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악장 : 서론
'문장부호'가 떠오르는 문화 콘텐츠를 소개한 글을 담았습니다.
6악장 : 서론
'문장부호'가 떠오르는 문화 콘텐츠를 소개한 글을 담았습니다.
반쯤 이상한, 두려운... 사랑하는!
- 조너선 라슨, <틱, 틱... 붐!>
22 최희정
나는 내 삶의 모든 문장이 온점(.)으로 끝맺어지기를 바라왔다. 깔끔하고, 완결적이고, 내 손 안에 잡히는 모든 순간이기를 욕심내었다. 그러나 이런 욕심이 무색해질 만큼 나는 대부분의 순간에 멈칫거리고(,) 불안해하며 망설이고(...) 답을 알 수 없고(?) 나만 아는 심각한 강도로 폭발(!)한다. 그런 것들은 왜인지 깎아내어 온점으로 만들어야만 할 것 같다.
<틱, 틱... 붐!>에 온점은 없다. <틱틱붐>은 뮤지컬 <렌트>의 작곡가로 알려진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로, 8년간 준비한 첫 작품이 브로드웨이 입성에 실패하고 서른 살을 맞은, 그리하여 혼란과 불안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는 삶을 노래한다. 이룬 것 없이 1990년에 30살이라는 불안감에 시계를 멈춰달라고 소리치는 첫 곡 ‘30/90’은 그 숫자만 다를 뿐 오늘날의 우리가 느끼는 삶에 대한 불확실과 맞닿아있다. 틱, 틱, 긴장되는 시계 초침 소리로 시작하는 극은 흥분(No More), 망설임(Johny Can’t Decide), 폭발(Sunday), 뒤엉킴(Therapy), 물음(Why)을 거치며 깔끔한 온점이 아닌 온갖 지저분하고 모습과 번잡한 감정을 더듬는다.
깎이지 않은 그 울퉁불퉁함이 주는 힘은, 절대 온점으로 끝날 수 없는 우리의 삶에 전하는 온점이 아니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삶의 리듬과 선율이다. 모든 것들을 내 손아귀에 쥐고 정제하여 삼키려는 욕심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나를 괴롭게 한다. 자유로운 악보를 그릴 수 있는 삶의 문장부호들을 무미건조하게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그 욕심을 당장에 완전히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그 열망마저도 삐뚤빼뚤한 삶의 일부이기에 깔끔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틱틱붐>을 보고 듣는 순간만큼은 지저분하고, 미완성이고, 내 손에 다 잡히지 않는 삶의 문장부호들이 있는 그대로 나의 악보에 적히는 순간을 느끼게 된다.
Come to your senses, The fences inside are not for real if we feel as we did.
Baby, be real. You can feel again. Not only one sense, but use all five. Come to your senses, baby, come back alive.
- ‘Come to Your Senses’
<틱틱붐>은 마지막까지도 온점이 아닌 물음표로 끝난다. 마지막 곡인 ‘Louder Than Words’는 Why로 시작하는 일련의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모든 물음은, 왜 우리는 기꺼이 ‘온전한’ 순간보다 반쯤 이상한 순간을 살아가는지 묻는다. 그리고서는 다시 한번 이렇게 묻는다. ‘Fear or Love?’ 불완전하고 이상하고 두려운 순간을 기꺼이 사랑할 때, 나는 내 삶의 문장부호를 깎아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연주하는 자유로운 연주자가 된다.
Cages or Wings? Which do you prefer? Ask the birds.
Fear or Love? Don’t say the answer. Actions speak louder than words.
‘Louder Than Words’
물음표라는 발자국을 남기며
-제이슨 히켈 <적을수록 풍요롭다: 지구를 구하는 탈성장>
-조우리 <오늘의 세리머니>
-멜라니 조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23 신채은
제가 사회학과를 좋아하고, 또 사회학과에 오게 된 이유는 사회학이 이 세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물음을 던지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제 삶의 문장부호는 물음표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아주 사소한 것이더라도 그것이 정말 당연한지, 혹은 당연해도 되는지 묻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삶이 편안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이러한 삶이 세상과 불화하는 삶들을 결국에는 보다 편안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남은 생에는 앞으로도 많은 물음표들이 발자국처럼 찍힐 예정입니다. 묻는 일이 반드시 답하는 일로 이어지지 못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물음을 던졌음을 알리는 자취를 남기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서론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는 책 세 권을 추천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책은 제이슨 히켈의 『적을수록 풍요롭다: 지구를 구하는 탈성장』입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탈성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사람, 기업, 국가, 심지어 혁신 자체가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는 숨 막히는 압박, 즉 성장주의의 폭정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성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은 항상 유한하다는 사실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키가 자라길 바라는 사람은 있어도 무한히 자라길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체리알이 커지길 바랄 수는 있어도 체리가 지구보다 커진다면 재앙입니다. 그런데 왜 현재의 경제는 성장을 위한 성장을 정언 명령으로 삼고 있을까요? 지금의 성장주의가 과연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어도 괜찮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책은 조우리의 『오늘의 세리머니』입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한국은, 현실의 한국과 마찬가지로 동성혼의 법제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아무리 오랜 기간 함께 살아도 동성 커플은 결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스템의 허점을 파악한 두 레즈비언 공무원, 도선미와 이가경이 레즈비언 커플의 혼인신고를 승인하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혼인신고를 마친 레즈비언 부부는 101쌍에 다다르지만, 결국 이는 무효가 되고 도선미와 이가경은 징계를 받습니다. 도선미는 기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저는 오늘 저의 모든 것을 걸고 말하기로 했습니다. (중략) 저 도선미는 공무원으로서 동성 부부 101쌍의 혼인신고를 수리했다는 사유로 받은 징계에 불복합니다.
또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제가 제출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혼인신고서가 불수리된 것에 항의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성 간의 사랑만이 법적으로 인정받는 현실이 당연해도 되는 것일까요?
세 번째 책은 멜라니 조이의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입니다. 이 책의 도입부에서 멜라니 조이는 독자로 하여금 저녁 파티에 초대된 상황을 가정하게 합니다. 그곳에서 독자는 맛있는 고기 스튜를 먹은 후 친구에게 조리법을 묻습니다. 이때, 친구가 “우선, 골든 리트리버 고기 2kg을 갖은 양념에 재운 다음⸱⸱⸱⸱⸱⸱”이라 말합니다. 이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실 건가요? 뒤늦게 친구가 농담이었다고 말한들 식욕이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육식주의 사회입니다. 육식주의란, 육식을 정상이고 자연스러우며 필수적인 것으로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와 신념 체계를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 육식이 당연한 것인지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말줄임표
-♪ 아이유, 스물셋
23 정여진
대학에 오고 머릿속에서 가장 많이 재생됐던 노래가 있다. 아이유의 ‘스물셋’이다. 노래에는 물음표가 가득하다. 화자의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답해 보라는, 하지만 사실은 화자 역시 답을 알지 못하는 물음이 가득하다.
돌이켜보니 작년까지는 노래의 물음표에 집중했던 것 같다. 지금 내 ‘진짜’ 감정은 어떤지, 내가 ‘진짜’로 가고 싶은 길은 어디인지. 하지만 어느 쪽이 ‘진짜’인지 1년 내내 묻고 물어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올해는 질문을 하는 것부터가 모호한 날들의 연속이어서, 그저 생각과 말을 줄이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고 말하려는데 5월에 쓴 글이 보인다. 하핫 5월 초까지만 해도 여전히 질문에 묻혀 있었구나 싶다. 아무튼 지난달부터는 정말 쌓이고 쌓였던 생각들을 쳐내고 내뱉는 말을 줄이면서, 지금 당장 느껴지는 감정들에만 충실했다. ‘진짜’를 찾는 걸 잠시 그만뒀다.
노래 가사 중 이런 말이 있다.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여태 내 마음의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사실 생각해 보면 애초부터 마음에 거짓은 없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쪽도, 저쪽도 모두 진짜는 아니었을까. 떠오르는 의문들을 그저 받아들인다. 대신 질문들에 가려졌던, 하지만 분명 떠오르고 있던 감정들에 집중한다.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 치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나는 사랑이 하고 싶어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
맞혀봐
어느 쪽이게?
얼굴만 보면 몰라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아주 간단하거든
어느 쪽이게?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