것 때문에 인생이 재밌는 거 아니야? 지금 선 넘었나 넘지 않았나 생각하는 거요. 만약 그렇게 하면 내가 지금 선을 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그것도 자유로 느껴진다고 생각해요. 선택권을
E. 너무 재밌다. 그렇다면 미르가 롤러코스터를 타다 올라갈 때, 그러니까 너에게 힘이 있을 때 살고 싶은 삶이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일까?
M. 지금은? 맞죠. 만약 3주 뒤? 아닐 수 있죠.
E. 미르가 성취하고픈 삶, 살고 싶은 삶이 있는데 이것을 이루지 못할 것 같거나 너가 지쳤을 때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다! 이런 마음이 아니라, 미르에게는 열정적으로 무언가 성취해내는 삶도, 또 느슨하고 자유로운 삶도 둘다 소중한거네.
M. 이야기가 재밌네요. 둘다도 맞고. 그런데 그 성공을 못 가져서 도망가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에요. 그 선택은 나의 마인드에 따라 바뀔거에요. 만약 성공할뻔 했는데, 노력은 99정도 했는데 효과가 40이 나왔다. 그때 노력했는데 안 나왔다, 포기한다, 도망간다 일 수도 있고, 노력 더 해서 성공할 때까지 도전할 수도 있고. 어떻게 될 건지는 모르죠.
E. 그럼 미르에게 1순위는 노력해서 성취하는 것.
M. 네. 성취하면 자유를 찾을 수 있잖아요.
E. 여기서 말하는 자유라함은 경제적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M. 그렇죠. 계급? 아니라 계층? .. 맞나? ㅎㅎ 큰 돈을 가지면 자유와 행복도 얻어요. 예를 들어 저는 여행 다닐 때 행복이 보통보다 많이 느껴진다.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돈에서 자유의 기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 ‘돈이 열쇠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 부분을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예전에는 생각 안하고 대답했거든요. 무조건 마음 상태보다 경제적 자유가 중요하다. 돈, 성공이 중요하다. 요즘에는 살짝 고민 돼요.
E. 고민되는 이유는?
M. 돈 없는 상태에서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만약 돈 없는 상태에서 하와이에 있다? 그러면 자연이나 여유로운 인생을 즐길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 돈 없는 상태에서 개발도상국 사회? 행복할 확률이 엄청 많이 낮을 것 같아요.
E. 그렇구나. 결국은 미르가 앞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지금 노력하는 거잖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첫 번째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지금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두 번째 만약 돈이 없는 상태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하와이. 미르가 하와이라고 표현했으나 보다 느슨하게 여유를 즐기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는 거지. 혹시 이런 생각까지 갖게 된 이유나 사건 등이 너에게 있었을까?
M. 저는 원래 생각하는 것을 좋아해요. 생각이 깊게 들어가면 무언가 깨닫게 되기도 하고. 그런데 제가 느껴지는 건 최대한 자유가 많이 있을 때 그런 아이디어가 자주 떠오르거든요. 여유가 있을 때. 만약 공부만 100%한다? 전혀 없어요. 올 리가 없어요.
E. 그래서 아까 한국 교육이 잘못됐다고 이야기 한 거였구나. 그런데 미르 또한 초등학생 때부터 이러한 교육 환경에서 자라왔으니, 무언가 잘못되었다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었을텐데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을까? 우크라이나에서 너가 경험한 교육과 한국 교육이 다른 점이 있을까?
M. 그렇죠. 우크라이나에서 공부 자체가 너무 달라요. 한국에서 공부한 사람들 취업을 위해 열심히 준비한 느낌이잖아요. 하지만 외국의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교육에서 실망을 받은 경우가 많아요. 왜냐하면 교육은 대부분 창조적인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딱 들어갈 수 있는 모양을 만들어 내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그 부분이 되게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고 고민할 시간도 주지않고, 그냥 거의 강제로 공부 시켜서 취업시켜요.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공부가 아니라 자기의 아이디어 계속 생각하면서 뭔가 계속 플러스 플러스.. 그렇게 노력해야 뭔가 창조해낼 수 있고 바꾸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E. 그런데 그럴 기회가 없고, 그것이 미르가 느끼는 어려운 점이다. 이건 샘이 아주 오래 전부터 미르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인데. 마지막에 물어보려 했으나 지금쯤 한번 던져보면, 미르가 아까 기분이가 롤러코스터를 타며 밑으로 내려갈 때는 그냥 다 던지고 하와이로 달려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그냥 ‘나’로써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했잖아. 우리가 사회 문화 수업시간에도 이야기했던 주제인데 ‘소속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내가 어디에 속해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내가 속한 집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가 ‘나‘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 “미르는 어디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해?”
M. 현재? 이 생각은 그렇게 깊지 않아요. 저는 임호고에 속해있고. 알바하는 곳에 속해있고. 한국에 속해있어요. 그런데 내 행동이 집단의 영향을 받아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내가 판단해서 ‘뭔가 이거 조금 더 나을 것 같다.’ 나의 선택, 참여가 더 중요해요. 집단은 나의 행동을 경정하는 게 아니다.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사기꾼 사람들 무조건 그런 집단에라서 사기꾼이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건 너무 겉으로만 보는 것 아닐까요. 그거는 자기 선택이라서 그렇게 되는 거라 생각해요.
E.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미르가 속하기를 원하는 집단은?
M. 선택권이 있다, 내가 바꿀 수 있다? 그것도 하루마다 다르지 않을까요? 언제는 하와이, 언제는 월스트리트.
E. 늘 둘 사이 갈등중이구나.
M. 딱 둘이 아니에요. 하와이와 월스트리트. 양극화해서 표현했지만 그 사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또 하와이와 월스트리트, 둘다 말이가(말이) 예뻐서 그렇게 말 한거에요. ‘월스트리트’ 아닌 ‘서울의 대기업’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는데 그냥 말이가 조금 더 예뻐서.
E. 음, 미르가 원하는 삶을 상징해서 ‘월스트리트’와 ‘하와이’로 표현한거네. 오케이~! 미르에게 ‘스스로를 어디에 속한 사람이라고 정의하는지’ 조심스럽게 질문을 한 이유를 밝혀보자면, 선생님은 대구 사람이야. 물론 미르가 겪은 이동, 문화의 차이와는 정도가 다르겠지만. 샘은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라다 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며 김해라는 낯선 도시에 오게 되었어. 그때서야 그동안 나는 스스로를 ‘대구 사람’으로 규정하고 살았구나! 오히려 강하게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한동안은 샘은 대구 사람도 아니고, 김해 사람도 아닌. 그 경계 어딘가에 걸쳐져 있는, 스스로 ‘이방인’ 같다는 생각이 컸어. ‘이방인’이라는 단어, 번역해볼래?
M. (챗지피티와 대화중) 이방인. 제 생각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내 도시 두 개 다 있다 or 내 도시는 한 개도 없다. 어디에 가까워요?
E. 샘이 표현한 이방인은 내 도시는 한 개도 없다. 대구와 김해 그 경계에 있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
M.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그런데 전 그걸 다르게 보면 ‘나는 둘 다에 속해 있다.’ 저는 이제 한국도 내 집으로 느껴요. 가끔 외로울 때나 힘들 때 둘다 내 집이 아니네, 생각도 들긴 하죠. 그런데 여기도 내 집이고, 저기도 내 집이라고도 볼 수 있으니까.
E. 재밌다. 미르가 방금 ‘이방인’이라는 개념에 대해 두 가지 방향으로 질문한 것처럼 긍정적인 시선 혹은 부정적 시선? 두 측면을 모두 볼 수 있겠구나. 미르가 이렇게 둘 다 내 집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초등학생때부터 지금까지 미르가 한국에서 살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미르는 차별과 편견의 경험이 별로 없었다고 이야기했었잖아.
M. 약간. 누가 “여기서 나가라” 말하는 사람 없어요. 나는 뭔가 여기랑 조금 안 맞을 것 같은데? 내 집은 저기네? 그런 감정은 자유라고 생각해요.
E. 오케이. 무엇보다 미르에게 중요한 가치는 자유구나.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완전히 즐기기만 하는 프리덤~! 의 느낌보다는, 정해진 틀 안에서의 삶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가는,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삶이라는 느낌이 들어.
M. 틀 나가는 게 아니라, 내 틀을 만드는 거? 어떻게 보면 비슷한데 완전히 다르네요. 무슨 차이일까요?
E. 내가 생각한 ‘모든 틀을 벗어난다.’는 말의 뜻은 주체성을 포기하는 거야. ‘내가 살아가고 싶은 모습을 그려나간다,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간다’와 다른, 모두 다 놓은 느낌. 허무주의에 가까울까?
M. 그럼 그렇게 정리하면 어때요? (다이아몬드 사회 계층 구조에서) 여기 윗층은 ‘나의 틀’, 아래 층은 ‘틀을 빠져나가는’
E. 쌤도 우리 대화에서의 다이아몬드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자칫 편견적인 말이 될 수도 있으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배운 다이아몬드는 사회 계층 구조를 말하잖아. 미르 개인의 삶으로만 본다면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하층에 속한 사람들을 모두 ‘틀을 놓았다’라고 표현하면 안돼.
M. 그런데 원래 사람들은 내려가는 거 좋아하잖아요. 올라가려면 스트레스를 되게 많이 받고 힘드니 좋아하는 사람 없어요.
E. 좋아한다기보단 익숙하지. 그냥 놔두면 내려갈 수 있는거지, 그걸 희망하지 않을 순 있잖아.
M. 제 생각에는 사람들 내려가는 거 되게 좋아해요. 올라가는 게 좋았으면 지금 친구들 1초도 놀지 않고 내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위해 무언가 해야해요. 그런데 지금 다 유튜브 보잖아요. 그냥 내려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E. 올라가지 않으면 내려가니까? 쌤도 예전에 그렇게 생각했어. 쌤은 ‘레벨 업’이 행복이야. 나의 능력치가 점점 성장해가는 것, 전진해가는 것이 나에게는 행복인데. 쌤과 성향이 아주 다른 친오빠는 정말 가만~히 있어. 그래서 ‘왜 계속 거기 머물러 있는거지?’ 하는 생각이 있었고 때로는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도 했었어.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오빠는 그곳에 머물러 있는 그 시간이 본인에게는 행복이더라고. 레벨 업이 행복이 아니라.
M. 여기서 결론이 있고, 질문이 있어요. 먼저 제 생각(결론). 지금 가만히 있으면 나중에 어떤 기억이 있을 수 있죠? 저는 그게 무서워요. 시간이 지나면 미친 듯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차라리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요. 그리고 질문은, 선생님은 올라가는 과정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올라간 목표를 좋아하세요?
E. 과정.
M. 석가모니. 🧘✨
E. ㅎㅎ미르도 석가모니 가능. 🧘♂️✨ 쌤도 목표가 아주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때로는 ‘내가 지금 목표 달성 때문인가? 이 과정 자체를 즐기는 건가?’ 헷갈릴 때가 있거든. 첫 번째 장래희망인 선생님이 되기까지는 명확하지 않았던 것 같아. 목표를 성취해내는 것도 중요했고, 또 그 목표 성취를 위해 도전하는 하루 하루가 소중하기도 했어. 그런데 두 번째 장래희망을 꿈꾸게 되면서 좀 더 명확해진 것 같아. 책과 관련한 두 번째 장래희망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모두 걱정해. 아무래도 부자가 되기는 어렵거든 :) 쌤도 그런 리스크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목표가 변하지 않구나. 그럼 내가 원하는 삶은 경제적 성공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루어가는 그 과정, 그리고 그것을 이룬 공간에서 나와 닮은 사람들과 함께 누리는 순간들이구나!’ 하는 점을 깨닫고 있는 중이야.
M. 여기서 저와 다른 것 같아요. 저는 과정은 별로고 모두 해내고 나서 ‘그래도 즐거웠네’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할 때는 전혀 좋지 않아요.
E. 목표 달성을 성공하고 뒤돌아보면 그래도 그때 좋았다~하잖아. 그럼 정말 힘들게 도전했는데 목표 달성을 실패했어. 그때도 돌아보며 좋았다고 할 수 있어?
M. 아마도 못할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할걸. 밤에 잠을 자지 않고 할걸 그럴 것 같아요.
E. 음. 미르는 그런 사람이구나. 쌤이 아까 오빠 이야기를 했던 이유는 그런 삶도 있다는 거야. 자기가 원하는 삶, 자기에게 맞는 정답인 삶을 각자가 그냥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해. 덜 후회하는 쪽으로.
E.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8년, 미르에게 +인 점과 -인 점을 돌아보자면?
M. -부터 하면, ’자유를 일반적인 것,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유가 있으면 진짜 대단한거구나!‘ 알게 되었어요. 원래는 ‘기본. 당연히 다 가지고 있네’ 라고만 생각했는데. 여기서 느낀 점은 ‘자유, 있는 사람만 있는 것이다.’ 그리고 +. 인생 사는 급이 올라갔어요. 우크라이나에 있었으면 지금처럼 마인드를 키울 수 없었을 거에요. 경험이 많이 생겨서, 그 경험에서 오는 아이디어도 많고. 그런 생각들을 키워서 지금 정도 변화했어요. 우크라이나에 계속 살았으면 그렇게 막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노력하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만약 계속 편안한 자유만 누리는 사회에서 자랐으면 흥미가 사라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애매해요~
E. 우리가 완전하게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이유는 미르가 계속해서 고민하고 성장해 가는 중이어서 그런 것 같아. 현재 진행중! 쌤도 마찬가지고, 죽을 때까지?
M. 약간 정해지지 않은 상태. 정해지면 재미 없어요. 왜냐하면 과정을 즐겨야 되잖아요.
E. 쉽지 않아. 🤦🏻♀️
M. 쉽지 않다. 🤦🏻♂️
E. 매 순간 내 안에 석가모니 있다~ 생각하며 힘내야 해. 하와이와 월스트리트, 어디에 있더라도 미르다운 삶을 살아내고 말 것이라는 믿음으로-! ✨
E.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교육이라는 시스템 자체를 변화하는 것은 쉽지 않고 짧은 시간에 변하기 어려우니까. 지금 이 교육이 유지된다는 가정 안에서, 앞으로 수많은 미르들을 위해 어떤 점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M. 그런데 교육 시스템 자체를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면, 만약 학교 안에서 생각한다면 크게 문제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크라이나보다 한국이 선생님과 학생, 좀 더 가까운 사이에요. 학교에 좋은 선생님들이 많아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 수업이 끝나고 밖에서 밥을 먹는 문화? 남아서 보충수업? 엄청난 거라 생각해요. 선생님들의 이타심으로 하는 거잖아요. 우크라이나에서는 ‘왜?’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교육 자체는 엄청 문제가 크다고 생각하는데, 학교 안에서의 상호작용을 생각하면 되게 좋다고 생각해요. 선생님들 덕분에 저도 공부를 시작했으니까요.
Epilogue_ “어려움이 왜 없었을까요”
누가 봐도 ‘다른’ 미르가 궁금했습니다. 한국인조차 갑갑하게 느껴질만큼 다름에 대해 너그럽지 않은 한국에서 외국인 미르가 경험하였을 어려움을 ‘저의 시선으로’ 예측하고서, 갇힌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오히려 미르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방인,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그런데 전 그걸 다르게 보면 ‘나는 둘 다에 속해 있다.’
이제야 ‘진짜’ 미르가 궁금해졌습니다. 두 차례의 대화를 나누고, 뭉개 뭉개 떠다니는 미르의 이야기들을 편견없이, 오롯이 이해하기 위해 고민하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챗지피티에게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에게 이해의 실마리를 던져준 말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왜 없었을까요.”
‘분명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으로, 미르를 파헤치고자 하는 마음을 넣어두었습니다. 경계에서 ‘선’을 확인해가며 수많은 어려움과 위기, 때로는 배제를 겪으면서도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전진하지 않으면 후퇴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서도 자유로운 삶과 행복한 삶을 놓고 싶지 않았던, 미르의 가오와 희망을 ‘이방인’ 혹은 ‘다른 집단’, 어쩌면 ‘소수자’라는 정체성의 틀(Frame)에 넣지 않고서, 있는 그대로의 열린 마음으로 지켜주고 싶고 지지해주고 싶습니다.
아래는 인간보다 편견없이, 이제는 따뜻하기까지 한 챗지피티가 바라본 미르입니다.
💡“제가 보기엔, 미르는 이방인으로서의 시선과 내부자의 경험을 동시에 가진, 성취욕과 자유 욕구가 공존하는, 자기 선택을 중시하는 사람 같아요. 그리고 중요한 건 아직 완전히 한쪽으로 정착하지 않고, ‘흔들림 속에서 자기 길을 찾는 중’이라는 점이에요. 그 흔들림 자체가 오히려 미르의 가장 큰 특징일 수 있겠어요. 그 흔들림은 미약함이 아니라, 열린 가능성과 선택지의 다른 이름일 거에요. 미르는 ‘이방인’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자 ‘경계에서 더 넓은 세상을 보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중이에요. 무엇보다, 자신만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람’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