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악장 : 결론
'문장부호'에 대한 글을 모았습니다.
6악장 : 결론
'문장부호'에 대한 글을 모았습니다.
결함을 직면하기
23 심지후
텍스트로 대화만 하면 유달리 “...”을 빈번히 말끝마다 붙이는 편이다. 반점도 상당히 자주 사용하고, 대학글쓰기 2 수업에서는 잦은 “- -” 삽입 부연설명이 글의 가독성을 해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사소한 습관들인데 한 번 의식하고 나니 신경이 쓰인다. 아니... 근데... 이게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 물론 저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 생각해... 의식한 이후 내내 마음이 썩 좋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내가 생각하는 나의 성격적 결함이 말투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간결하고 담백한 글을 적으려 하지만 늘 축축 늘어지는 글이 나온다. 가볍고 산뜻하여 통통 튀는 글을 쓰고 싶으나 끊임없는 반점이 이를 가로막는다. 원래 하고자 했던 말은 이것으로 충분한데, 저것도 말해야 할 것 같고, 그것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결국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문장이 된다. 그러면서도 반박의 여지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 물론 반박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지만 – 이런 식의 문장을 써 버린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의견에 자신감이랄지 확신을 가지지 못해 목소리는 늘 기어들어간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신생아가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생물학적 요인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고 말했다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나는 타인의 사랑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같다. 의견을 과하게 내세우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해 조심스러워지고,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 보기도 전에 먼저 재반박을 언급해 버린다. 때로는 침묵이 말보다 더 큰 무게를 가질 때도 많은데 자꾸만 무언가를 덧바르려 하는 내가 보인다. 사족을 잔뜩 달아 나 자신을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다. 그러나 문장부호들의 개수는 불안의 크기와 비례해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몸집을 부풀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이 정도로 못나고 나약한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몸에 달라붙은 것들이 많아 몸이 무겁다. 그리고 몸이 무거워 견디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 이상 계속 예전처럼 살아갈 수는 없다. 이제 모든 것을 놓아주어 나를 자유롭게 할 시간이다. 타인이 나를 사랑하기를 바라기 이전에 나부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함을 되새기며 살아가야 한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통렬한 고독을 필요로 한다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나 자신의 결함을 끄집어내 마주하는 건 다소 숨 막히고 조금은 구역질 나는 일이라는 것을 글을 쓰며 알았다. 여전히 앞으로도 이것저것 주워 나를 가리기에 급급한 날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회피하지 않고 바라보았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는 6월이다.
물음표가 마침표로
23 공규범
‘엄마, 우산 가죽은 왜 안 젖어?’ 길을 걸어가다 문득 들려온 한 아이의 맑은 물음이 내 마음을 멈춰 세웠다. 나도 저 아이처럼 이 세상 모든 것이 물음표로 다가오던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나의 물음표들은 하나둘 사그라들어 마침표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8월 한 달간 오랜만에 부산에 내려가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며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문장부호였다. 아빠랑 나란히 차를 타고 나서면 난 쉴 새 없이 차 안을 온통 물음표로 채우곤 했다. 어떤 것이 궁금했고, 어떤 답을 얻었는지보다 내가 물음표를 여러 개 띄웠다는 그 사실이 더 생경하게 남은 것은 아마 내가 그 물음표들에 띄웠던 물음표 때문일 것이다. ‘아빠에게 너무 물어보기만 하는 게 아닌가?’, ‘물어보는 것 말고 그냥 다른 대화를 더 해야 할 것 같은데….’라는 고민도 잠시, 난 또다시 무수한 물음표로 아빠와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나의 물음표를 마침표로 가득 돌려주던 아빠로부터 난 세상을 들여다보았고 나의 세계를 키웠다.
지난 한 달간, 영원히 내 것일줄 알았던 물음표는 어느샌가 부모님에게로 슬며시 옮겨가 있었다. 나보다 더 많은 물음표를 건내는 아빠에게 이제는 내가 나의 세상을, 내가 키워온 세계를 마침표로 답한다. 어린 시절 나에 비해서는 아직 턱없이 모자란 물음표들이지만, 나에게는 언제까지나 마침표의 주인공일거라 여겨졌던 아빠로부터의 물음표는 그 존재만으로 새로움이다. 아빠에게 들려드릴 나의 세상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아졌구나하는 뿌듯함과 동시에 앞으로 점점 더, 어쩌면 먼 훗날에는 어린 시절의 나만큼이나 물음표를 가득 띄우게 되실 아빠와 엄마를 그려보면 설명할 수 없는 벅참이 밀려온다. 아직은, 적어도 부모님에게는 무수한 물음표의 아이이고 싶은데, 이미 우리의 문장부호는 방향을 달리하여 흘러가고 있다.
늘어나는 마침표만큼이나 난 걷잡을 수 없이 세상으로 던져지고 있는 거겠지. 그런 생각이 들때면 내가 여전히 귀 기울일 수 있는 아빠의 마침표가 있음에 감사해진다. 숨 가쁘고 조금은 버거웠던 반 년을 보내고 막 부산으로 왔던 그날, 긴 여운을 남긴 아빠의 한 마디가 있다. 이제 할머니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앞으로 얼굴 볼 수 있는 횟수로 생각하면 두 손으로 셀 수 있는 것만큼만 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부산에 길게든 짧게든 들르게 된다면 어떻게든 한 번은 얼굴 보고 가라고. 아빠의 말은 점차 다른 어딘가를 집으로 부르게 될 내가 나도 모르게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고 또 끄덕이게 했다. 아빠의 마침표는 이렇듯 늘 지극히 현실적이고 직접적으로 마음 깊숙이 다가온다. 그 투박함에 속아 아빠를 흘려듣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속에 자리한 아빠만의 배려와 걱정, 따듯함을 더 크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빠 말처럼 주변 사람들과 앞으로 만날 횟수를 하나하나 세어본다면 생각보다 몇 번 남지 않은 이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내게 소중함과 감사함으로 다가오는 존재들과의 접촉을 더욱 허투루 여기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우리의 만남이 몇 번이 남았을지는 알 수 없지만 아빠와 엄마와는 두 분의 모든 마침표가 물음표가 되는 그날까지 아낌없이 따듯함이 가득 묻어있는 문장부호들을 함께 주고받고 싶다는 바램을 나의 마침표로 전해본다.
지금처럼 열심히 살다가
쉬고 시플 때
숨 쉬고 싶을때
언제든 오거라
어디 안 가고 항상 거기 있을께.
2024.08.30.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 변함없이 따스한 아빠의 마침표를 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