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세계 사이를 사는 한 청년과 나눈 대화
1. 여행에서 시작된 작은 질문
여름, 여행사 세미패키지 여행에서 나는 한 청년을 만났다. 그는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가족과 함께 해외로 이주해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아온, 말투도 표정도 자연스레 ‘두 세계’를 넘나드는 사람이었다. 여행지에서 처음 봤을 때 그는 유창한 한국어와 편안한 친화력으로 모두에게 금방 친해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오래도록 감추고 지나왔을지도 모르는 어떤 층위를 보고 싶었다. ‘두 문화 사이에서 자란 사람은 어떤 세계를 살고 있을까?’, ‘그의 경계는 어디쯤일까?’라는 질문이 마음 한편에 오래 남았다. 그 궁금함이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줌을 켜게 만들었고 인터뷰로 이어졌다.
그는 유년기의 두 장면을 선명하게 꺼내놓았다.
새로운 나라의 첫 등교날, 울음을 참기 위해 스스로에게 “울면 안 된다”를 계속 되뇌던 어린 시절의 자신. 그리고 화장실에서 휴지를 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해 서럽게 울었던 기억.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완전히 혼자가 된 듯한 감정을 처음 맛보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말미엔 “오히려 어린 나이 덕분에 금방 적응했다”고 되었다. 반년에서 1년 사이에 언어와 친구, 학교 생활은 놀라울 정도로 익숙해졌다.
이 모순적인 두 감정—급격한 낯섦과 빠른 적응—은 이후 그의 삶에서 반복되는 ‘경계의 정서’를 예고하는 듯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더 이상 경계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그 나라에서 생활하는 한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집 안에서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지만, 일상의 대부분은 현지의 친구들과 시간이 흘렀다. 누구도 그의 정체성에 대해 묻지 않았고, 그 자신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질문이 사라졌다고 해서 경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나중에서야 그 시기를 돌이켜보며 “정체성의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이지, 없었던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계는 잠시 보이지 않을 뿐, 어딘가에 결처럼 쌓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그는 ‘하고 싶은 것’보다 ‘현실적으로 안정적인 것’을 먼저 고려했다.
경제적 여건과 빠른 자립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 선택은 실제로 그에게 좋은 직업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말했다.
“이 일을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아요.”
보상과 안정은 분명하지만, 마음 깊은 곳의 욕구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다른 삶을 꿈꾸는 마음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고, 그는 그 솔직한 감정을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가 선택했던 여러 길들이 대부분 ‘스스로 찾은 길’이었다는 점이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한국의 군 복무를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그 안에서도 더 낯설고 어려운 파견 근무에까지 도전했다.
그 선택의 배경을 물었을 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다양한 삶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책이나 이야기로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부딪히고 몸으로 배워야만 알 수 있는 세계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선택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를 더 한국에 가까이 데려다주었지만, 내면에서는 오히려 더 선명한 질문을 남겼다.
‘나는 어느 곳에서 완전히 속한 사람인가?’
그는 여행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어느 긴 순간, 자신이 그 무리에 완전히 속하지 않는 듯한 미묘한 거리를 느끼곤 한다고 했다.
상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한국에서 온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조금 다르게 보이는구나”라는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다.
현지 친구들과 있을 때도 비슷했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아왔음에도, 그들은 그를 완전히 ‘현지인’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 감정을 “조용히 떠 있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이중 어딘가에 서 있다는 감정은 때로는 외롭지만, 또 한편으로는 두 문화를 모두 이해하고 ‘중간지대’를 살아낼 수 있다는 독특한 자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이 양가적 감정을 “양날의 검”이라고 말했다.
오랜 대화를 마무리할 즈음, 그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한국인이다, 그 나라 사람이다처럼 나를 한쪽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나 자신’으로 살고 싶어요.”
그의 말은 어느 한 정체성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동시에 어느 한 정체성에도 묶이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그는 언젠가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더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나의 경계’는 사실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그 말 속에 담겨 있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단순히 한 사람의 생애를 듣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의 삶에서 발견된 ‘경계에 선 감정’은 국적이나 문화의 문제를 훌쩍 넘어,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삶의 구조와 닮아 있었다.
우리는 모두 여러 공동체—가족, 학교, 직장, 지역사회—속에서 때로는 소속감을, 때로는 미세한 이질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어디에 속해 있다고 믿으면서도, 어떤 순간에는 조금 비켜 나 있는 듯한 느낌.
그 감각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와의 인터뷰가 끝났을 때 나는 확신했다.
‘경계 속으로 여행’은 한 청년의 이야기를 넘어,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초상에 가깝다는 것을.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경계는, 사실 ‘나다움’을 찾아가는 가장 솔직한 길 위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