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물은 pc 에 최적화된 글입니다. 폰으로 보고 계신 분들은 가로 화면으로 확대 기능을 활용해주세요 :)
왜 책 쓰기에 도전하셨나요?
다시, 부드럽지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한 이에게 이미 ‘우리 반 아이들에게 코로나 대신 작은 위로가 될 만한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고 밝혔지만 그것만으로는 대답이 충분치 않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교사로 살아가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교사로 살아가기 위해 꽤나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기꺼이 아이들의 엑스트라가 되어줄 용기. 지나치게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평균적인 품위를 지키며 살 용기. 의견을 내기보다 의견을 수용하는 편에 자주 서있을 용기.
지난 10년 동안 순간순간 제 안에서 끄집어내야 했던 용기가 참 많습니다. 교사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용기의 목록을 모두 적은 뒤 덜 중요한 것들부터 하나하나 지워내면 마지막에 남을 것은 뭘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끝까지 아이들의 아름다움을 믿고 지지할 용기.”
돌아보면 지난 십 년 간 저는 꽤나 방어적인 교사가 되어갔습니다. 방어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았습니다. 선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때는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결국 최선이고 너무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며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더 아끼고 사랑해달라는 외침을 외면한 채 조금씩 방어벽을 쌓자 아이들의 아름다움은 저 너머로 남겨둔 채 버릇없고 감사한 줄 모르는 요즘 아이들을 힘겹게 마주하고 있는 내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하는 겁쟁이 교사가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런가? 정말 아이들이란 존재는 아름답지 않은가?
부엉이 상담소와 책 쓰기는 아이들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싶었던 저의 간절한 몸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들여다보기로, 겁내지 말고 깊이 천천히 들여다보기로, 결론에 먼저 도망쳐있지 않고 잔잔히 그저 들여다보기로 용기 낸 순간에 시작된 도전이었습니다.
책에 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준 고마운 친구가 저를 보고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부엉이 상담소 이야기를 할 때마다 활기차 보인다고 했습니다. 사실입니다. 올 한 해 저의 간절했던 노력 덕분에 교사로 살아갈 활기와 이유를 되찾은 느낌입니다.
시작할 때는 이 책 한 권을 마무리하면 아이들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만끽한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이제 보니 겨우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다가가서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뿐입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매년 부엉이 상담소를 이어가며 이십 년이 지나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교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보세요! 아이들은 이렇게 지혜롭고 아름다운 걸요.”
- <부엉이 상담소> 마치는 글
저는 좋은 것을 보면 아이들과 나누고 싶어집니다. 마포구 성산동에 뿌리는 내리고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동네 책방은 어떤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이 근본적인 질문에 고민하고 답하기 위해 일곱 명의 아이들이 모였고, 어슬렁어슬렁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우리는 패들렛으로 마포구 책방 탐방 지도를 만들고, 가보고 싶은 동네 책방을 투표로 정했습니다. 그렇게 방문한 동네 서점에서는 정성스레 책을 골랐고, 그 책을 매개로 소통하고, 또 책방지기님들이 던져준 질문에 답하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어슬렁어슬렁은 새로운 시도의 연속이었습니다. 로고를 제작해보고,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독립출판물 워크샵을 열고, 서로 쓴 글을 낭독하고 진지하게 합평하는 시간도 가졌으며, 스스로 프로젝트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서기도 했습니다. 여름 방학 집중 독서 기간에 매일 아침 온라인으로 모여 한 권의 책을 같은 속도로 독파한 일도, 함께여서 가능한 도전이었습니다.
씁쓸한 고백이지만 어슬렁어슬렁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선생님, 저 학원 때문에 시간이 안돼요.'입니다. 너무 바쁜 우리 아이들에게 어슬렁어슬렁이 또 다른 짐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픈 적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프로젝트를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은 만남마다, 새로운 미션마다 서로 다른 성장을 보여준 아이들의 진짜 모습 덕분입니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잘 못합니다. 정말 원하는 것을 할 대 살아서 꿈틀거립니다. 신이 나서 떠들고, 때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함게 웃고 떠들고,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는 시간을 줄 수 있다면 어슬렁어슬렁은 그로써 충분하다는 진심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합니다.
아직은 어슬렁어슬렁의 진정한 의미가 와닿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의 숨은 가치를 느끼며, 마음 한 켠 따뜻한 순간을 만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그 순간을 기약하는 기록입니다.
-<어슬렁어슬렁> 들어가는 말 중
끝.
참여자: 김보은, 박종하, 박덕현, 배현명, 이규배, 천주연
오픈마이크 MC / 기록자: 배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