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문예창작공모전 시 당선작
2023 문예창작공모전 시 당선작
장려상
어느 날
국어국문학전공
20211088 정수민
밥을 먹는다. 쌀과 멸치로만 구성된 밥상은 단촐하기 짝이 없다. 겨우 반절만 찬 공기에 나무숟가락을 둔탁하게 부딪혀 쌀알을 담는다. 생긴 건 제각각인 것이 서로 엉겨붙어 흰 덩어리를 만든다. 멸치의 바삭함과 끈적이는 밥알을 입으로 동시에 넣어 오묘한 식감을 만든다.
시계를 바라본다. 시계의 시침은 숫자 7을 가리킨다. 문득 낡은 노트를 펼쳐본다. 바랜 종이를 잡은 손가락 위 선명하게 쓰인 숫자 8, 텅빈 한 시간이 많은 듯 적은 듯 자연스레 흘러간다.
옷을 입는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이 묻은 스웨터. 색이 바랜 스웨터 위 보풀이 거무칙칙한 장판 아래로 툭 떨어진다. 코 끝을 스쳐지나가는 바람따라 장애물을 가로질러 흩어간다. 지나간 세월을 증명하듯 느슨해진 옷이 커져버린 몸뚱아리에도 잘 들어간다.
길을 걷는다. 저벅저벅 느린 걸음으로. 길 위 무성하게 깔린 조약돌이 오른발에 밀려나 저 멀리 날아가 부서진다. 덜덜거리며 달려오는 덤프차가 깊게 파인 물웅덩이를 밟고 지나간다. 바지 끝자락에 맫힌 검은 얼룩이 흰 양말을 검게 물들인다.
벤치에 앉는다. 찬 공기로 메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다. 금세 스며든 바지소매를 아무렇지 않은 듯 접어올린다. 눈을 감고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을 바라본다. 떨리는 속눈썹에 매달린 이슬이 흔들린다. 귓볼을 타고 흐르는 숨결이 내게 미소를 전한다. 입꼬리를 슬며시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