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악장 : 결론
'흐름'에 대한 악우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4악장 : 결론
'흐름'에 대한 악우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난 차라리 흘러갈래
모두 높은 곳을 우러러볼 때
난 내 물결을 따라
flow flow along flow along my way
악동뮤지션, 후라이의 꿈 中
24 최아라
새 환경에서의 첫 시작은 언제나 감당하기 어려운 세찬 파도가 밀려오는 시기였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공간, 새로운 경험들 이 모든 것이 쏟아져 오는 시기. 이런 시기가 닥쳐왔을 때마다 대응방식은 제각기의 형태를 띄고 있는 듯하다. 파도에 휩쓸려 숨막히지 않도록 두 발을 단단히 고정해 꿋꿋이 맞서 싸운다. 또 어떨 때에는 파도가 덮치지 못하도록 더 큰 파도가 되어 드넓은 바다에 몸을 맡기기도 한다. 나에게 대학생활에서의 첫 시작은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운 듯하다. 감정적 격정이, 수많은 과제가, 다양한 관계들이 자신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더욱 바쁘게 살아가려고 달려나간다. 큰 파도 앞에 부서지기보다는 그만큼의 파도가 되어 달려나가는 것이, 기분이 썩 나쁘진 않다. 일종의 성취감이 스스로를 고취시켰다. 그럼에도 첫 시작마다 스멀스멀 밀려오는 일종의 허함과 무기력함을 완벽히 밀어내지는 못했다. 큰 물줄기에만 신경이 곤두서 오히려 그 사이의 작은 물줄기들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했었는데, 어느 순간 혼자 있기 힘든, 고요함이 두려운 순간들이 찾아왔다. 큰 파도에 온 몸을 맡겼던 순간이 끝나고 혼자가 되는 고요한 시간이 찾아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고요한 밤바다속에 혼자 갇힌 듯 무기력한 순간을 그저 흘려보내고 있었다. 자신만의 흐름을 만들고 싶었다. 큰 파도속에서 온전히 스스로를 위한 작은 흐름이 필요했다.
그러다 글이 눈에 들어온 순간이 있었다. 어쩌면 지나칠 수도 있었던, 소중한 사람이 쓴 짧은 글이 내 각막에 들어와 박혔다.
“하염없이 내맘대루 걷기 해보고싶어. 그냥 걷다가 지하철 타고 내리고 싶은 곳에서 내려서 걷다가 예쁜 카페가서 먹고싶은거 먹고 예쁜 풍경 나오면 찍구.. 잠깐 앉아서 쉬었다가 다시 걸으면서 생각에 잠겨버리기 하구싶다.”
그 짧은 중얼거림이 안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나만의 흐름을 시작할 작은 단초.
자신이 좋아했던 것들을 되돌아본다. 따스한 햇볕을 양껏 맞는다. 강에 떠오른 윤슬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낸다.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애정하는 노래들을 곱씹으며 듣는다. 좋아하는 곡을 연주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뒀던 수많은 컨텐츠를 즐긴다. 맑은 하늘을 본다. 공기의 내음을 받아들인다.
흐름이 만들어진다. 나만의 새로운 여린 물줄기가. 거센 파도속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여린 물줄기가 일상을 감싼다. 어느덧 봄내음의 향기가 휩쓸고 간 자리에 녹음이 우거진다. 푸르른 여름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새 흐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페퍼톤스, 공원여행 MV
학교 앞 정류장을 지나
작은 횡단보돌 건너면
오른쪽 골목이 보이지
그 길로 쭉 들어가봐
살짝 젖어있는 길 위로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
휴일 아침 맑은 공기가
많은 것을 새롭게 할 거야
페퍼톤스, 공원여행 中
표류(漂流)하는 이들에게.
24 김하연
'흐름'을 떠올리면 물줄기가 생각납니다. 어디서 시작했는지 모를 갈래들이 하나둘 모여 물줄기를 이루고, 이들이 모여 강으로, 바다로, 더 넓은 세계를 향해 흘러갑니다. 서로의 근원지가 다르기에, 합류(合流)의 과정은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속도와 온도, 각자 지닌 성질들도 달라 뒤섞이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합류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윽고 시간이 흐르면 물줄기는 적절한 속도와 방향을 찾아. 땅 위에 이전보다 더 큰 획을 그으며 나아갑니다.
잠시 인간 세계로 눈을 돌리면, 우리도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따라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일률적으로 동일하지 않은 것은, 각자의 고유한 흐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설명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루 동안에도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각자의 흐름들은 다른 획을 그어가며, 비록 같은 공간에서 같은 무언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각자 다른 것을 느끼고 배워갑니다. 각자의 빛과 속도를 가진 흐름들은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합류의 과정을 거쳐, 공동체라는 물줄기에 소속되기도 합니다.
어리기만 했던 한 학생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른 흐름들의 삶 속에서는 웃기고, 분노하고, 이른바 스펙타클한 일들이 매일 일어나는지 각자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며 신나서 이야기해주곤 했지요. 그러나, 이 학생의 삶의 흐름은 조금 달랐습니다. 매일매일 감정이 크게 요동치지 않고 잔잔하게 흘러갔습니다. 엄청난 사건이랄 게 존재하지 않았고, 매일 보통의 삶 속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사는 흐름이었죠. ‘도파민 중독’. 소박한 일상의 조각들보다는 감정이 극대화된, 새로운 자극들을 계속해서 원하는 세상이 되며 이 학생은 이런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맞나 불안해했고, 새로운 자극을 찾아 흐름을 거슬러볼까도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생각들이 학생에게 합류의 과정을 더 어렵게 느끼게 만들었고 흐름들의 모임,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빛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학생에게, 어린 날의 나에게,
이제 고유한 나의 흐름을 사랑하게 된 저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각자의 고유한 삶의 방향, 속도, 흐름은 모두 다른 거라고. 합류의 시간은 여러 물줄기가 합쳐지는 것이기에 어려운 것이 맞다고. 그 속에서 다른 흐름들과의 만남을 즐기면서도 너의 흐름을 사랑하면 된다고.”
각자의 흐름을 잃어가고 있는 이가 있다면, 여러 흐름들 사이에서 정처없이 방황하며 표류하는 이가 있다면, 자신만의 흐름을 오롯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4월 이후의 나날들이 되기를.
이소라, Track 9 앨범 커버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이소라, Track 9 中
23 심지후
비대면 과외를 마치고 힘들어 누워 있던 중 10년지기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힘든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나여서 전화를 걸었다는 말을 시작으로, 보고 싶고 잘 자라는 말을 끝으로 하는 30여 분 정도의 통화였다. 전화 전까지만 해도 만사가 귀찮았고 얼른 자고 싶었는데(새벽 한 시 반이었다), 전화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마음이 평안해졌다. 친구에게 이 전화가 상당한 힘이 되며 고맙다는 말을 하자, 본인이 힘을 얻고 싶어 건 전화인데 나도 힘을 받아 다행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문득 깨달았다. 구태여 언어화하지 않아도 따뜻한 마음은 흐르는구나. 흐름이란 꼭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혹은 채워진 곳에서 비어 있는 곳으로 가는 방향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 에너지? 무어라 칭해야 할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분명 무언가가 늘상 흐르고 있다. 당장 우리와 가까이 있고 직접적으로 힘을 주는 것들 - 가족, 연인, 친구, 반려동물 등 - 뿐만 아니라,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우연한 조우로 맺어진 관계들에도. 모든 것에는 힘이 깃들어 있다. 예를 들자면 우연히 간 타지의 분위기 좋은 카페 사장님께 들은 따뜻한 안부 인사라던지, 미디어 속에서만 볼 수 있으나 언제나 빛나는 나의 가수가 부르는 노래라던지... 이때 에너지는 꼭 인간에서 오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완연한 봄을 맞아 벚나무가 온 힘을 다해 꽃망울을 터뜨리는 사건, 과외를 끝내고 지쳐 집에 가던 중 마주한 고양이가 나를 피하지 않고 내게 몸을 부비는 행위, 관악산 정상에 올라 본 경외심이 들 정도로 작열하는 해... 하나하나의 조그만 것들로부터 오는 흐름이 합쳐질 때 얼마나 큰 양을 형성하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묘해진다. 모든 것들이 나를 지탱해 주고 있구나.
의존성, 즉 필요 또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임을 깨달았다. (…) “모든 인간이 생의 초기나 다쳤거나 아플 때, 또는 너무 노쇠해져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을 때처럼 장기간의 의존기를 반복적으로 거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철학자 에바 페더 키테이는 말했다. (…) 인간의 의존성을 먼저 인식하지 않고서는 상호의존성을 인정할 수 없다.1)
그러니까, 교만하게도 나는 주고 있는 줄만 알았고 언제까지나 누구에게든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동시에 충만하게 받고 있었음을, 나는 내 생각보다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흐름은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순환하는 것이라 나로부터 나가는 흐름이 있다면 분명 들어오는 흐름도 존재하리라고 짐작하는 것. 이제는 어떠한 흐름이 나에게로 들어오는지 놓치지 않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순간들을 차곡차곡 모으고 싶다. 억지로 특정 흐름을 확장하거나 축소하려 들기보다는 흐름이 만들어내는 힘에 몸을 가만히 맡기고 나를 이끌 수 있게 냅두길, 압도되는 힘을 충분히 느끼길 결단하고 싶다. 이 와중에도 온전한 수동성을 향하지 못하고 ‘주체적으로’ 수동적이길 택하는, 수동을 표방하는 능동을 행하는 내가 밉다.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속절없이, 그러나 편안히 이끌려가는 5월이 되기를.
1) 사라 헨드렌,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 조은영 역, 파주: 김영사, 2023.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 -다정하게 흔들어주는 손, 연필로 그린 스케치, 나일론 실에 꿴 플라스틱 구슬들 - 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중략)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으로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中
killin’ the vibe, 흐름을 깨다
24 이채윤
1. 삶과 버팀
H를 좇는 일은 이제 그만 두었다. 비를 피하는 방법 대신 폭우 속에서 춤을 추는 방법을 익히려고 한다. 너와 함께 했던 것은 고작 반년이 겨우 넘는 시간이었는데, 그 기억으로 나는 여섯 해를 더 살았다. 우리는 ‘조금만 더 버티자’는 말을 안부처럼 나눴고, 너는 끝까지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속절없이 그런 줄만 알았다. 그 말은 항상 내 중심에 있었으니까. 네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릅쓰고도 네 앞에 놓인 것들을 차근히 해나가는 모습이, 어느 오후에 되찾아주었던 순수한 과거 같은 것들이, 내게는 늘 힘이었고 용기가 되었다. 너처럼 의연해지고 싶었다. 나는 내게 조금만 더 버틸 것을 끊임없이 주문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버티는 게 아니라 그저 살아가고 싶다고. 평소 같으면 사치라고 웃어넘길 법한 생각을 꽤 깊게도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버티고 있는가? 그 끝에는 무엇이 있지? 맹목적인 추종에 물음표가 찍힌 순간, 균열은 시작되었다. 삶은 버팀과는 달랐다.
2. 다정함으로의 도달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던 날, 담임 선생님께서 읽어주셨던 당부의 말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지금까지 앞을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주위를 둘러보고 함께할 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주어진 삶에 순응했다면, 이제부터는 만들어가는 삶에 집중하거라.’ 묵묵히 끄덕이며 듣고 있었지만, 사실 달아오르는 눈가를 다독이느라 혼났다. 그 찰나의 순간, 그리웠다. 점점 빨라지는 내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것들이. 그 시기에 만났어야 할 인연들, 했어야 할 말. 하루를 온전히 비워보고, 마음 가는대로 다시 채워 담는 일. 나는 흘러가게 두는 것이 왜 그토록 무서웠을까.
나는 기꺼이 억류했다. 억센 흐름에 살갗이 다 벗겨진대도, 계속 매어있고 싶었다. 얼마나 멀리 나아갔든, 금세 원점으로 회귀했다. 나에게 그 흐름을 거부할 만큼의 힘이 생겼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이 나에게서 미끄러지는 것이 싫었다.
흘러가는 말소리에 잠자코 포개어져 이런 생각들을 할 동안, 나는 비로소 다정함에 도달했다. 그 문장들은 나를 해방시켰고, 그제야 나는 깊게 안심했다. 많은 것을 잃는대도, 더 값진 것을 얻어내야지. 내 삶에게 나에게서 미끄러질, 더 멀리멀리 헤엄칠, 다정한 것들과 세상을 부유할 자유를 주어야지.
3. killin’ the vibe, 흐름을 깨다
실수가 방황이란 이름으로 용서되는 때에, 마음껏 구르고 넘어지고 싶다. 아마 쉽지는 않겠지. 중간에 여러 번 원점으로 돌아와 이 순간의 결심에 반하는 선택을 하기도 할 것이다. 너의 말을 빌려, ‘해로운’ 흐름에 한 번 더 나를 던지며 생각한다. 마음껏 흠집을 새기고 유랑하는 것이 내 흐름일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냐고. 혹시 이 흐름이 내게 맞지 않더라도, 그건 그뿐이라고. 곧 다시 좋은 흐름이 올 것이라고.
‘다들 기름 없이 멀리 가길 원해 /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 어디선가 이 장면 본 거 같아 /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 거 같데 / 다 무너진 후에야 하늘을 / 올려다본다니까 우린 / 하루쯤은 그냥 뒤처져도 나’ - 김승민, ‘노래’ -
한로로, 비틀비틀 짝짜꿍 앨범 커버
비틀거리다 깨지는 두려움은
언젠가 설렘으로 바뀔 거란 걸 난 알아
이마 위 상처는 청춘의 징표
우리는 서로의 좋은 반창고
상처 투성이의 손을 맞잡고
다시 비틀비틀 짝짜꿍
비틀비틀 짝짜꿍
한로로, 비틀비틀 짝짜꿍 中
23 송수림
* 아토피 질환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썼던 일기들을 엮어내 각색한 글입니다. 올해 겨울을 글의 시점으로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날은 무덥고 마음은 가벼워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던 어느 여름날. 나는 몸 여기저기에서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찌나 괴롭던지 도무지 다른 일에는 집중하기가 어려웠는데,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가려운 바로 그 부위에 정신이 팔린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몇 번 긁고 나면 가려움이 가신 대가로 진물이 찾아왔고, 진물이 나는 곳에 옷이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살점이 베이는 느낌이라 펑퍼짐한 옷을 입고도 얼마나 엉거주춤하게 걸어 다녔는지 모른다. 가려워서 긁고 나니 진물이 흐르고, 겨우 진물이 멎고 각질이 생기니 다시 너무 간지러워 고통스러워하기를 반복하던 나날들. 이러한 증상이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자, 나는 어릴 적 완치된 줄 알았던 아토피 질환이 재발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무 살의 여름이었다.
그 여름 이후로도 벌써 두 개의 계절을 떠나보냈다. 지난 여름은 진짜 더웠고 이번 겨울은 눈이 진짜 많이 왔는데, 그렇게 진짜 여름이 진짜 겨울이 되는 것을 보니 새삼 시간이 진짜 흘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모든 것이 흐르는 동안, 나 홀로 이곳에 가만히 멈춰 서있다. 아침에 일어나 피와 진물로 물든 이불과 잠옷을 치우기. 채소 위주의 심심한 반찬들로 밥 챙겨먹기. 간식, 특히 밀가루나 유제품이 들어간 음식들은 절대 금물. 상처에 물이 오래 닿지 않도록 몸은 3분 이내로 빠르게 씻기. 매일 이불과 잠옷을 교체하기. 온몸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진물 때문에 피부에 달라붙은 옷을 조심스레 떼어내기. 그 부위들을 하루에 두세 번씩 소독하기.
지나간 것들이나 다가올 것들에 대해 생각지 못하고 주어진 매일을 그저 살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 성찰하는 삶에는 품이 너무 많이 든다는 불평을 해본다. 삶에서 어떤 극단에 몰리고 나면, 당장 주어진 고통, 두려움, 절박함이 너무 거대해 그 외의 다른 것들을 돌아볼 여유는 사라진다고. 성찰이라는 것을 하려면 내가 나를 계속해서 지켜보며 칭찬도 하고, 반성도 해야 하는데, 나는 당장 내게 주어진 이 유일한 현실에 벅차서 관찰은커녕 허우적거리며 지금을 살아갈 뿐이라고. 당장 옷에 닿는 상처의 따가움, 미칠 듯한 가려움 같은 문제들이 인생의 주된 화제가 되었다고.
인생에 찾아오는 굴곡은 체망과 같은 것이여서, 그것을 지나는 동안 잃어야 할 것을 잃고, 얻어야 할 것을 얻게 된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작든 크든 어려운 시기를 지난 뒤에는 늘 아픔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아픔이 지나간 자리를 영원히 가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토피와 같은 만성 질환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나의 아토피 역시 제 삶을 살아가며, 나타나기도, 잠시 사라지기도, 난동을 부리기도, 다시 안정을 찾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픔이 지나가지 못한 자리에 대해서 생각하기로 한다. 나의 하루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곳에는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새로 자라났을까? 나의 아픔으로부터 의미를 찾고자 지나치게 애쓰지 않으면서, 아픔을 통해 얻은 것들을 애써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이끈 그 모든 시간의 흐름을 솔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러고 나면 스물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배웅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픔이 지나가지 못한 자리에 서서.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넣어 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최은영, <밝은 밤>
24 주민우
흐름이라는 말이 당신에게 떠올리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흐름은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제게는 파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강과 계곡도 떠오릅니다. 이들은 모두 물의 흐름이죠. 흐른다는 건 적어도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합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재현불가능은 흐름의 의미 안에 들어있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흐름의 다른 속성에 중점을 두고 싶습니다. 다름 아닌 보강과 상쇄입니다. 계곡물은 상류 지역에서 빠르게 흐르다가도 완만한 경사를 만나면 느려집니다. 바닷물도 해류의 순환이나 다른 해류와의 부딪힘의 과정에서 속도가 빨라지기도 느려지기도 합니다. 어떤 흐름은 기존 흐름을 더 강화하거나 날카롭게 하기도, 약화하거나 둔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저는 이 글로 사회물리학을 주장하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세요. 단순히 물리학에서 개념을 가져와 순수하게 철학적 사유의 수준에서 간단히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양자역학에서는 어떤 입자든 파동성을 가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몸조차 파동이죠. 우리가 우리 몸을 파동이 아닌 입자로 인식하는 이유는 작은 입자들 하나하나가 서로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입자와 부딪히면 입자는 그 순간 파동성이 사라지고 입자의 성질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파동이라는 단어를 흐름으로 바꿔볼까요? 그럼 우리 몸은 여러 흐름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앞서 이야기한 물로 되돌아가 볼게요. 우리가 파도를 보는 걸, 흐름들이 모여 만든 물 입자들이 다시 모여 흐름을 만들어낸 모습을 보는 것으로 가정해 봅시다. 이 흐름들은 성격이 다 다릅니다. 어떤 파도는 빠르게 칠 수도 있고, 어떤 파도는 느릿느릿 칩니다. 어떤 파도는 힘겹게 조개껍데기를 옮기는 정도의 세기이고, 다른 파도는 거뜬히 유람선을 이동시킵니다. 파도라는 흐름들은 서로 만나고 부딪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바뀌어 나갑니다. 흐름의 형태에 따라 보강되어 흐름은 쓰나미처럼 강해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 다른 형태에선 상쇄되어 미미해질 수도 있겠죠.
나이브하긴 하지만, 물의 흐름, 파도의 흐름을 우리에게도 적용해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흐름이라면, 우리가 갓난아기일 때는 정말 순수한 흐름이었을 것 같네요. 수조에 물을 받아놓고 손으로 치면 나타나는 그 흐름입니다. 수학적인 용어로 치환하면 싸인함수나 코싸인함수 형태겠죠. 이때의 순수한 흐름과 대학생인 우리의 흐름은 많이 다릅니다. 우리의 흐름은 부모님의 흐름을, 절친의 흐름을, 선생의 흐름을, 지나가며 마주친 많은 이들의 흐름을 만나 보강되고 상쇄되고 구조화되고 탈구조화되고 조직되고 부서졌을 거예요. 우리가 읽은 책들, 인상깊게 본 영화들, 감동적이었던 수업들을 포함해 모든 경험들은 흐름으로서, 나의 흐름 그리고 우리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바꿔냈을 거예요.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해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갓난아기의 순수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다시 말해 삶을 거치면서 수없이 많은 흐름을 만났음에도 그 흐름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흐름은 너무나도 단편적이고 반복되는 패턴일 거예요. 우리의 흐름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그 많은 흐름들이 모여 그 무엇보다 강해질 때도, 그 무엇보다 약해질 때도 있다는 점 같아요. 때로는 삶이 지치고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기도 하죠. 그러나 그건, 아직 큰 흐름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겪은 흐름들은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큰 흐름을 선물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But what is the Fourier Transform? A visual introduction. (3Blue1Br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