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문예창작공모전 소설 당선작

장려상

색채

 

AI의료융합전공

20206523 정수연

 

 

“세상은 아름답단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신께서 내게 널 보내주셨겠니?”

우리 엄마는 남들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어젯밤 칼부림이 일어났어도, 수많은 사람이 예전보다 살기 팍팍해졌다며 울부짖어도 엄마는 언제나 세상의 다채로움을,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도 마찬가지였다. 슬픈 눈빛을 머금은 채 손끝을 파르르 떨어도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똑같았다. 세상은 아름답단다. 엄마를 원망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어린 나와 달리 엄마는 세상의 다른 모습이 보이는 거겠지. 내 눈에 세상이 혼잡하고 어지럽게 비치는 건 엄마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 분명했다. 어떠한 순간에도 남들과 다른 차원을 바라보는 엄마가 존경스러웠으며, 고귀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세상이 아름답다면, 그건 엄마처럼 세상을 다채롭게 보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아름다워도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아름답지 않은 거니까. 엄마 같은 사람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채로움을 전파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곁에 있으면 내 안에도 색채가 반짝거릴 것 같았다. 언젠가 내 눈에도 다채로운 색채가, 세상의 아름다움이 보일 거라 믿었다.

“아가야……. 울지 말렴.”

엄마와 나는 다르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엄마는 오른쪽 옆구리에 칼을 맞아 쓰러진 상태에서도 옅은 미소를 지으셨다. 덜덜 떠는 손을 뻗어 내 뺨을 쓸었다. 세상이 아름답다면 왜 엄마 같은 사람을 데려가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의 곁에서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울부짖는 것뿐.

“신께서 내 소원을……. 드디어 들어주셨구나.”

엄마는 마지막 숨에도 세상이 아름답다는 말을 담았다. 엄마가 숨을 내뱉었을 때, 나는 엄마의 영혼을 빨아들일 것처럼 숨을 깊이 들이켰다.

 

***

 

세상은 조금도 아름답지 않았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썩어 문드러져 토악질이 나왔다. 문명의 발전과 아름다움은 반비례 관계에 놓인 걸까. 우리나라엔 ‘정’이란 것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기심을 추구하며 남을 짓밟고, 정치인들은 더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거짓말을 입술 위에 올렸다. 툭하면 칼부림이 일어났고, 빈틈이 보이면 서로 헐뜯기 바빴다. 어른이 되면 엄마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았는데 내 세상은 여전히 무채색이었다.

“윤현준, 창석 교수님이 너 찾던데? 잘못해서 대학원 안 끌려가게 조심해라.”

“또 과탑한 거 아냐? 사람이 왜 그렇게 완벽하냐, 인간미 없게.”

대학교 동기들이 킬킬거리며 어깨를 쳤다. 장난스레 내뱉는 문장에 나를 향한 시기가 은은하게 깔려있었다.

“인간미 없긴. 나도 부족한 게 얼마나 많은데.”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그들의 손을 자연스럽게 털어냈다. 동기의 눈동자 위에 일렁이는 적대심을 못 알아챈 척 순진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의 어둠만을 포착하면서 뻔뻔하게. 타인에게 거짓된 면만 보여주는 내 모습이 역겨웠다. 그러나 이것이 엄마가 원하던 모습이 분명하기에 충실히 연기했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다정하며, 세상의 밝은 부분만 보는 사람처럼. 그래, 마치 우리 엄마처럼.

동기들을 등지며 미소를 지웠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기계적으로 날 찾았다던 교수님이 있을 법한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캠퍼스를 누비는 대학생의 수다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팀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욕하는 건 물론이고, 수업을 빠지고 싶다거나 자퇴하고 싶다는 투정도 적지 않았다. 들을 가치가 없는 소음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중 그냥 넘길 수 없는 대화에 걸음을 멈췄다.

“어휴, 그렇게 순진해서 각박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냐?”

“세상이 각박하긴? 얼마나 아름다운데.”

엄마가 했던 말을 똑같이 내뱉는 여성이 있을 줄 몰랐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각막 위로 해사하게 미소짓는 여대생의 모습이 새겨졌다. 무료했던 나의 세계가 개벽하는 순간이었다.

 

***

 

여대생의 이름은 이은하였다. 수험생 기간이 길었는지, 아니면 직장 생활을 하다가 입학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22살이라는 나이에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이었다. 그녀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한 사람답게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을 좋아했고, 언제나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특출나게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귀여웠다. 나처럼 그녀의 세상에 매료된 사람이 상당한지 이은하의 주변은 언제나 북적거렸다.

4학년 2학기, 타과생. 내가 이은하에게 접근할 만한 명분이 없었다. 먼발치에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사실은 다가갈 수가 없었다. 이은하에게선 나의 엄마가 엿보였다.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다정하고, 누구보다 강인한 여성이었다. 겉만 대충 보면, 부드럽고 위태로워서 이용하기 쉬운 대상처럼 여겨질지 몰라도 누구보다 굳건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그녀의 본성을, 깊이 숨겨놓은 내면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아니,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다채로움은 나의 엄마에게서 느꼈던 것과 똑같았으니까.

이은하는 나라는 사람의 중심이 되었다. 수업을 들을 때도, 캠퍼스를 누빌 때도 언제나 자연스럽게 그녀가 떠올랐다. 대학원에 입학할까.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 그녀와 접점이 생길지도 몰라. 아니면, 재입학도 괜찮겠다. 이은하에게 직접 다가가지도 못하면서 주변을 맴돌 방법이 머릿속을 채웠다. 대학 동기 중 한 명이 나보고 평소와 다르다면서 걱정했다. 누군가는 내가 사랑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내가 공부만 하다가 뒤늦게 일탈하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사랑. 수많은 헛소리 중에 그 단어만이 내 심장에 꽂혔다. 그래, 나는 이은하를 사랑한다. 하지만, 연애 따위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잠깐 사랑을 속삭이다가 몸을 섞고, 끝내는 헤어져서 완전한 타인이 되는 관계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나의 사랑은 그것보다 훨씬 더 고귀하고, 운명적인 종류였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영혼이 크게 흔들렸다. 그녀를 칭송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엄마의 마지막 숨을, 영혼을 들이켰던 것처럼.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은하를 보고, 듣고, 느끼며,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함께 떠들고 싶었다.

“저기, 손수건 떨어뜨리셨어요.”

“감사합니다.”

은하가 먼저 내게 다가왔다. 멍청한 표정으로 뒤를 돌았다. 맑은 눈으로 날 바라보는 모습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손수건을 받으려 손을 뻗었다. 스친 손끝이 찌릿찌릿했다. 각자의 몸에 흐르던 전류가 섞였다. 그녀도 나와 같은 것을 느꼈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차 한 잔 사드려도 될까요? 손수건 찾아주신 보답이에요.”

“아…….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제게 소중한 물건이라서요.”

“그럼 다음에 사주세요. 곧 수업이라서요.”

은하는 옅은 미소와 함께 연락처를 넘겨주고 떠났다. 나는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대학원에 갈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만들어준 접점에 심장이 뛰었다. 앞으로 그녀와 연락해도 되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은하가 주워준 손수건을 소중하게 보관했다. 아무런 가치가 없던 물건이었으나 지금부터는 나의 몇 안 되는 보물 중 하나였으니까.

 

***

 

이은하와 점점 가까워졌다. 손수건으로 맺어진 인연은 당연하게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커피 한 잔은 식사, 그리고 영화로 발전했다. 함께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거나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캠퍼스를 떠도는 고양이에게 밥이나 간식, 혹은 물을 줄 때도 적지 않았다.

그녀는 대학 동기와 어울리던 것보다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은하의 삶에 내가 조금씩 녹아드는 것 같아 즐겁고, 설렜다. 그녀에게 내가 점점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구도 사랑을 입에 담지 않았다. 연인 관계로 발전하길 원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각자의 몸에 흐르던 전류가 엮였던 순간, 이은하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낀 것 같았다.

“선배는 평소에 뭐하고 지내세요?”

“세계 평화를 기원하죠.”

은하가 내게 관심을 보였다. 취미는 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장르의 음악을 듣는지. 그녀는 나라는 사람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길 원했다. 그런 은하를 기만한 건 나의 죄악이자 양심이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비추는 눈동자에 나의 어둠을 들이밀고 싶지 않았다. 은하가 원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거짓을 고했다. 엄마의 영혼을, 함께 보냈던 시간을 토해냈다. 내 대답에 그녀가 짙은 미소를 보였다. 자신도 마찬가지라며 들뜬 기색을 드러냈다. 그녀는 자신과 닮은 사람은 처음 본다며 뺨을 붉혔다. 은하는 내 거짓을 온전히 믿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 거짓이라도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내가 그녀의 사상과 같은 이야기를 해줬다는 게 너무나 기뻐 보였다. 언젠가 내 말을 진실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그녀의 눈동자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그것은 나도 간절히 바라는 것이었다. 은하가 바라보는 아름다운, 다채로운 세상을 너무나 원했으니까.

 

***

 

은하의 자취방에 초대받았다. 무슨 핑계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우리가 입을 맞췄다는 사실 하나만이 선명했다. 숨결과 체온을 나누며 서로를 강하게 욕망했다. 성적인 충동? 그건 아니었다. 시선이 겹친 순간, 알 수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서로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때라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밀착했다. 운명이, 영혼이 상대방과 엮이기를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현준오빠.”

은하가 처음으로 나의 이름을 불렀다. ‘선배’라는 호칭을 고집하던 그녀가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선언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은하가 내뱉는 이름을 삼켰다. 그녀가 불러주는 이름이 좋았다. 나라는 사람이 다채로워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래, 착각이었다. 그녀와 몸을 섞고, 그녀의 다채로운 삶을 탐하며 깨달았다. 나는 결코 은하를 가질 수 없었다. 나는 그녀와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결핍되어 있었다. 영혼이 텅 비어서, 본질적으로 어둠에 속한 것이라서 다채로운 그녀에게 이끌려도 닿을 수 없었다. 내가 은하와 하나가 된다는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온전히 그녀가 내게 자신을 내어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연인이라는 관계로 엮이지 않았다.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고, 시간을 공유할 뿐이었다. 때때로 몸을 섞고, 길거리를 떠도는 동물들의 밥을 챙겨주기도 했다. 은하에게 나는 하염없이 떠도는 길고양이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래서 내게 친절을 베푸는 게 아닐까. 가득 찼던 영혼이, 충만함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그녀는 찾을 수 없도록 가둬둔 본성이 자물쇠를 부수고 빠져나오려 했다. 계속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녀를 통해서 다채로운 세상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조금씩 금이 갔다.

“세상은 참 아름다운 거 같아.”

은하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해가 뜨고 지는 걸 보면 경이롭지 않냐고,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을 보면 마음이 풍요로워지지 않냐고. 속이 쓰렸다. 그녀와 아무리 함께 있어도 그녀가 보는 세상은 볼 수 없었다. 나의 세상은 조금도 아름답지 않았다.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도와준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사람이 압도적이었다. 그토록 찬미하는 지구의 자연환경은 빠르게 엉망이 되어 갔다. 그것을 알면서도 수많은 사람은 자신이 살아갈 때까진 괜찮다며, 미래 세대가 알아서 할 거라고 믿으며 장쳔을 파괴했다.

나는 은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었다. 세상의 다채로움을 알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엄마가 살던 것과 같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종교라도 가져야 하나. 은하도, 엄마도 과학으론 설명할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했었다. 엄마의 입술에선 늘 ‘신’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왔었다. 죽기 직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나도 신을 찾으면, 신을 믿으면 그들과 같은 세상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떤 신을 찾아야 할까.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알 수 없었다. 나는 엄마가, 또 은하가 종교 생활을 하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럼 그들이 말하는 신은 누구일까. 어떤 신일까.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그들과 같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너무나 괴로웠다.

 

***

 

불나방은 어떤 심정으로 불에 뛰어들었을까. 영혼이 말라감을 느꼈다. 이은하와 어울리면서 나는 점점 피폐해졌다. 그녀는 내게 불이었으며, 빛이었다. 나는 불나방이었고, 그림자였다. 빛의 옆에서 나의 어둠은 점점 짙어졌다. 은하와 같은 세상을 볼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된 순간, 영혼이 무너지면서 질투라는 감정이 쏟아졌다. 동시에 은하를 갈망했다. 그녀를 갖고 싶었다. 그녀가 내어주는 색채를 조금씩 나눠 받는 게 아니라 온전히 내가 갖고 싶었다. 나는 내가 미쳐가고 있음을 알았다. 아니, 처음부터 나라는 사람은 미쳐있었다. 엄마가 내게 세상은 아름답다고 이야기한 순간부터 갈증에 시달렸다. 언젠가는 해소될 갈증이라 믿었으나 엄마가, 은하가 내게 건네준 물은 소금물이었다. 잠깐 맛본 다채로운 세상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더욱 목이 말랐다. 은하는 그러한 나의 상태를 정확히 꿰뚫어 봤다.

“오빠는 나를 사랑해, 그렇지?”

“그래.”

“……너무 사랑해서 나를 죽이고 싶을 만큼.”

그녀의 입에서 나온 문장을 믿을 수 없었다. 너무나 맑고, 밝고, 다정한 사람이라서 그럴까. 은하를 속일 수 없었다. 은하는 내가 그녀를 질투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을, 갈망하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러면 내가 내뱉었던 모든 거짓말도 그녀는 알고 있을 터였다. 그녀가 내게 말을 걸기 전부터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그녀는 나의 추악한 면을 모두 알면서 곁을 내어줬던 게 분명했다.

나도 모르게 은하의 위에 올라탔다. 그녀의 목으로 양손을 가져갔다. 은하의 말은 내게 자신을 죽여도 된다는 허락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내게 자신을 죽여주길 바란다는 소망을 입술 위에 올렸을지도 몰랐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왜 나의 손으로 죽길 원하지? 은하는 내게 잔혹한 짓을 했다. 손바닥 아래에서 따스한 체온이, 일정한 박자로 뛰는 맥박이 느껴졌다.

“엄마가 내 앞에서 죽었어.”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말을 내뱉었다. 손에 힘을 준 것도, 안 준 것도 애매한 상태로 담담하게 말했다. 은하가 두 눈을 깜빡였다.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저 나와 부드럽게 올려다볼 뿐이었다.

“엄마는 너처럼 세상이 아름답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누구보다 아름답고 우아한 사람이었어.”

표정을 일그러뜨렸을까.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리움이 짙게 묻어나오는 눈빛일까. 나를 두고 간 엄마에 대한 원망이 새어 나왔을까. 나는 모르는 세상을 본 엄마에 대한 질투가 나타났을까. 온갖 질문이 머릿속을 채웠다. 뜨겁게 숨을 내뱉었다. 은하의 목을 움켜쥔 손에 힘을 줬다. 커헉. 숨이 막히는지 그녀가 단말마를 내뱉었다. 이대로면 은하는 내 손에 죽을 게 분명했다. 아니, 내가 그러도록 만들 터였다. 그 사실을 나도 알고, 은하도 알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발버둥도 치지 않고, 그저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은하의 뺨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울고 있나. 나는 웃고 있나. 나는,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그녀의 영혼이 몸을 떠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몹시도 견딜 수 없었다. 동시에 그녀를 온전히 가질 수 없다면, 그녀와 같은 세상을 볼 수 없다면, 완전히 파괴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은하가 끝을 맞이할 때까지 쳐다봤다.

그녀는 살해당하는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엄마가 마지막 순간에 지었던 것과 비슷한 미소였다. 엄마가 뭐라고 했더라. 아, 신께서 소원을 들어주셨다고 했지. 그럼 은하도 같은 생각인 걸까. 그녀의 소원은 나의 손에 죽는 거였나. 어째서지. 죽음을 바라는 사람이 보는 세상이 아름다울 수가 있나. 그건 미친 게 아닐까. 나도, 은하도 결국 완전히, 극단적으로 미쳐서 이 세상의 균형을 맞춘 걸까.

뒤늦게 손바닥 위로 느껴지던 맥박이 멈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은하의 목을 움켜쥐었던 손을 천천히 떼어냈다. 그녀의 심장에 귀를 기울였다. 적막한 고요함이 쿵쿵 뛰던 소리를 대신했다. 아, 내가 그녀를 죽였구나. 내가 은하를 죽였어. 소름 끼치도록 황홀했다. 그녀와 같은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더라도 그녀의 마지막은 내가 정할 수 있었다. 그녀가 살아있을 때도, 죽었을 때도 결국 나의 세상은 무채색이었다. 달라진 게 없었다. 찰나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다채로운 세상을 봤지만, 그뿐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살아가겠지. 그렇다면, 은하와 함께 세상을 떠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두 여성이 나를 맞이해줄 터였다.

아니, 나는 영영 두 사람을 만날 수 없겠지. 어떤 신을 믿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둘은 천국에 갔을 터였다. 천국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맑은 영혼을 가져서 신이 나를 통해 그들을 돌려보낸 게 분명했다. 그럼, 나는 죽어도 지옥에 가겠구나. 그런데 내겐 이 세상이 지옥이나 다름없는데. 차라리 둘의 몫만큼 살아가는 게 옳았다. 그것이 사람을 죽인 죄인에 대한 처벌이자 신이 찾던 존재를 돌려 보내준 사람이 받아야 할 보상이었다.

 

***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살인자가 되었다는 자각이 없었다. 내가 미쳤다는, 결핍이 있다는 생각은 했다. 그럼 나의 결핍을 채워줄 건 누군가. 나는 채울 수 없었다. 은하도, 엄마도 살아있는 동안은 나의 결핍을 채워주지 못했다. 내가 망가져 있음을,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둘을 사랑했다. 둘도 나를 사랑했다. 엄마의 영혼을 삼켰던 때가 떠올랐다. 그건 내가 엄마처럼 살고 싶다는 결심이자 영원히 그녀와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럼 은하의 영혼도 먹어야 하는데. 이미 그녀는 육체만 남겨두고 지구를 떠났다.

나는 은하가 입고 있던 옷가지를 벗겼다. 따뜻한 물로 적신 수건으로 은하의 몸을 닦았다. 이건 그녀가 나를 위해서 남겨둔 선물이자 흔적이었다. 영혼을 대신해 내게 허락한 것이었다. 은하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손가락을 핥았다. 그리고 이를 세웠다. 그녀가 남겨준 것을 사정없이 목구멍으로 넘겼다. 엄마의 영혼, 그리고 은하의 육체가 내게 깃든다면, 둘이 보던 다채로운 세상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착각일까, 희망일까.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은하의 육체를 꼭꼭 씹어서 넘겼다. 손가락에서부터 시작된 이 행위는 그녀를 완전하게 삼킬 때까지 계속됐다.

 

***

 

손수건을 건네주기 전부터 현준선배를 알았다. 그가 내게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주위를 맴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이려고 해도 내 눈에는 선배가 보였다.

“은하야, 저 사람 요즘 자주 보이지 않아?”

“그걸 이제 알았어?”

대학 동기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나도 모르게 웃었다. 이제야 눈치채다니. 참 어리석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현준선배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는 내가 쳐다본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선배는 알고 있을까. 심연을 들여다볼 때는 심연도 그를 들여다본다는 걸. 우리가 서로의 심연이라는 사실을, 그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저기, 손수건 떨어뜨리셨어요.”

그러니까 내가 알려줘야 했다. 나도 그를 들여다보고 있었음을. 현준선배는 결코 내게 다가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먼저 다가갔다. 당황일까, 혹은 황홀함일까. 양가적인 감정이 뒤섞인 눈동자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손끝이 닿자 전류가 흘렀다. 역시 세상은 참 친절했다. 그가 나의 운명임을 직감하고 있는데도 혹시 놓칠까 봐 다정하게 알려주다니.

 

***

 

현준선배와 가까워졌다. 운명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음을 느꼈기에 밀고 당기는, 피곤한 기싸움은 없었다. 애초에 연인 같은 관계도 아니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가 아니면 안 되는 사이였다. 그의 눈동자를 보면 모를 수가 없었다.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 아니, 사실은 나와 가장 닮은 사람. 세상이 아름다워서 견딜 수 없다고 주장하는 나와 달리 삭막한 세상을 온전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

“선배는 평소에 뭐하고 지내세요?”

“세계 평화를 기원하죠.”

선배는 아무렇지 않게 거짓을 내뱉었다. 본인이 나와 닮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무해하니까 거리를 두지 말라고 부탁하는 것 같은 문장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웃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기분 좋았다. 그의 영혼이 나를 갈구하는 게 느껴져 전율이 흘렀다. 선배는 알까. 빛은 그림자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빛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는 걸. 갈증이 느껴졌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웃음으로 울컥울컥 올라오는 마음을 숨겼다.

“현준오빠.”

자취방에서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혼자서 있을 때는 이미 몇 번이나 읊고, 혀로 굴렸던 이름이었다. 선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와 입을 맞추고, 몸을 겹쳤을 때와는 또다른 전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 어떡하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숨이 멎길 바랐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난 현준선배, 아니, 오빠의 곁에 있어야 했다. 그는 나를 통해 다채로운 세상을 보기 원했으니까. 삭막하고, 어두운 세상을 억지로라도 밝게 보는 방법을 배우길 원했으니까. 나는 그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계속 이야기했다. 아직은 괜찮다고,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낙관적인 미래를 그렸다.

 

***

 

친구 관계를 모두 끊어냈다. 현준오빠 몰래 대학교도 나왔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전과 달라졌음을 알았다. 이제야 깨달은 거겠지.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을, 그는 볼 수 없었다. 그가 보는 세상도 나는 볼 수 없었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 서 있으면서도 다른 세상을 바라봤다. 나는 어떤 세상을 바라보는 걸까. 위선적인 세상일까.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썩어 문드러진 유토피아를 보는 걸까. 현실은 어떻더라.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보는 세상이 진실되진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현준오빠가 바라보는 세상도 마찬가지일지 몰랐다. 서로가 바라보는 거짓된 세계. 우리는 그것을 열망했다.

“오빠는 나를 사랑해, 그렇지?”

나는 오빠를 사랑해, 알고 있지?

입 밖으로 내뱉은 문장에 숨겨진 뜻을 그는 읽었을까. 읽지 못했어도 상관없었다. 이것은 내가 내뱉을 수 있는 최후의 고백. 겁쟁이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 억지로 어둠을 피하고, 빛만을 바라보는 겁쟁이의 소원.

“……너무 사랑해서 나를 죽이고 싶을 만큼.”

오빠가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어. 이 세상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으니까. 이 세계에서 나를 해방해줘. 나의 간절함에 그가 응답했다. 목 위로 느껴지는 차가운 맥박. 긴장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그의 다짐이 흐트러지지 않게 시선을 맞췄다. 목을 누르는 압박감이 싫지 않았다. 나의 목숨을 온전히 넘겨줄 수 있었다. 아, 그래도 내가 써왔던 일기장을 찾아주면 좋겠는데. 그가 나를 구원해주고, 곧바로 방을 떠나지 않을 거라 믿었지만, 일기장을 찾을 거란 희망은 없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 자신이 있을까. 알 수 없었다.

“엄마가 내 앞에서 죽었어.”

현준오빠가 내뱉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웃었다. 아니, 울었다. 아니, 제발 본인을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미안해서 어떡하지. 나는 그런 힘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의 곁에 서 있는 희미한 영혼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저 사람이 현준오빠의 엄마구나. 그녀는 서글프고 다정하게 그의 곁을 머물렀다. 현준오빠가 그녀의 영혼을 삼켰음을 느꼈다. 나도 저렇게 머무르게 되는 걸까. 이 땅에, 아니, 그의 곁에 얽매이게 되는 걸까.

숨이 멎고,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순간, 나는 갈등했다. 당연했다. 우리는 서로의 구원자이자 영혼의 반쪽이었고, 결핍 덩어리였다. 이 세상은 우리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없어서 한쪽 면만 진득하게 바라보는 걸 테니까. 그는 이 세상에서 손가락질받을 일만 남았고, 나는 무책임하게 세상을 등졌다. 내겐 여전히 용기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를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가 내 일기장을 찾을까 궁금했다. 그것은 내가 그에게 말해줄 수 있는 나의 모든 것이자 진실이고, 판도라의 상자였다. 현준오빠는 내가 본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하고, 맹목적으로 움직였다. 경찰서에 자수하지도, 내 집을 둘러보지도 않았다. 내 몸을 깨끗하게 하고,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입을 가져다 댔다. 미쳤다. 미칠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고, 그런 사람들이었다. 기어코 그는 나를 온전히 가졌다. 결국, 그에게 속박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다채로운 세상을 보지 못하겠지. 그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이었다.