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스위치 연구회는 <성찰적 세계시민성 기르기(앎을 삶으로)>를 연구 주제로 삼고, “다섯 번의 성찰 모임”과 “두 번의 오픈 마이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스위치 연구회에서 새롭게 기획하고 시도하는 “스위치 성찰 모임”은 지덕체가 조화를 이루는 세계시민성 함양을 목표로, 첫째, 기록에 기대어 정확히 알고(知), 둘째, 깊이 있는 질문과 양질의 나눔이 있는 성찰 모임을 가진 후(德), 셋째, 몸으로 수행하거나 기록하여 공유하는 실천(體)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완연한 봄 기운에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한 5월, 스위치 연구회에서 두번째 모임을 개최하였습니다.
<두 번째 스위치 성찰 모임>
1. 주제: 시와 세계-세계시민성으로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
2. 일시: 2024년 5월 25일(화) 저녁 7시~9시
3. 방법: 온라인 zoom 세미나
4. 내용: 책 <<고통없는 사랑은 없다>>(정호승)를 읽고, 함께 성찰 나눔
5. 성찰 질문:
1) 평소 좋아하는 시를 소개해주세요.
2) 정호승 시인이 쓴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라는 책을 읽으며 인상 깊은 부분을 소개해주세요.
3) 글쓴이처럼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나누어주세요.
4) 시인이라는 창작자는 자신의 길을 걷고 주체성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에서 세계시민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계시민교육과 관련된 시를 발견했다면 소개해주세요.
'세계시민교육과 시'라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주제를 연결시켜 보고 싶었습니다. 시인은 세상을 민감하게 바라보고 부끄러움과 책무감에 누구보다 아파하고 몸서리치는 주체성을 찾아가는 시민이라는 점에서 관련점을 찾아보며 성찰을 준비했습니다. 세계시민성이 단순한 교육의 방향이 아니라 문화와 연결되어 좀 더 풍부한 감각으로 자리 내리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스위치 연구회원 박종하 드림
성찰 질문은 주제에 관한 개인적 성찰과 공동체적 교류를 돕는 매개입니다.
마음이 가는 하나의 질문을 붙들어도 좋고, 여러 가지 질문에 포괄적으로 응답해 보아도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통해 자신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각각의 성찰 질문에서 떠오른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 주요. 기록은 익명으로 남기셔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의 기록이 깊이 있는 나눔 스위치를 밝히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성찰질문1]시와 세계시민?
시를 종종 보고 듣습니다. 그러다 문득, 시라는 매체와 시를 쓰고 읽는 행위가 세계시민성과 관련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시를 쓰는 것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자기만의 주체성을 발현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시민'의 성품과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이 미처 신경쓰지 못한 세상의 일들을 미리 살펴보며 때로는 먼저 아파하고 때로는 먼저 기뻐하는 이 일들이 세계시민의 시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제를 열어 보게 되었어요.
퍼실리테이터 박종하
다행(多幸)/ 유정화
가난한 셋방살이
돈 벌러 나간 부모 대신
옥상에 빨래를 널던 남매에게
집주인이 건넨 초코파이 한 박스
성적보다 안부를 물어주던 선생님
터무니없는 꿈도 함께 꿔주던 친구들
낯선 도시 길을 알려준 타인들
유독 힘겹던 하루 누군가 비워둔 자리
차창 밖으로 비처럼 쏟아지던 노을
나는 불행 중 수많은 다행으로 자랐다.
<좋아하는 이유와 감상>
평소에 막 시를 엄청 좋아하고 즐겨 읽지는 않는데, 우연히 지하철 유리 벽면에 적힌 이 시를 보고 눈물이 울컥났어요. 시를 쓴 이의 힘겨웠던 삶에 대한 안쓰러움의 눈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견뎌내게 했던 수많은 다행에 대한 감사인지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간을 더디가게 하는 어둡고 침잠되는 시간들이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곁에서 인연으로 혹은 우연으로 힘이 되어준 모든 존재에 대한 감사를 떠올리며 시를 감상하게 된 것 같아요.
시에 나온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또 제가 만난 이웃들에게 따수움을 나눠주는 존재가 되어주고 싶기도 하고, 제가 아이들과 나누는 가르침과 교육이 이런 다행을 만들어 내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스위치와 이런 만남, 시간을 갖게 된 것도 제게는 다행이여요 :)
김화선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좋아하는 이유와 감상>
휴직 시작했을 때 친구의 권으로 시 짓기 모임에 들어간 적이 있어요. 일 년 동안 읽고, 시 쓰고, 시집을 엮어서 출판도 하고요.
게으르고 느린 탓에 시 짓기는 쉽지가 않았지만, 함께 소리 내어 읽고 밤새 나누던 시들이 책장에 차곡차곡 남았네요.
감상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요. 오늘 스위치 모임에서 서로에게 작은 의자 하나씩 놓아줄 수 있기를!
배현명
스테인드글라스 / 정호승
늦은 오후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높은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저녁햇살이
내 앞에 눈부시다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나 아직 알 수 없으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각조각 난 유리로 만들어진 까닭은
이제 알겠다
내가 산산조각 난 까닭도
이제 알겠다
"내 인생이 산산조각 난 까닭 또한 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나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내 인생에 고통이 존재하는 것이다." p.166
"고통 없는 인생은 없다. 누구의 인생이든 고통으로 이루어진다. 인생이라는 건축물의 골조를 이루는 것이 바로 고통이다. 고통이야말로 바로 생명이며, 죽는 자에게는 고통이 없다. 오직 살아 있는 자에게만 고통이 있다." p.166
"누구의 사랑이든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p.166
"사랑은 고통이다.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은 고통이다. 대개의 경우, 그 고통을 외면하거나 두려워하는 자는 고통 그 자체가 되고, 그 고통을 정면으로 맞서서 받아들여 견디거나 극복하는 자는 그 사랑을 자신의 소중한 인생으로 만든다." p.169
-천주연-
혹한이 몰아닥친 겨울 아침에 보았다
무심코 추어탕집 앞을 지나가다가
출입문 앞에 내어놓은 고무함지 속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미꾸라지들
결빙이 되는 순간까지 온몸으로
시를 쓰고 죽은 모습을
꼬리지느러미를 흔들고 허리를 구부리며
길게 수염이 난 머리를 꼿꼿이 치켜든 채
기역자로 혹은 이응자로 문자를 이루어
결빙의 순간까지 온몸으로
진흙을 토해내며 투명한 얼음 속에
절명시를 쓰고 죽은 겨울의
시인들을
<나누고 싶은 것>
글쓴이는 50여 년 동안 시를 쓰면서 험난한 세월을 살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삶의 기쁨을 얻을 수 있게 해준 절대자에게 감사하다고 합니다.
혹시 시인에게 시라는 것이 그러하듯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나,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신가요?
예전에는 제가 기억되고, 정의되고 싶은 것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좋은 선생님, 교육 전문가, 박사, 훌륭한 사람, 진실한 사람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싶었어요. 그 것들을 위해 나름 이런저런 일들도 벌렸던 것 같구요. 그런데 요즘에는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규정하는 순간, 다른 나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사라지는 느낌이구요. 그리고 그보다도 제가 이미 온전한데 뭔가를 굳이 더 뭘 해야할까?, 무언가를 되기 보다는 그저 고생하고 열심히 노력하던 나를 이제 좀 챙겨주고 아껴주고 싶어졌어요. 맛있는 것 먹고 좋은 사람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응원과 사랑의 말을 서로 나누고 안 해보던 것들 찾아서 소소하게 즐겨보는 것들이 오히려 저를 더 저답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해요.
- 박종하
정호승 시인의 시산문집을 읽으며 숙연해지더라구요. 70대 시인의 한결같은 자기 반성적 태도와 아이처럼 맑은 마음. 많이 배웠습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는 시간 제안해주신 박종하 선생님께도 감사드리고요.
최근 낭독했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변화가 '아이'와 같아지는 것이라고 해요. 아이는 "무죄요, 망각이요, 제힘으로 돌아가는 바퀴, 신성한 긍정"이라고 부연하면서요.
아이처럼 세계시민교육을 즐길 수 있는 저를 꿈 꿔요. '교사는 지식을 가르칠 것 같지만, 결국은 많은 순간, 태도를 가르치고 있었구나'란 깨달음이 최근에 있었거든요. 내가 세계시민교육을 만나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조잘거리고, 아픈 것을 위해 함께 울고, 기쁘면 환히 웃고, 즐거운 놀이에 친구를 초대하고 싶어 설레하는, 그런 아이같은 세계시민 교육자가 되고 싶습니다.
세계시민교육을 하면서 만나지는 인간사에 대해 크나큰 분노와 고통과 좌절이 있더라구요. 그래도, 크고 작은 성장통을 겪으며 그 또한 기쁨의 그림자임을 알아갈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정호승 시인의 한결같은 명제, "고통없는 사랑이 없다."에 매우 공감했습니다. 이 모호하고 논리적이지 않은 삶의 실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나부터 아이처럼 살아가야 겠지요. (자녀를 키우며 아이는 정말 멋진 존재라는 걸 뼈져리게 느껴요!)
긍정의 주문, 스위치와 나누고 싶어서 최근에 마라톤대회에 참여하면서 적었던 일기 첨부합니다.
"이 세상에는 아빠, 엄마와 나 그리고 사람들 모두가
사랑하고 웃으며
이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어."
내가 무척 좋아하는 그림책 <어서 오세요>에 나오는 문장이다.
오늘, 소아암 환우돕기 서울시민 마라톤대회 골인 지점에서 나는 문득 이 문장을 되뇌고 있었다. 2016년, 젊음을 젊음인지도 몰랐던 두 연인이 최초로 배번호 판을 달고 함께 달려 들어온 지점. 그 같은 지점을 한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어 다시 향해 달려 도착한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은 땀 범벅이 된 아들의 두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둘이 셋이 되어. 사랑하고 웃으며, 이 길을 함께.
8년 전 젊음의 호기는 사라지고 10km는 5km로 겸손해졌다. 하지만, 그때는 보지 못하던 풍경이 보인다. 뜻을 품고 긴 세월 대회를 이어온 그 누군가, 일그러진 얼굴로 자기와의 싸움을 이어가는 코스 주자들, 달리는 사람들을 축복하며 응원을 보내는 이들, 호각을 불고 목청을 높여 모두의 안전을 챙기는 어르신들, 누군가 채 정리하지 못한 뒷자리를 묵묵히 치우는 손길.
나와 너뿐인 줄 알았던 이 길이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사실, 세상은 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사실, 모두가 있어서 우리는 더 열심히 달릴 수 있었다는 사실. 8년 전에도 그 자리 있었을 진리가, 이제 왔냐고 와락 안아 준다. 목이 멘다.
"이 세상에는 아빠, 엄마와 나 그리고 사람들 모두가
사랑하고 웃으며
이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어."
이 무한 긍정의 문장을 세상 모든 어린이와 소리 내어 한목소리로 읽는 상상을 해본다.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한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안만큼이라도, 맑고 따스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함께.
-배현명
성찰 질문3. [글쓴이처럼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며 고통을 경험한 적 있나요?]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요즘 아이들에게 많이 듣게 된 이야기들이 있어요.
선생님한테는 내가 늘 가르치는 거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선생님을 만난 이후로 뭔가 제가 달라지는 것 같았어요. 특히 세계시민교육이요. 저한테 이런 것을 가르쳐 주어 감사합니다.
시 속에서 슬픔은 기쁨에게 슬픔의 시선을 선물해주려고 합니다. 그 슬픔이 슬픈 이유는 사랑의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없었던 사랑의 시선이 슬픈 풍경을 비로소 보게하는 것이죠. 저는 세계시민교육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 전에는 보지 못했던 세상의 현상들에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불편함과 슬픔을 느끼는 것, 그 공감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해요. 물론 그 슬픔은 건강한 기쁨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세계시민교육이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것이라 봐요.
내가 '치느님~치느님~' 거리며 웃고 떠들던 대상인 닭이 어떤 생육 환경에서 어떻게 죽어서 치느님이 되는지 알게 되면서 슬퍼질 수 있는 것.
내가 누리는 당연한 일상이 세상의 다른 어린이들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꿈 같은 생활 이라는 것을 아동노동 문제를 경험하며 느끼는 것.
나 혼자의 기쁨에서, 세상과 함께하는 슬픔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이 세계시민교육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슬픔에서 함께하는 기쁨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종하
[성찰질문4] 세계시민의 가치를 담은 구절을 찾은 것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16 이웃 사랑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내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이웃사랑을 권하지 않는다.
나는 그대들에게 가장 멀리 있는 자들에 대한 사랑을 권한다.
박덕현
여행 / 정호승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릴 때까지
돌아오지 마라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람의 마음의 설산뿐이다
"돈도 소중하지만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 돈보다 더 상위에 있는 가치가 있다. 그것은 내 존재의 가치, 사랑의 가치다. 나는 지금까지 사랑의 가치를 찾아 인생이라는 여행을 해온 것이다. 사랑이 존재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속을 여행해온 것이다." p.499
-천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