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악장 : 서론
'흐름'을 이야기하는 문화 콘텐츠를 소개한 글을 담았습니다.
4악장 : 서론
'흐름'을 이야기하는 문화 콘텐츠를 소개한 글을 담았습니다.
24 장현욱
흐름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것 역시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흐름은 인간에 의해 인식될 때 그 유용성이 극대화된다. 시간의 흐름은 존재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흐름은 때로 인간에게 납득할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기도 한다. 16-17 시즌 바르셀로나는 1차전에서 파리 생제르망에게 4대0으로 참패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2차전에서 바르셀로나는 6대1로 파리를 물리치고 토너먼트에서 승리한다. 놀랍게도 그날 6개의 득점 중 3점은 경기가 끝나기 10분도 채 남지 않았을 때 나왔다. 분명 그 순간은 바르셀로나의 흐름이었다. 흐름은 존재했으며 사람들에게 인식됐다.
흐름은 흐르는 것을 말한다. 즉 끊기지 않고 계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흐름을 끊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는 흐름이 존재한다. 시간같이 절대적으로 끊어지지 않는 흐름이 있는가 하면 돌맹이 같이 단절되어 보이는 것에도 흐름은 존재한다. 그 흐름은 우리가 몰입함에 따라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처음 글을 읽기 시작할 때는 맥락을 이해하기 매우 어렵지만 몰입하게 되면 쉽게 글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몰입하려고 노력을 해서 흐름을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떠한 흐름은 우리가 몰입할 수 밖에 없어 그 존재를 확인 시킨다. 앞서 언급한 바르셀로나의 축구가 그러한 경우이다.
흐름이 중요한 이유는 무언가의 가치를 평가할 때 유용하게 활용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흐름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좋은 것이고 흐름이 존재하는지 인식할 수 없는 것이 안 좋은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이 글을 좋지 못한 글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내가 일부러 글의 흐름을 인식하기 어렵게 작문했기 때문이다. 흐름은 인간의 본질적 속성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연속적인 것을 선호하고 몰입에 즐거움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흐름과 가치는 결국 정비례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어떠한 흐름도 발견하지 못한 당신이 이 글이 가치 없다는 것을 느끼기를 바란다.
24 전성연
우리는 삶을 주로 하나의 책, 영화, 등의 ‘이야기’로 비유하곤 합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노래,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역시 이러한 비유를 채택하여, 지금 이 순간을 삶이라는 책의 한 페이지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삶은 참 우리가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가끔은 너무 큰 반전이 찾아오거나 어떤 계기로 인해 삶이 달라져서, 일관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최근, <법과 가치>라는 전공 수업에서 로널드 드워킨의 <생명의 지배영역 (낙태, 안락사, 그리고 개인의 자유)>라는 책을 읽으며, 안락사에 관한 입장을 정리하는 과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책 자체는 정말 어렵고, 솔직한 심정으로는 크게 추천드리고 싶지는 않으나, 과제를 적으며 생각한 쟁점이 이번 달의 주제인 ‘흐름’과 참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에서는 중증 치매 환자가, 치매에 걸리기 전 “나는 중증 치매에 걸려서 남에게 100% 의지하며 사는 게 무의미하고, 너무 추하다고 생각해. 그럴 바엔 죽는 것이 낫겠어.”라고 분명하게 의사 표현을 했던 사람이면, 비록 중증 치매에 걸린 이후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으로 행복할 지라도 치매에 걸리기 전 의사를 존중하여,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근거로 비판적 이익을 드는데, 이를 ‘삶의 서사, 이야기를 원하는 대로 완결할 권리’로 쉽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이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나, 그만큼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써 나가는 것을 중요시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잘 경험하고 있다시피, 삶은 정말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삶이 ‘흐른다’고 표현하는 이유도, ‘흐르다’라는 단어가 ‘수동성’을 내포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능동적으로 ‘살아가지만’, 가끔은 삶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대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삶의 흐름’이 가끔은 너무 버거워서, 좋지 않은 선택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일>이라는 웹툰은, 삶의 흐름이 너무 버거워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을 막고, 이들이 삶의 흐름에 대처할 각자만의 방법을 찾도록 노력하는 저승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판타지성을 가미하여 재미를 더하고, 각 에피소드마다 어느 정도의 교훈과 생각할 점도 있는 작품입니다.
웹툰 <내일>을 통해, 혹은 다른 수많은 컨텐츠를 통해 우리가 삶의 흐름에 대처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은 삶의 흐름을 거슬러보기도 하고, 또 파도 위 튜브를 타듯이 흐름에 내 몸을 맡겨보기도 하고, 또 흘러가는 경사를 바꿔보기도 하면서 각자만의 삶의 흐름을 완성해나가기를 응원합니다.
22 조다빈
너는 왜 이다지도 인색한가
강물도 바다도
피도 눈물도
그리고 너도 나도
모두가 흘러갈진대
너는 왜 이다지도 인색해야 하는가
흘린 피 위에 눈물을 뿌리지 못할지언정
침을 뱉지는 말아다오
흐르는 눈물을 비웃지 말아다오
고여 있는 악의를 뒤로 하고
조소가 풍기는 악취를 뒤로 하고
나는 그만 흘러가련다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며
시간과 함께 흘러가련다
거대한 바다에 닿을 때까지
흐르고 또 흘러가련다
아프지 않을 리 있겠니
두렵지 않을 리 있겠니
그러나 그 무엇도 너의 인색함만큼 괴롭지는 않단다
그리하여 나는 한 번 더 묻는다
이 세상은 이토록 흐르는 것들로 가득한데
너는 왜
이다지도 무심해야 하는가
23 신채은
역사적으로 권리 주체가 될 수 있는 자의 범위는 계속해서 넓어져 왔다.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흑인 해방 운동가들은 흑인 노예제 폐지를 이끌어 냈고 이로 인해 백인뿐 아니라 흑인도 권리 주체로 인정받게 되었다. M. 울스턴크래프트를 비롯한 여성 해방 운동가들은 여성 참정권을 이끌어 내었고 이로 인해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권리 주체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권리 주체의 확장이라는 흐름은 마침내 종의 범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피터 싱어는 동물 해방 운동의 바이블로 불리는 『동물 해방』의 저자이다. 그는 『동물 해방』에서 성차별과 인종차별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인간 평등의 토대가 되는 윤리 원리를 밝혀내었다. 그에 따르면 평등은 도덕적 이념이지 사실에 관한 단언이 아니다. 두 사람 간의 실질적인 능력의 차이는 그들의 필요와 이익에 대한 차등적인 배려를 정당화할 논리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윤리 원리가 비인간 동물에게도 적용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다음은 피터 싱어의 말이다.
“평등의 원리에 입각해 보았을 때, 어떤 존재의 이익을 고려한다는 기본 요소만큼은 흑인이든 백 인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인간이든 인간 아닌 존재이든, 그에 관계없이 모든 존재에게 확대 적 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성 혹은 인종의 이익을 옹호하면서 다른 종의 이익을 배척하는 태도인 성차별주의와 인종차별주의가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면,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종의 이익을 옹호하면서 다른 종의 이익을 배척하는 편견 또는 왜곡된 태도인 ‘종차별주의’(speciesism)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피터 싱어는 권리 주체의 확장이라는 역사적 흐름을 잇고 있다.
『동물 해방』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전술한 바와 같이 인간 평등의 토대가 되는 윤리 원리를 밝혀내고, 그것이 비인간 동물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를 밝힌다. 종차별주의라는 단어의 탄생과 비인간 동물이 느끼는 고통에 대한 증명 역시 이 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2장에서는 동물 실험의 실태와 그것의 대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3장에서는 공장식 농장에서 비인간 동물이 겪는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4장에서는 채식주의자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다룬다.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의 이점과 그들이 주로 받는 질문에 대해 다루고 있다. 5장에서는 종차별주의의 역사, 즉 인간의 비인간 동물 지배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6장에서는 오늘날의 종차별주의에 대해 다루며 동물 해방에 대한 옹호와 합리화, 그리고 그에 대한 반론과 이를 극복하는 데서 이루어진 발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물 해방』은 전 세계적인 동물 해방 운동을 촉발하였으며 그 흐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도 피터 싱어의 철학을 기본 토대로 삼은 동물권 단체가 있다. 바로 동물해방물결이다. 동물해방물결은 2017년 11월, 국내 최초 모든 동물의 해방을 전면에 내건 단체로서 출범하였다. 종차별 철폐와 동물 해방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느끼는 모두에게 자유를”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개 도살 금지’ 국회 조명 시위, 탈육식 캠페인, 돼지 홀로코스트 퍼포먼스, ‘화천 산천어 축제’ 고발, 꽃풀소 살림 프로젝트, 청도 소싸움 연대 기자회견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는 중이다. 단체가 아닌 개인의 차원에서도 동물 해방을 위한 운동의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2021년 기준 국내 채식 인구는 약 1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이는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 세이다.
사회심리학자이자 비건 운동가인 멜라니 조이는 비건 운동이 다른 주요 사회 운동과 같은 원칙에 기반하며,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사회 정의 운동 중의 하나라고 말하였다. 흑인 노예제가 폐지되었듯, 여성이 참정권을 갖게 되었듯 언젠가는 비인간 동물도 권리 주체로서 인정받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부드럽지만 그 무엇보다 억센 해방의 물결이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고 있다.
22 최희정
모든 현재는 과거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과거를 대하는 것이 늘 조금씩 어렵습니다. 깊은 곳에 묻어버리고 지나가야 할지, 비옥한 토양 되어 자라도록 열심히 돌봐야 할지, 아예 새로운 땅으로 옮겨갈 수는 없는지. 그렇지만 가장 많은 순간은 발아래를 내려다보지 않는 쪽을 택합니다. 한 번 내려다보면 그대로 그 속에 파묻힐 것만 같은 두려움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버티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습관이 되어 더욱더 과거를 보는 법을 쉬이 잊습니다. 이제 머리를 떨구는 것만으로도 추락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짜증나게도, 과거를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은 프랭크를 중심으로 세 친구의 20년 동안 흐른 꿈과 관계와 인생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입니다. 가장 특이한 점은 역순 진행이라는 것인데, 7번의 이행을 거치며 1976년부터 1957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How did you ever get there from here?” 어떻게 지금 ‘이곳’까지 왔는지 묻습니다. 작품은 잔인하리만큼 그 물음에 답하는 것이 얼마나 어떻게 어려운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저 굴러왔다는 것, 대단한 어떤 순간보다는 시간의 모든 흐름이 지금 여기 나로 이끌었다는 것, 대단해 보이는 몇몇의 조각을 눈앞에 전시하는 방식 외에는 과거를 마주하는 법을 모르고 있다는 것. 시간이 (반대로) 흐름에 따라 세 인물들은 무언가를 잃고 무언가를 얻습니다. 그것이 어떤 순간 누구의 잘못이었는지 따지기도 전에 그렇게 굴러갑니다. 가만히 있어도 생각하지 않아도 인생이 굴러간다는 것은 때로 행운이고 때로 비극입니다. 그래서 자꾸 빳빳한 고개를 떨구고 내려다 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슬쩍 바라본 과거는, 사실 내 아래에 있기보다 내 안에 있습니다. 내가 그 모든 것을 통제하지도 않았고 매 순간이 나의 의지였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핑계삼기보다 겸손히 받아들일 때 더 많은 나를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두려움과 비겁합과 겸손함과 용감함 사이를 오가며, 그 모든 것들을 안고 굴러갑니다.
23 정여진
일본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의 주인공 스즈코는 전문대를 졸업했지만 취업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독립을 결심하고 친구와 동거하기로 하지만 억울하게 전과자가 된다. 출소 후 그녀는 100만 엔이 모이면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렇게 스즈코는 바닷가 마을의 한 식당에서 산골 마을의 과수원으로, 그곳에서 또 한 소도시의 꽃집으로 이동하며 살아간다.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삶의 흐름은 끊겼다. 이후 그녀는 의도적으로 이곳저곳을 떠돌며 일상의 흐름을 전환한다. 보편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의 속도와 방식을 찾는 여정을 떠난 것이다. 매번 낯선 곳을 마주하는 스즈코에게 낯선 시련들이 찾아온다. 그녀는 그런 시련들에 부딪히지도, 시련을 극복할 새로운 관계를 맺지도 않고 그저 얼른 100만 엔을 모아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기를 반복한다. 영화의 끝에서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까? 과연 그녀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계속해서 유지할까,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할까. 그녀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만들어 낼까.
한편으로 본 영화는 최근 늘어나는 ‘프리터족’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자유(Free)와 아르바이터(Arbiter)를 결합한 합성어 프리터족은, 특정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일본에서 유래된 이 현상은 최근 한국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올해 1월 한 달간 온라인상에서 ‘프리터족’의 검색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5.5% 증가했으며, 실제로 국내 시간제 근로자 비율이 지난 2003년부터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MZ세대뿐 아니라 중장년층에까지 이러한 삶의 방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의 원인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평생직장의 의미 퇴색, 일자리 부족 등이 꼽힌다. 사회 변화에 따라 보편적인 삶의 정의도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스즈코를 통해 알 수 있듯, 삶의 흐름은 타인에 의해서, 혹은 스스로에 의해서도 변화할 수 있지만, 그 흐름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을 이어갈 것인지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있다. 인생에서 회피하고 싶은 일을 마주하였을 때, 혹은 근본적으로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하여야 할지 막막할 때 <백만엔걸 스즈코>를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