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악장 : 결론
'바람'에 대한 글을 모았습니다.
8악장 : 결론
'바람'에 대한 글을 모았습니다.
내가 바라는 세상을 노래하기
24 주민우
바라는 세상에 대한 소망, 그거 하나쯤 품고 사는 거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바라는 세상을 잊고 살아간 건 언제부터였을까? 2016년 ‘위키드’라는 프로그램에 <내가 바라는 세상>이라는 동요가 방영되었다. 아이들의 동심으로 바라는 세상을 노래한다는 그 프로그램에 빠져들지 않기란 힘들다. 꽃과 새가 노래하고 동물들과 어울려 노는 세상, 아픔도 고통도 사라진 세상, 함께 노래하는 세상, 내가 바라는 세상, 내가 꿈꾸던 세상. 그런데 웃긴 건 여기서부터다. 아이들이 노래하지 않았다면 어떤 반응을 불러왔을지 상상해보라. 노래의 형태가 아니라 논문의 형태였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라. 꽃은 노래하지 못하는 미물이 되고 새의 노래는 울음으로 치환된다. 아픔도 고통도 사라진 세상은 ― 아픔과 고통이 있어야 발전도 하는 거라는 논리하에서 ― 디스토피아로 형상화될 것임이 틀림없다. 더군다나 함께 노래한다니? ‘왜’ 함께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설명하라는 요구에 직면한다. ‘너’가 바라는 세상, ‘너’가 꿈꾸던 세상은 허황된 것이며 절대 오지 않을 거라는 냉소적 반응에 바람은 흩날려 말소된다. 삭막하다. 막막하다. 세상을 너무 완벽하게 분석했던 탓일까? 아이들이 볼 수 없던 걸 커가면서 보게 되었기 때문일까? 조금은 슬프지만 그래도 세상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건 명백하니까, 나의 길을 묵묵히 가야만 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나의 고통은 완벽에 대한 갈망의 부작용일까?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걸 못 보고 있는 걸까? 결국 나는 아이답게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만 걸까? 절망적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희망은 보이지 않았는데, 바람은 계속 불어오는 것 같다. 아이들이 노래하고 있다. 장미와 백합과 풀꽃이 노래하고 있다. 정신질환자들이 노래하고 있다. 심지어는 다 큰 성인들도 노래하고 있다. 바람이라는 노래, 노래로 표출된 바람, 소망, 욕망, 그 끝에 희미한 희망.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바람은 계속 불어왔다. 바람을 무시하던 건, 부정하던 건 내가 아니었나? 노래를 따라부른다. 화음을 넣기도 한다. 이중주, 삼중주를 만들어낸다. 개사해 부르기도 한다. 바람에 편승한다. <내가 바라는 세상>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우리 늘 바라던 그런 세상 있어요
모두들 여기 모여 함께 노래 불러요
(...)
꽃과 새가 노래하고 동물들과 어울려
햇살 가득 받으며 미소 짓는 우리들
아픔도 (외로움도) 고통도 (슬픔도)
모두 사라지기를
(...)
싸우지 않는 세상 (사랑해)
평화로 가득한 곳 (고마워)
- 위키드 블루팀, <내가 바라는 세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