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보인간의 생존신고>
권하정, 김아현
장르 : 다큐멘터리
‘누구의 인생이건,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 당신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 세상 쪽으로 등을 떠밀어 주었다면, 그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 간 순간이다.'
김은숙, <도깨비> 中
이승윤, <달이 참 예쁘다고>
이승윤, <폐허가 된다 해도>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
공규범
여느 때와 같이 목적 없이 알고리즘 속을 유영하던 중, 우연히 맞닥뜨린 「도깨비」의 한 에피소드를 담아낸 이 영상에 빠져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도깨비에게 샌드위치를 건넨 중년 남자의 인생에 도깨비라는 신이 머물다 간 순간을 그려낸 에피소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영상을 두 번, 세 번 볼수록 인간과 신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말해, 도깨비와 중년 남자 모두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고, 그 서로에게 서로가 신으로서 머물다 간 것이 되는 겁니다. 누가 신이고 누가 인간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 신이 되어 다른 누군가의 삶을 되찾아 줄 수 있고, 누구든 언제든 신으로부터의 뜻밖의 방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꿈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던 중, 서로의 신이 되어 서로를 있는 힘껏 세상으로 떠밀어 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듣보인간’으로 살아가던 세 친구가 또 다른 ‘듣보인간’ 가수 이승윤의 신곡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입니다. 졸업 후 꿈에 대한 확신 없이 방황하던 세 친구에게 이승윤의 노래가 희망을 심어주었고, 그 희망이 피워낸 열정은 마찬가지로 꿈과 현실의 간극에서 허우적대던 이승윤에게 감동과 희망을 선사하게 됩니다. 친구들이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모습은, 이승윤이 아직 대중의 응답을 받지 못하던 시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와 메시지를 전하던 모습과 똑 닮아있습니다. 밟고 서 있는 무대는 다르지만 꿈에 대한 열정 그 하나만으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다는 그 점이,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귀감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 이유일 겁니다. 세 명의 듣보인간과 한 명의 무명가수가 한 명의 인간인 동시에 서로의 신으로서 불꽃을 잃어가던 서로의 꿈을 풀무질해 준 것이죠. 함께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은 네 사람 모두에게 ‘신이 머물다 간 순간’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결국 닿게 되는 곳은 세 친구도, 이승윤도 아닌 어디선가 힘겨이 자신만의 꿈을 키워내고 있을 또 다른 듣보인간입니다. 간절하게 꿈을 일궈내던 사람들이 ‘신이 머물다 간 순간’을 맞이하는 것을 체험한 이 세상 어딘가의 듣보인간은 자신에게도 언젠가 그런 순간이 찾아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다시금 꿈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희망이 다른 무대 위에 서 있는 수많은 듣보인간들에게까지 퍼져나가는 그러한 희망의 선순환이 제가 이 영화를 추천해 드리고 싶은 이유입니다. 2024년에는 여러분의 꿈이 더 밝게 타오를 수 있기를, 어떻게든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을 맞이하기를, 여러분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순간을 선물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젊음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이승윤, <무명성 지구인> 中
‘조각조각 찢어진 꿈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희망이라 불러요’
이승윤, <흩어진 꿈을 모아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